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의 사전적 뜻은 다른 사람이나 어떤 목적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 재산, 명예, 이익 따위를 바치거나 버림. 또는 그것을 빼앗김을 말한다.
경찰관, 군인, 소방관 등은 사명감을 바탕으로 하는 직업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희생’이라는 단어가 업무에 수반될 수 있다.
군인의 경우 6.25 전쟁, 베트남전쟁 외 강릉 무장 공비 침투 사건, 제1 연평해전,제2 연평해전,천안함 폭침 사건 등 외부의 적으로부터 국민의 생명 및 평화를 지키고자 희생했다.
소방관은 우리가 언론에서 본 바와 같이 화재 및 구조 현장에서 순직하는 경우가 있다.
경찰관도 마찬가지다. 경찰관직무집행법에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라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자살시도자의 행위를 막다가 유명을 달리한 경찰관, 교통사고 현장을 수습하다가 2차 사고로 희생한 경찰관, 범인이 휘두른 흉기에 쓰러진 경찰관, 재해재난 현장 등 수많은 신고 현장에서 경찰관이 다치고 희생되었다.
1) 몸이 움직이면 목표가 될 수 있다.
내가 처음부터 경찰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기업에 이력서를 냈다. 그러나 줄줄이 고배를 들었다. 대학 동창들은 일반 행정공무원, 교정 공무원, 보호 관찰공무원, 검찰공무원, 법원 공무원, 경찰공무원으로 합격하여 저마다 역할하고 있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라는 말이 있다. 허물없이 지냈던 친구 3명이 경찰관이 되었다. 3명의 친구는 돌아가며 나에게 술 한잔 사주며 경찰 생활에 관해 이야기했다. 대학 시절 배운 법 지식이 현장에서 적용되고, 판결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법 전공자인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또한 직업으로서도 큰 부족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너도 한 번 해봐."라고 조언했다.
한동안 고민했다. 그러나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손에 넣을 수 없었다. 답 없는 공상만 계속 이어졌다. 친구들의 당당한 모습이 부러웠는지 '나도 한번 해 볼까.'라는 얕은 생각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마음의 결정을 하고 경찰 공채 시험을 준비하기로 했다.
졸업 후 다시 책을 펼치니 마음속 잡념이 가라앉았다. 생각이 단순하게 되자 집중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었고 결국 '경찰관이 되고 싶다.'라는 목표가 생겼다.
새벽에 일어나 구립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했고 밤에는 인터넷 강의를 시청하며 그날 공부를 정리했다. 돌이켜 보면 합격만을 위해 열심히 했었던 것 같다. 아직 사명감이라는 숭고한 정신은 내게 없다.
하지만 소중한 깨달음 하나를 얻었다.
머릿속에만 있는 계획은 나만의 고민으로 남는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생각만 하지 말고 몰입하여 몸을 움직여 보자. 공부든, 산책이든, 운동이든…. 긍정의 에너지가 또는 다시 한번 해 보자는 힘이 생길 것이다.
나는 미래에 대한 고민을 몸으로 움직여 해답을 찾았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게 되었다.
2) 지금부터 나도 경찰관
8개월간 경찰학교에서 실무 공부하고 경찰 현장에 대해 간접경험을 했다. 그 가운데 나의 눈과 마음을 집중시킨 교육과정이 있었다.
'오원춘 사건', 전 국민을 충격으로 몰고 간 비극적 사건이다.
교육 시작 전 [범죄 피해로 유명을 달리한 고인에게 머리를 숙이고, 대한민국에서 이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노라] 묵념 후 교육 영상을 시청하였다.
2012년 4월 1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서 중국 국적 조선족 오원춘(남)이 한국인 여성(당시 28세)을 어두운 길가에서 이유 없이 폭행하였다.
그는 바닥에 쓰러진 피해자를 끌고 다세대 주택 건물로 들어갔다. 그곳에 오원춘의 단칸방 집이 있었다. (방 안에서 2회 성폭행 시도 있었으나 피해자의 강한 저항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한다)
범인이 잠시 자리를 떠난 사이 피해자는 휴대전화를 이용하여 112 신고했다. 112 신고 접수한 상황 요원은 반복 질문 등 미흡한 대처로 범죄 피해 발생을 예방하지 못했다. 이후 피해자가 설명했던 장소로 출동했던 경찰관들은 야간 시간을 이유로가가호호를 방문 확인하지 못했다.
늦은 시간 소란으로 시민의 민원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영상 속 사건 현장은 참혹했다. 수 개의 비닐봉지에 피해자의 신체 각 부분이 담겨있었다. 피부만 벗겨낸 부위도 있었다. (동공 확인을 위해) 절단된 피해자의안면 부, 감겨있는 눈꺼풀을 핀셋으로 들어 올렸다. 눈꺼풀 안에 감추어 있던 눈동자를 마주하자, 피해자의 고통이 나의 마음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이상 자세한 묘사는 부적절하다고 판단되어 줄인다.)
교육 종료 후 야외 벤치에 멍한 모습으로 앉았다.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잠시 뒤
수업 중 느껴졌던 분노와 슬픔이 점차 사그라졌다. 그리고 사그라진 그곳에 '범죄에 의해 고통받는 국민을 외면하지 않겠다.'라는 마음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경찰 사명감이라는 씨앗이 나의 가슴속에 심어졌다.
중앙경찰학교 교육과정을 모두 마치고 임명장을 받았다. 이제부터 나도 진짜 경찰관이 되었다.
설레는 마음과 걱정의 마음이 동시에 문 두드렸다.
[무엇이든 잘 모르면 겁이 난다. 처음에 초보가 아니었던 운전자는 없다. 중략. 두려움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서두에서 발췌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