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ngs Mar 04. 2024

3) 그날의 기록: 나의 이야기

3) 그날의 기록: 나의 이야기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가공한 글입니다.)


나는 오랜만에 집에서 휴식을 즐겼다.

거실 소파에 '벌렁' 누웠다. 창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빛이 나의 마음을 잔잔하게 만들었다.


오른손에 과자를,

왼손에 TV 리모트컨트롤(리모컨)을 들었다.

세상 부러운 것 없는 순간이다.     

오랜만에 갖는 혼자의 시간이 즐거웠다.


못 봤던 영화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우람한 근육이 돋보이는 배우가 주연으로 출현한 '땡땡 도시'를 볼 것이다. 개봉한 지 한참을 지났지만 '남들이 재미있다고 하니, 나도 한 번 봐야지'라는 마음이었다.     


주인공이 말 안 듣는 범죄자를 응징하는 장면은 나의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

'이런 게 대리 만족인가?'     


그러나

영화 초반, 갈등 고조를 위한 발단 부분에서 극 중 인물 '장첸'이 지역 조폭 우두머리를 살해하고 시신 훼손(토막살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형사가 청소차 적재함 쓰레기 더미 위에서 비닐봉지에 담긴 신체 일부를 발견한다.


나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지난 일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2021. 어느 날, 정오

나는 실종 수사팀 사무실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가출한 중학생에게 집에 들어가라고 사정사정했다.

또 다른 청소년에게는 짜장면 사 줄 테니 경찰서 앞에서 보자고 말했다.     

오늘따라 미성년자 가출 신고가 많다.     


나는 선배인 동료 형사에게 말했다.

"형님, 이것들 진짜 말 안 듣네."


"야, 오늘 당직(24시간 근무) 근무 잖어~ 너무 힘 빼지 마러~." 구수한 어투로 선배가 답했다.     


나는 허공에 대고 말했다.

" 제발, 이런 상습 가출자는 신고받지 말아야 해, 뭔 힘 낭비냐고."


선배 경찰은 의자에 앉아 '휙' 어깨를 돌리며 말했다. "그럼 네가 청장 하든지."   


선배와 나는 경찰서 앞 '진실 반점'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사무실에 돌아오자마자 전화벨이 나를 찾았다. ○○경찰서 실종 수사팀에서 온 전화다.

사건 이첩 때문에 우리에게 연락한 것이다.     


이첩 온 사건은 미성년자 미귀가 신고였다.

모니터 화면에 띄워져 있는 프로파일링 기록을 훑어보았다. 여중생이 가출했다는 내용이다.     


가출 신고 이력….

"형! 이거 봐! 얘 벌써 7번째야. 진짜 이건 힘 낭비야. 내 말이 맞지?"


선배 경찰관은 낮에 자신이 했던 말을 반복해서 내 귀가에 들려주었다. "그럼 네가 청장 하든지."     




우리는 상습 가출청소년을 찾기 위해 밤거리를 돌아다녔다.


이 여자 중학생은 다행히 휴대전화 연락이 되는 상황이었다. '적은 노력으로 찾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바람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아이가 계속 장소를 바꿔가며 전화 통화를 했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를 데리고 장난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 사악한 녀석들아!'라고 외쳤다.     

물론, 입으로는 끊임없이 설득했다. 하지만 소득은 없었다.


동료 수사관 형은 "그래도 휴대전화 연락은 되잖아. 얼마나 다행이야." 말했다.

"맞아, 그나마 다행이지." 나는 대답했다.     


경찰 단말기로 아까 전화 왔던 ○○경찰서 실종 수사팀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실종 수사팀입니다."     

"아이고, 이거 미안하게 됐어요. 이첩 사건이 또 있네요. 성인 남자가 집에 들어오지 않고 휴대전화기 전원 꺼짐 상태입니다." ○○경찰서 실종수사관이 말했다.     


나는 알겠다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흔하게 있는 경우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디서 한잔하고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넘겨받은 사건의 신고자에게 전화했다.

○○경찰서에서 본 건 이첩되어 우리 경찰서에서 담당하게 되었다고 알렸다.     


'도대체 이 말썽꾼 녀석은 어디에 있는 거야." 나는 가출 여중생부터 빨리 찾고 싶었다. 그래야 다른 사건도 살펴볼 수 있을 테니….     


날이 밝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밤새 깨어있기도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잠 없이 추적하고 수색은 하는 것은 더 힘들다. 나는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자살의심자, 치매 어르신, 가출청소년, 연락 두절 신고 등, 총 12건이 접수되었다. 밤새 뛰어다니며 사람을 찾았다.

미해결 사건은 '말썽꾸러기 가출 여중생', '휴대전화 전원 꺼짐 상태의 남성' 두 개의 사건이 남았다.     


다음 근무자에게 미해결 사건을 인계하고 퇴근했다.


'내일은 또 다른 새로운 신고가 접수되어 일거리가 쌓이겠지.' 내일 출근하면 미해결 사건의 대상자가 발견되어 있기를 막연하게 바랐다.    




다음 날,

나는 사무실 자리에 앉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사건 처리 기록을 살펴보았다.


'맙소사!' 어제 퇴근 전까지 남아 있던 두 사건이 아직 그대로 있었다. 자발적 귀가를 바라던 나의 기대는 사라졌다.  


"형님, 말썽꾸러기 사건을 먼저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인 남자 연락 두절 사건은 아직 변동 사항 없습니다."     

나는 말썽꾸러기 사건의 주인공에게 여러 번 연락했다.


"박○○아, 지금 다른 급한 사건 수사해야 하는데, 집에 가면 안 되겠니? 경찰 아저씨가 부탁할게. 너는 미성년자이고 여자아이라서 아무 일 없어도 경찰관이 확인해야 해."     


박○○은 간단하게 답했다. "싫은데요"     


나와 선배 경찰관은 휴대전화 위치 추적은 물론이고 다양한 경로를 활용했다.

수사 중 알게 된 몇몇 협조자의 도움으로 박○○ 있는 곳의 대강 위치를 알아냈다.


주○동 모텔 밀집 지역으로 수색 범위를 좁혔다.     


약 4시간 동안 상습 가출청소년을 찾아다녔다.


마침내, 피시방에서 놀고 있는 말썽꾸러기를 발견했다.


그녀는 피식피식 웃으며 "경찰관이 찾았네."라고 말했다.

행동과 말투에서 미안해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그녀와 함께 경찰서로 이동했다.

더는 이 녀석에게 시간을 소비할 수 없었다.

다른 동료에게 가족 인계를 부탁했다.     


벌써 오후 6시다.

현재 경찰관의 인원, 접수 방식, 수사 방식을 고려할 때 모든 실종신고를 현장 수색하는 것은 물리적 한계가 명백하다.

자칫 위급한 사건을 놓칠 수 있다.


경찰관은 사람이기 때문에 지속해서 모든 사건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없다.     


"제발 상습 가출자 관련 실종 신고는 기록유지만 했으면 좋겠다. 그에 대한 책임을 자업자득이야."     


나는 정말 필요한 곳에 경찰 역량을 집중할 수 없는 현재의 방식에 불만이 생겼다.

더 나아가 정책을 기획하고 제도를 마련하는 기관 또는 부서에서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현장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암담하기까지 했다.     


동료인 형님은 내게 말하려고 했다.

나는 그의 입이 열리기 전에 먼저 말했다.     


"형, 또 네가 청장 되든지. 이 말하려는 거지?"


"아니, 그럼, 네가 입법자가 되든지." 동료 형은 익살스럽게 말했다.     




이런저런 서류 작업을 하다 보니 퇴근 시간이 훌쩍 넘었다.

지금까지 '연락 두절 사건'에 대한 새로운 소식은 없었다. 나는 점점 마음이 불안해졌다.     


다음 날, 당직 근무 때가 돼서야 아직 해결하지 못한 '연락 끊어진 남성 사건'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 가지 수사를 진행하며 생활반응을 확인했으나 변동 사항이 없다.     


나는 실종자의 동생에게 연락했다.     

"경찰서 실종수사관입니다. 제가 살펴본 바로는 아직 형님의 생활반응은 없습니다. 혹시 연락이 왔거나 다른 소식 있었나요?"     


동생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형의 평소 생활에 대해 말해주었다.


계속 신고가 들어오는 관계로 한계가 있어 아침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밤새 신고되는 사건을 처리하고 아침을 기다렸다. 불안한 마음은 자꾸만 커졌다. 벌써 4일째 소식이 없다.     


새벽 5시 정도 되니 무전기도 쉬는지 간헐적으로 접수되는 112 신고 외에는 조용했다.     


뜨거운 물을 종이컵에 붓고 커피믹스를 섞었다.

그러고 나서 한 모금 마셨다.


목 안을 흘러 위장에 도착한 커피 물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듯했다.

속 쓰림이 생겨 손으로 배를 '통통' 쳤다.     


잠시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다.     


책상 위에 세워져 있는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당직 근무 중 접수된 신고 내용 및 추적 결과를 지방청에 보고하기 위해 서류 작업을 시작했다.     


이 시간쯤 되면 보통 근무자의 체력이 바닥난다. 나는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졸았다.     




날이 밝아왔다. 실종자의 동생과 약속한 시각이다.     

"저 실종자 김○○의 동생입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의자로 안내했다.

그러고 나서 커피믹스 한 잔 담은 종이컵을 그의 손에 건넸다.     


실종자의 동생은 입을 열어 형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 형이 연락 끊기기 이틀 전이었습니다."

"형은 새벽에 일을 하러 항구로 간다고 말했습니다. 그간 일이 없었는데 지인의 소개로 짐 옮기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물었다.

"그러면 그 지인은 동생분이 아는 사람이에요?"     


"네, 알지만 나와 막역한 사이는 아닙니다."     

동생은 손에 주어진 커피 담은 컵을 한 차례 응시했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했다.     


"그날 형은 일을 마치고 기분이 좋았는지 동네 지인 '나친해'를 만나 술 마시고 온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과 형은 친한 사이입니다."     


"음. 그럼 같이 술 마셨던 사람과 이야기해 보았어요?" 나는 실종자의 동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근데 잘 모르겠다고만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통 모르겠더라고요."     


"그 사람. 그러니까 같이 술 마신 사람, 전화번호 아세요?" 나는 무언가 실마리를 찾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여기 휴대전화에….", "그리고 형이 112 신고했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네? 112 신고를 실종자가 했었다고요?" 나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고 불길한 느낌도 들었다. 동생에게 한 번 더 질문했다.     

"누구에게 들었나요? 112 신고했었다는 말."     


실종자의 동생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제 나름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알게 되었는데…. 누구에게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실종자의 동생은 의자에서 일어나 뒤돌아섰다. 그러고서는 몸을 반쯤 돌려 나와 선배 형사에게 말했다. "근데, 밤새우고 계속 일 하는 것 괜찮으세요. 저도 밤새워 운전 일 하고 있어 피곤한 것 압니다. 건강 지키면서 일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살펴 가세요."     

그는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갔다.     


나도 모르게 고민 섞인 한숨이 나왔다.     


베테랑 형사인 나의 파트너 선배가 말했다.

"야, 이거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당분간 집에는 못 갈 것 같다."     


"네, 형님 느낌이 안 좋습니다. 졸음 쫓는 음료(박○스) 마시고 시작하시죠."     




나는 112 신고 기록을 찾아봤다.

동료인 선배는 실종자를 마지막으로 목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실종자의 지인에게 전화했다.     


112 신고는 이첩 온 ○○경찰서 관할에서 접수되었다. 해당 경찰서 신고 기록을 샅샅이 살펴봐도 찾을 수 없었다.


'참 이상하다. 왜 없지?' 난 의문을 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방청 전체 기록으로 범위를 넓혔다.     

(신고 위험 정도에 따라 1단계부터 4단계까지 분류한다. 4단계는 경찰관이 출동하지 않는다. 오인 신고 등 경찰 개입이 없어도 되는 신고로 일선 경찰서 각 부서에 전달되지 않는다.)     


전체 신고 기록에서 실종자가 신고한 흔적을 찾았다. 4단계 종결.     

"음…. 종결 내용…. 특별한 단서는 없네."


나는 녹취기록이 듣고 싶었다.

추적 수사를 하려면 하나하나 의문을 풀면서 나아가야 한다.     


실종사건 접수 번호 및 현재까지 추적 사항을 바탕으로 녹취기록을 들어야 하는 이유를 작성하여 담당자에게 공문발송 했다.     


마침 선배 형사도 전화 통화를 마쳤다.

"아우야, 이 사람 조금 이상하다. 말의 앞뒤가 맞지 않아 그리고 동문서답하네. 만나봐야겠다. 준비하자."     


"알겠습니다. 형님, 몇 시에 출발할까요?"     


선배는 밤샘 근무의 영향으로 피곤해 보였다.

"두 시에 동○천 역 앞에서 보기로 했어." 갈라진 목소리로 답했다.     


두 시까지는 아직 3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형님, 잠깐 쉬세요. 공문 회신 오면 알릴게요."


"어 그럴까. 너도 좀 쉬고 있어." 잠긴 목소리가 안타까웠다.


"저는 아직 형님보다 팔팔합니다." 양팔을 올려 보였다.


"짜식." 선배는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기다리던 공문 회신이 왔다.


이제 그날의 녹취 내용을 들을 수 있다.

나는 선배와 함께 이어폰을 한쪽씩 나누어 귀에 밀어 넣고 파일을 재생했다.     


"..... 너는 싸가지가 없어.... 내가 그랬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누군가와 말다툼하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112 상황 요원이 되묻는 과정이 담겨있었다.

신고자의 위치 및 그 밖의 내용은 없었다.   


"이게 뭐지? 이게 다야?" 나는 선배에게 말했다.


선배는 내 말에 답하는 대신 파일을 다시 재생했다.

그는 머리를 숙인 채, 손으로 귀를 막고 음성파일을 들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선배는 "이거다!"라고 외마디를 뱉었다.     


선배가 찾아냈던 부분은 음성기록 마지막 순간이었다.


전화가 끊기기 전 마지막 순간, 음성 감도가 약해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가 어디냐면" , "뚝".....

그리고 지금까지 실종자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다.     


역시 베테랑 형사인 선배는 달랐다. 같이 옆에서 듣고 있어도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사건은 점점 난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우리는 동○천 역으로 '나친해'를 만나러 출발했다.

나는 긴장했다. '나친해가 실종자를 살해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 했다.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약속 시간이 지났는데 '나친해'는 나타나지 않았다.


주머니에 있던 구겨진 담뱃갑을 열어 선배와 나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같은 담배를 태우고 있었지만 초조해하는 나와 달리 선배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큰 키에 매우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반 팔 상의, 운동복 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나는 그의 크고 건장한 체격을 보고 마음속으로 더욱 긴장했다.     


"나친해씨? 아침에 통화했던 실종팀 형사입니다. 아까 대강 이야기했지만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어 요청했는데 응해줘 감사합니다."

"여기 사람도 많고 그러니 가까운 지구대에 가서 이야기 나눕시다." 선배는 능숙하게 말했다.     


우리는 '나친해'와 함께 역 근처에 있는 지구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던 경찰관에게 소속 신분을 밝히고 조사실 사용을 협조받았다.     


선배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김○○ 씨가 현재까지 실종 상태입니다.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잘 몰라요. 술 마시고…. 또 다른 곳으로 가서 또 마시고…." '그는 더듬더듬 말했다.     


"그러니까 자세하게 말해줘요. 지금 우리가 이유 없이 이러는 거 아닙니다. 용의 선상에 '나친해'씨를 올려놓고 확인하는 것이니 의혹이 없어야 할 거 아니야!" 선배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그러니까 어디서 마지막으로 김○○ 씨 봤어요?"     


"신○동 노래방인데, 저는 몰라요." 큰 덩치의 사내는 선배의 매서운 눈빛에 위축된 것처럼 보였다.


"아니 뭘 계속 모른다고만 말해!" 선배는 물 한 잔을 그에게 건넸다. 그리고 다시 질문했다.


"그 노래방 상호가 어떻게 돼요?"     

남자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답했다.


"상호는 모르겠지만 위치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하로 내려간 것 같아요."

(나는 근무 수첩을 꺼내 위치를 받아 적었다.)     


"그다음은?"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불렀고, 저는 술에 취하고 피곤해서 먼저 나왔습니다."     

선배는 질문을 마치고 그를 보냈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선배는 다시 담배를 태웠다. "이 사람은 아니야. 거짓말하고 있지 않아."


나는 처음에 그를 범인이라고 의심했었다.

하지만 선배의 칼 같은 질문을 통해 그는 용의 선상에서 제외됐다.     


우리는 '나친해'가 알려준 곳으로 갔다.

거리는 각종 상점, 음식점으로 가득했다. 구시가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노래방이 있는 건물에 들어섰다.     

건물은 4층 높이로 1층은 점, 2층은 악기점, 3층은 음악 관련 학원, 4층은 공실 그리고 지하에 노래방이 있었다.

노래방 출입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나는 계단을 통해 각층을 살펴보았다. 계단과 복도에 CCTV는 없었다. 그리고 1층 점을 제외한 다른 곳은 운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곳곳에 먼지가 쌓여있고 출입구는 사슬로 잠겨있었다. 건물 구조가 일반의 그것 과는 조금 달랐다.

'구조가 복잡하네.'     


선배와 나는 1층 점에 방문했다.

"안녕하세요. 경찰관입니다. 실종자를 찾고 있는데 가게 앞 CCTV 영상 볼 수 있을까 해서 왔습니다."

나는 신분증을 제시하며 말했다.


"알겠어요. 보세요. 하지만 조금 있으면 손님이 많아지니 빨리 끝내주세요." 상점 종사자가 말했다.     


"여기 CCTV는 내가 볼 테니 홍 형사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펴봐." 선배는 내게 말했다.     


나는 음식점 밖으로 나갔다. 또 다른 CCTV를 찾고자 돌아다녔다.


'여기 좀 이상하다. 주변 다른 곳은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 건물 사 방향 주위에는 카메라가 없네.'     


그때였다.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홍 형사, 여기로 다시 와봐, 찾았어. 근데 이상해."


"이상하다니요?"


"실종자 이○○과 '나친해'가 함께 걸어가는 것을 발견했어. 그리고 한 참 있다가 '나친해'만 혼자 걸어가는 것이 보여."


이렇게 말한 후 선배는 갑자기 목소리가 작아졌다.     

"이상한 것은 점 앞 외부 카메라에 찍힌 것이 아니야."

"네? 그럼…. 내부 카메라?"  




나는 선배가 있는 점으로 돌아갔다.

상점 종사자가 CCTV 영상을 보고 있는 선배 옆에 서 있었다.     


태연한 척 말했다. "형님, 뭐 좀 나와요?"


"홍 형사 왔네, 아니 아직은 없어. 좀 더 봐야 할 것 같아." 우리는 능청스럽게 연기했다.


이때 상점 종사자가 대화에 끼어들며 말했다.

"더 봐야 해요?"


"아, 네 10분만 더 볼게요. 죄송합니다." 선배는 말했다.


상점 종사자는 퉁명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섰다. 그러고 서는 계산대로 걸어가서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작은 목소리로 선배는 내게 말했다.

"홍 형사, 저기 천장에 달린 CCTV 방향으로 몰래 가서 한 번 봐봐 실종자가 그곳으로 갔어."     


나는 조용히 선배가 가리켰던 방향으로 갔다. 통로를 기준으로 양쪽은 방(룸)이 늘어서 있었다.     


통로의 끝에 다다르자, 작은 승강기가 벽에 붙어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문이 있었다.     


나는 문손잡이를 돌려보았다. 문이 열렸다.

그곳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 살펴보았다. 어둠 속에 또 다른 문이 있었다.


바로 노래방 내부 문이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노래방 내부 문은 잠겨있었다.


나는 반대편으로 몸을 돌려 바라보았다.

순간 너무 깜짝 놀라 소리칠 뻔했다.


사람 형상처럼 보이는 것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까이 다가서서 살펴보니 마네킹이었다.     


'인제 그만 나가자.' 발을 옮겼다.


근데 구석에 작은 철제문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또 뭐야?'

조심스럽게 철제문을 열어보았다. (잠겨있지 않았다.)


작은 방이 나왔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바닥에는 비교적 깨끗하게 보이는 이불이 깔려있었다.

나는 이불을 조심스럽게 들춰보았다.

그곳에 맨홀 뚜껑 크기의 원형 덮개가 방바닥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때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선배가 다급하게 말했다. "빨리 나와!"     


상점 주인이 선배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주인은 소리쳤다. "아니 경찰이면 다야! 왜 CCTV 영상을 함부로 보는 거야!"


선배가 대답했다.

"여기 종업원분에게 허락받고 봤습니다."


종업원이 말했다. "조금만 본다고 했잖아요!"     


cctv 열람이 계속되자 종업원이 사장에게 연락한 것이었다.     

다행히도 사장과 종업원은 나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선배와 나는 눈을 마주쳤다.

선배는 고개를 옆으로 끄덕끄덕했다.     

나는 그 뜻을 눈치채고 조용히 점을 빠져나왔다.     


선배의 말에 의하면 사장은 과시하며 말했다고 한다.

"내가 지역 유명 변호사도 많이 알고 활동도 해!"     


선배는 내가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 사장의 말을 끊듯이 답했다. "맞습니다. 제가 잘 못했네요. 몰라봤습니다."


선배는 더 이상 대응하지 않고 몸을 돌려 빠르게 문을 열고 걸어 나왔다.     


선배와 나는 확신했다. '대형 사건이다!'     




이후, 늦은 밤까지 지역 일대 CCTV를 봤으나 실종자 이○○ 씨는 찾을 수 없었다.

들어가는 모습은 있으나 어디에서도 나오는 모습은 없었다.     


시간이 늦었지만, 실종자의 동생에게 전화했다. 사건의 방향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실종자의 동생은 ○○구청 관제센터 앞으로 한달음에 왔다.     


선배는 실종자의 동생에게 말했다.

"형님 실종 사건은 범죄 수사 사건으로 전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실종자의 동생은 이미 나쁜 상황임을 눈치채고 있는 표정이었다.


선배 대신 내가 답했다.

"범죄 피해 확증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범죄에 연루되었을 것이라고 강하게 추측됩니다."     


실종자의 동생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태웠다. 나와 선배는 가만히 그가 다 태울 동안 기다렸다.

'그도 생각의 여유가 필요할 테니까.'     


실종자의 동생이 선배와 나를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그럼, 범죄 수사도 두 형사님이 하시는 거죠?"


나는 뒷목을 손으로 가볍게 잡고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답했다 "저, 그게 어려울 것 같습니다. 먼저 관할 문제가 있고, 현재 우리가 추측하는 범죄 종류를 고려할 때 강력팀에서 움직일 것 같습니다."     


"○○경찰서는 못 믿겠습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이어서 계속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형이 걱정된다며 ○○경찰서로 일전에 방문했었는데, 거기 경찰관은 이런저런 말을 하며 기다려 보자고 했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이후에도 별다른 조치 없었고요!"

"형이 실종 전에 112 신고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더 이상 경찰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는 가만히 우리를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두 형사님이 맡아 주세요."     


이번에는 선배가 대답했다.

"의견 잘 알아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결정권자에게 한번 건의해 보겠습니다."     


선배는 담배를 손에 들고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경찰서 경찰관들도 훌륭합니다. 만일 우리가 끝까지 수사하지 못하고 넘기게 되더라도 그들을 믿어주세요. 최선을 다할 겁니다."     


실종자의 동생과 헤어지고 나와 선배는 경찰서로 이동했다.


아침에 보고하기 위한 서류를 만들고 퇴근했다.

손목시계는 새벽 3시를 알리고 있었다.     


5시간이 지나고 나는 출근했다. 선배는 이미 먼저 자리에 앉아있었다.


선배는 팀장에게 수사 진행 보고를 했다.

실종 수사에서 범죄 수사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 실종자의 동생이 부탁했던 우리 경찰서 실종 수사팀에서 사건을 끝까지 이끌고 가길 바라는 요청이 있었다는 것도 알렸다.


팀장은 보고할 서류를 가지고 회의에 들어갔다.

나는 그사이 책상을 정리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팀장이 내려왔다.

"사건은 다시 ○○경찰서로 관할 이첩하고, 그간 고생했다." 그리고….     


다른 말은 내게 들리지 않았다.

나와 선배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내 손으로 이 사건의 끝을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매달렸던 사건이 이런 식으로 손에서 떠나자,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나와 선배는 삼겹살과 소주를 한잔 하며 지친 몸을 달랬다.

선배가 말했다.

"홍 형사 고생했어. 나머지는 ○○경찰서 동료에게 맡기자고."


"네, 형님 그래도 뭔가 아쉽네요."


우리는 이런저런 사건에 관한 소회를 밝히며 저녁을 보냈다.

   

이후 본 사건의 진행은 언론에 발표된 바와 같다.     





[출처: 나무위키]

허 씨는 2021년 4월 22일 오전 2시경 김 씨에게 술값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실랑이하다가 화가 나 김 씨를 주먹과 발로 때려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는 2021년 4월 21일 오후 7시 30분께 동네 후배 1명과 이 노래방에 와서 허 씨에게 선불로 30만 원을 내고 놀았다. 후배는 그날 오후 10시 30분에 노래방에서 나갔고, 김 씨는 혼자 더 놀다가 술값 10만 원을 추가로 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현금이 부족했던 김 씨는 허 씨와 실랑이하다가 112로 전화해 "술값을 못 냈다"라고 말한 뒤 잠시 업주와 대화했다. 이어 경찰관에게 "내가 알아서 하는 거다"라고 말하자, 경찰관은 김 씨가 신고를 취소한 것으로 여기고 먼저 전화를 끊었고 출동은 하지도 않았다.     


2명의 말다툼은 몇 시간 동안 계속됐고, 결국 허 씨는 4월 22일 노래방에서 김 씨를 때려 숨지게 했다. 허 씨는 집에서 흉기를 가져와 노래방 화장실에서 시신을 훼손했고 비닐봉지에 담아 보관했다. 시신이 담긴 비닐봉지는 허 씨가 4월 24일 승용차에 싣고 부평구로 옮겨 철마산 중턱 수풀에 버린 것으로 조사됐다.     


그가 운영한 노래방은 구청에서 유흥주점으로 허가받은 업소였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 상황에서 유흥주점은 정부의 방역 수칙상 집합 금지 대상이었다.     




피의자가 검거되고 사건의 전말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공개된 정보에는 실종 수사 담당자였던 나와 선배는 물론 우리 경찰서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래서 나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제부터는 독자 여러분도 필자의 경험을 공유하게 되었다.)    


사건 전체가 평가되고 정리될 때쯤 피해자의 동생으로부터 장문의 글이 왔다.

[... 두 분의 형사님께 감사하고, 자칫 묻힐 뻔한 일이 두 분 덕에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의 내용이다.    


나는 대한민국이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뉴스 사회면에 게재되는 범죄 소식과 내가 겪고 있는 범죄 현장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꽉 막힌 듯 답답하다.


범죄로부터 누군가의 피해를 예방하지 못한 것에 대해,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서 상식 이상의 노력(비효율적인 노력)이 투입되는 현장에 대해,

경찰활동에 대한 과도한 절차적 통제에 대해,

머리와 팔, 다리가 각각 따로따로 움직이는 경찰조직에 대해,

기울어진 인권 보호에 대해, 등.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안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형사 절차 간소화, 경찰 업무 배분 및 수사방식 개선, 적극적 경찰활동에 의해 발생되는 부수적 문제에 대한 면책 규정, 국민의 법감정을 고려한 언론의 해설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상식에 맞지 않는 제도들이 바른 방향으로 바뀔 때가 되었다고 본다.


나는 내 가족, 내 이웃, 내 동료, 내가 속한 시민 사회가 늘 많이 웃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이전 15화 2) 가출청소년, 아이는 부모의 거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