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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Dec 04. 2023

이재수의 거의와 천주교의 섬멸

이재수 실긔, 夜月의 漢拏山

李在守의 擧義와 天主敎의 殲滅(前篇)
-이재수의 손아래 누이 이순옥이 말하고(述), 제주도 한경면 낙천리 서당 훈장 출신 조무빈이 받아 쓰다(記).  


이때 제수(在守)난 이십오 세의 열열한 의용남자(義勇男子)이다. 울분(憤)한 용긔(勇氣)가 비등(沸騰)하야 일시일각을 멈추지 안이하고 창의(倡義) ¹ 하기를 불으지젓다.


때맛침 동군(同郡) 유생(儒生) 오대현(吳大鉉)은 쳔주교도의 포악무도(暴惡無道)함을 군수 김창수의게 등장(等狀)²코저 동지(同志) 강우백(姜遇伯)으로 더부러 여러 백셩을 거나리고 명월진(明月陣)³에 일으니 이에 선교사 구마실은 다수의 교도들을 선동하야 총긔를 휴대하고 란민을 해산식히겟다 위명(爲名)⁴하고 여러 백셩들과 정면충돌하야 두령(頭領)인 오대현(吳大鉉)은 생금(生擒)⁵되얏다.


쳔주교도들은 여러 백셩을 해산한 후 그의 세력은 더욱 팽창하야 정의(㫌義)⁶ 大靜 각지에 슌회하며 시위 공갈이 자심하야 량민 김봉년(金奉年) 등 두 사람을 총살하엿다. 이때에 제수(在守)는 봉(鳳)의 눈을 불읍뜨고 손에 쥭창을 들고 여러 백성을 향하야 “뉘 능히 나를 좃칠고!” 고성절규(高聲絶叫) 하얏다. 이에,


제쥬도 죠사생(趙士生)

어음리(於音里) 김갑송(金甲松) 강계룡(姜癸龍)

동광리(東廣里) 림신문(林信文) 림신학(林信學) 림원백(林元伯) 림원관(林元寬)

서광리(西廣里) 리제식(李在植) 리용반(李龍班) 강여운(姜汝雲)

덕수리(德修里) 송거화(宋巨化) 송무길(宋戊吉) 김진환(金珍煥)

광평리(廣坪里) 고달련(高達連)

구억리(九億里) 안긔옥(安基玉)

죠수리(造水里) 죠평록(趙平錄) 조운규(趙雲奎) 죠갑련(趙甲連) 송해팔(宋海八) 조병현(趙秉鉉)

락천리(樂泉里) 고운룡(高雲龍)

청수리(淸水里) 강명문(姜明文)

저지리(楮旨里) 리죵련(李宗連) 현명운(玄明云) 리화츈(李花春) 리쳔손(李千孫) 최두성(崔斗星)                                   리명진(李明辰)

사계리(沙溪里) 김상백(金相伯)

보성리(保城里) 김길홍(金吉弘)

덕천리(德泉리) 고제홍(高才弘) 조관돌(趙官乭) 조석흥(趙石興)

와산리(臥山里) 김명석(金命錫) 김죵석(金宗錫) 김군즁(金君仲) 김운표(金雲杓) 고평츈(高平春)                                    강계문(姜癸文) 김긔홍(金基弘)

등 여러 포수(砲手)난 이구동성으로 일시에 응종(應從)⁷하얏다.


이에 제수(在守)난 모든 포수들로 더부러 쳔지(天地)에 제사(祭祀)하고 삽혈위맹(歃血爲盟)⁸한 후 여러 사람에게 향하야 갈오대 “남아 세상에 쳐하야 우흐로 국가를 도와 사직을 안보하며 밧그로 생민(生民)을 위하야 잔악무도한 무리를 한칼에 뭇질너 참초제근(斬草除根)⁹하난 것이 대장부의 활 일이요 국민된 의무이다. 그대 등(君等)은 일심으로 용진물퇴(勇進勿退) 할지어다.” 즉시 조명록(趙明錄)으로 종군모사(從軍謀士)를 임명하야 사방에 진격하니 그 격문(檄文)에 하얏스되


”무릇 대의(大義)를 창(倡)함에 영웅호걸을 사귀지 안이할 자 잇지 안이하며 대적(大敵)을 토벌할 제 의병(義兵)을 몬저 쓰지 안이하면 능히 셩공치 못할지라 모혀라 모혀라 영웅열사여 이 사선(死線)에 빈(濱)¹⁰한 제쥬(濟州) 사람들아 우리 생활의 토대인 제쥬도는 날날이 궁핍의 연(淵)으로 향하야 간다. 일어날지어다. 일어날지어다. 제쥬도 인민들아 저- 무리(無理)한 폭도들을 토멸할지어다. 신축년(辛丑年) 삼월(三月) 日 리제수(李在守) 포고(布告)”


이 격문(檄文)을 본 여러 벡성들은 조수(潮水) 물밀 듯 제수진즁(在守陣中)에 모혀들기 시작하야 불긔일(不幾日)¹¹에 수쳔명예 달하얏다. 이때 제주(在守)는 의긔(義旗)¹²를 놉히들고 여러 벡셩을 거나려 장차 제주셩(濟州城)으로 향할새 제수모친(在守母親) 송시부인(宋氏夫人)은 제수(在守)의 신변을 염려하야 행군함을 만류하얏다.


그러나 제수(在守)는 정대(正大)¹³한 말로 그- 모친의게 향하야,

“아해¹⁴ 일즉이 불초(不肖)¹⁵하와 이현부모(以顯父母)¹⁶난 못할지라도 이 도탄(塗炭)에 든 벡셩(百姓)을 위하야 한번 나아가 우리에 악마갓흔 대적(大敵)을 소멸하고 다시 요슌(堯舜)의 일월(日月)을 보게 되면 이 몸은 쥭어도 산사람을 불읍지¹⁷ 안이함니다. 아못죠록 어마님은 하려(下慮)¹⁸치 마시옵소서”라고 하엿다.


<옮긴이 註>

¹창의(倡義)-국란(國亂)을 당하여 의병을 일으킴.

²등장(等狀)-여러 사람이 연서하여 관청에 하소연함.

³명월진(明月陣)-제주 9개 진(陣) 가운데 유일하게 수군만호가 지휘했던, 영조 40년부터 고종 32년까지 131년 동안 수군이 주둔한 한림읍 소재의 해군주둔지.

⁴위명(爲名)-지위나 신분을 나타내는 말과 함께 쓰여, 그 지위나 신분으로 행세함을 이르는 말. 여기서는 그 지위나 신분에 걸맞지 못함을 비꼬아서 말함.

⁵생금(生擒)-생포

⁶정의(㫌義)-조선시대 제주는 1牧 2縣의 행정구역이 있었는데, 제주시에 해당하는 제주목(濟州牧), 서귀포시 서쪽에 해당하는 대정현(大靜縣), 서귀포시 동쪽에 해당하는 정의현(㫌義縣)이 그것이다.

⁷응종(應從)-명령이나 요구 따위에 그대로 응하여 따름.

⁸삽혈위맹(歃血爲盟)-피를 마시게 하고 맹세함.

⁹참초제근(斬草除根)-풀을 베어 내고 뿌리를 뽑아버린다는 뜻으로, 화근을 아주 없애버림을 이르는 말.

¹⁰빈(濱)-물가 가장자리에 임박한

¹¹불긔일(不幾日)-며칠 안돼

¹²의긔(義旗)-의병의 군기

¹³정대(正大)-바르고 옳아서 사사(私事)로움이 없음.

¹⁴아해(兒孩)-아이의 옛말로, 여기서는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

¹⁵불초(不肖)-닮지 않았다는 뜻으로, 매우 어리석은 사람을 말하거나 자식이 부모에게 낮출 때 쓰는 말.

¹⁶이현부모(以顯父母)-부모의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어 효를 다하는 것(以顯父母 孝之終也-孝經).

¹⁷불읍지-부럽지

¹⁸하려(下慮)-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염려하여 줌, 또는 그런 염려를 아랫사람이 높여서 이르는 말. 주로 편지에서 많이 쓴다.

신축민란 당시 프랑스 함대장이 찍은 관덕정 마당의 목잘린 천주교도 주검들

이재수의 거의와 천주교의 섬멸(後篇)

이순옥이 말하고(述), 조무빈이 쓰다(記).


제수(在守)는 즉시 강우벡(姜遇伯)으로 일지군(一枝軍)¹을 거나려 우선 정의(㫌義)로부터 각 방면에 의취(蟻聚)²한 교도를 토멸하야 약속을 위반(違反)업시 동(東)으로 제주성(濟州城)에 일으게 하고 제수(在守)는 스사로 대군을 거나려 대정군(大靜郡)을 떠나 차귀(遮歸) 두모(頭毛)를 넘어 협제(挾才)에 달아 군사를 호귀(犒饋)³하고 행군(行軍)코저 할 시에 문득 군사(軍士) 보(報)하되 일본인(日本人) 황쳔류즁랑(荒川留重郞)⁴이 장군(將軍)의게 보옵기를 청(請)다 하거날 제수(在守) 마음에 심히 의아(疑訝)하야 그- 연고를 물으니 황천공(荒川公)은 두 번 절하고 일으되 “들으니 장군께서 위민제해(爲民除害)⁵할 할 목적으로 여러 군사를 거나려 제주셩(濟州城)으로 행군하신다 하니 내 일즉⁶ 한 보검(寶劍)이 잇기로 장군께 들이오니 목적 달(達)하기를 바라난 바이 올시다.”


이에 제수(在守) 칼을 바다 자서히 보니 찬 긔운은 사람의 마음을 놀내난지라 그 동정(同情)의 감사함을 무수히 사례하고 칼 일홈⁷을 황쳔검(荒川劍)이라 하얏다.


제수(在守) 군사를 거나려 장구대진(長驅大進的)⁸으로 명월(明月) 한림(翰林) 귀덕(歸德)을 지나 곽지(郭支)에 일으자 맛참 일락서산(日落西山) 해난 떨어지고 온갓 새난 다 제각기 짓⁹을 차저 날아간다. 제수(在守) 여긔서 하로밤을 새이랴고 류진(留陣)하려 할 지음에 한민가(一民家)에서 불의지화(不意之火)가 일어낫다. 촌락인민이 모다 원할 뿐 안이라 군사들도 진화에 가세하려 할세 제수(在守) 이를 억제하며 말하되 “저것은 아마 쳔주교들의 방화이다. 물론(勿論) 우리를 해(害)하려는 획책이 분명하니 그대들은 깁히 쥬의(注意)할 지어다.” 이에 군사들은 모다 제수(在守)의 말을 의아(疑訝)하고 잇섯다.


날이 새자 제수(在守)난 그 동리 경민장(警民長)¹⁰을 포박(捕縛)하야 업들여 노코 황쳔검(荒川劒)을 빼여들고 봉(鳳)의 눈을 불읍떠 “너 이놈아- 너의들 이곳 쳔주교도들이 안이냐? 어제밤 화제(火災)도 너의들의 방화(放火)가 안이냐! 너 이놈아- 네가 말치 안이하야도 나는 죄다 안다. 너 이놈아 꼭 바른말을 못한다면 너의 목숨은 이 칼 끝에 잇다” 함에 “장군이시여 아못조록 저를 살녀주소서. 어재밤 방화사실도 장군을 해(害)하려고 한 획책(劃策)이엿섯슴니디만은 금후로는 이런 음모의 행동을 안이하겟사오니 관대하신 마음으로 이번만 살녀 쥬시옵소서“ 애걸복걸하얏다.


제수(在守)난 일후(日後) 회게(悔改)하야 량민(良民)이 되어라는 관대하신 마음으로써 포승(捕繩)을 끌너쥬섯다. 이때 군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장군(將軍)은 참말 령긔(靈氣)를 타고 나섯다. 장군의 예언은 모도 마젓도다.”하며 함셩(聲)을 질너 군악을 치고 춤을 추어 일대 시위행군을 하엿다.


즉시 곽지리(郭支里)를 떠나 애월(涯月) 고내(高內)를 지나 신구엄(新舊嚴)¹¹ 상하귀(上下貴)¹² 내외도(內外都)¹³를 거처 황사팽야(黃砂平野)¹⁴에 일으니 향곡백성(鄕曲百姓)¹⁵들은 떡과 술을 삐저 군전(軍前)에 환영하며 마권찰장(磨拳擦掌)¹⁶하야 날로 좃난 자(者)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일우엇다. 이럼으로 여러 벡셩(百姓)들은 호긔(豪氣)스러운 긔운이 일층 분발하야 교도를 잡난대로 살육(殺戮)하얏다.


이 광경을 본 쳔쥬교 선교사 구마실 문제만(文濟萬) 등은 여러 교도를 선동하야 군기고(軍器庫) 문을 님의(任意)로 여러햇치고 칠백여근(七百餘(斤)의 대포 오십분(五十門)과 사백여근(四百餘斤)의 대포 오십분(五十門)과 속사포(速射砲)가 五十門이며 장총단총(長銃短銃)이 백여병(柄)¹⁷이요. 긔관총(機關銃)이 이십문이며 장검패검장창(長劍佩劍長槍)이 삼쳔여병(三千餘柄)이요 화약이 오만관(五萬貫)이며 탄환이 만여 발이라 잇난대로 휴대하고 삼대문(三大門) 밋(及) 포대구(砲臺口)에 대포 즁포(中包)를 걸고 일야(日夜)로 방어에 골몰하엿다.


마참 동도(東道)로 출정(出征)인 강우백(姜遇伯)도 여러 군사를 거날이고 제수(在守)와 일쳐(一處)에 모히여 군용(軍容)은 더욱 졍숙(正肅)하엿다. 선교사 구마실은 시세(時勢) 그릇됨을 짐작하고 군수(郡守) 김창수(金昌洙)를 즁제(仲裁)로 하야 생(生)금한 오대현(吳大鉉)을 돌녀보내고 강화(講和)하기를 애걸(哀乞)하엿다. 그러나 제수(在守)는 오대현(吳大鉉) 강우백(姜偶伯)으로 동도(東道) 가은지(加恩旨)¹⁸를 슌회(巡廻)케 하고 자긔(自己)난 서도(西道) 대로(大路)에 웅거(雄據)하야 교도를 수포살육(搜捕殺戮)¹⁹하니 그 쥭난자 무수하엿다. 미신(迷信)을 조와하고 선교사 위력을 자세(藉勢)²⁰하든 교도들은 청쳔(靑天)에 벽력(霹靂)을 만나 혼비백산(魂飛魄散)하야 제쥬성내(濟州城內)로 몰녀들어 제쥬성은 일대 적굴(賊窟)²¹을 쥬성(做成)²²하얏다.


선교사 구(具)마실 문제만(文濟萬)은 불국식(佛國式) 상혈포(雙穴砲)를 연발하면서 일변(一邊)으로 교도의게 전력을 다하야 방어하다가 모자에 탄환을 맛고 정신이 쵀절(挫折)²³하야 감(敢)히 츌전할 용긔가 업섯다.


때마참 포수(砲手) 림신문(林信文)은 무참히도 진선(陣線)에서 전망(戰亡)하얏다. 이에 제수(在守)난 비척(悲慽)²⁴한 얼골에 강개(慷慨)한 빗을 띄고 그- 시신(尸身)을 거두워 일부토 일국루(一坏土 一掬淚)²⁵로 동정(同情)의 넘침을 가지고 의장(義葬)²⁶하엿다. 림신문(林信文)은 자래(自來)로 제주(在守)와 교계(交契)²⁷가 친밀할뿐더러 그의 제조(才操)는 백보천양(白步穿楊)²⁷⁻¹의 수단(手段)으로 백발백즁(百發百中)이엿섯다.


제주성(濟州城)은 일련(一連) 십여일(十餘日)에 의군(義軍)의 포위즁(包圍中)에서 물화두절(物貨杜絶)은 물론이요 시량(柴糧)²⁸이 핍절(乏絶)²⁹하야 남녀벡셩들은 군수 김창수의게 셩문을 열어 의군입셩(義軍入城) 하기를 하소연하얏다.


군수 김창수난 셩문(城門) 개폐(開閉)는 고사(姑捨)³⁰하고 자신의 자유도 부득(不得)³¹이다. 이때 선교사 구마실은 교도 최제보(崔在甫) 등을 경셩쥬졔(京城駐在) 불국공사(佛國公使)의게 보내여 구원병을 의래(依賴)하고 암즁(暗中) 활약적(活躍的)으로 의군(義軍)을 소멸하고저 계획중에 백성들이 셩문 열기를 호소함에 상혼(喪魂)³² 낙담(落膽)하야 군수 김창수를 즁재(仲裁)로 삼일(三日)만 연긔하야 달나고 요구하얏다.


삼일(三日)은 즉 사월 십오일이다. 사월 십오일이 당도하야도 불군(佛軍)은 그림자도 볼 수 업섯다. 구마실 문제만 등은 또 삼일만 연긔(延期)하야 달나고 애걸복걸하엿다. 군수 김창수는 선교사 세력에 하난 수 업서 사월 십팔일에는 틀님업시 열어쥬겟다고 여러 백성의게 향하야 포고하얏다.


사월 십팔일이 당도함에 일반 남녀백셩들은 관정(官庭)에 모혀들어 문 열기를 청하니 이때를 당한 구마실 문제만 등은 다시 할 말이 업고 군수 김창수도 식언(食言)할 수 업서 묵묵함구 할 뿐이다.


혈기(血氣)³³ 남아 김남혁(金南赫)³⁴은 선교사 구마실의 쥬구(走狗)³⁵인 박사당(朴斯黨)³⁵⁻¹ 무리를 포박하야 관덕정(觀德亭) 광장에 날치(拿致)³⁶하고 각 포대구(砲臺口)에 걸닌 군긔(軍器)를 거두고 일변(一邊) 셩문을 열어 긔(旗)를 둘니고 의군입성(義軍入城)하기를 보도(報道)³⁷하엿다. 이에 제수(在守)난 여러 군사를 휘동(揮動)³⁸하야 일자(一字) 안행열(雁行列)³⁹을 지어 점진적(漸進的) 제주 성내(城內)로 행진할세 긔치(旗幟)난 일월(日月)을 갈우고 함셩은 원근에 진동한다.


대소장졸(大小將卒)은 한거름 두거름 불원지(不遠旨)⁴⁰를 얼풋⁴¹ 넘어 병문쳔(屛門川)⁴²에 일으니 제쥬경내 백성들은 세 살 된 어린아해 일헛던 어마니를 다시 만난 듯 거리거리 좌우에 향촉(香燭)을 밧들어 환영하난 소래며 회백색(灰白色)의 몬지는 일장(一場) 몽농(濛濃)한 공긔(空氣)를 작성(作成)하얏다.


이에 제수(在守) 말을 채질하야 관덕정(觀德亭)에 들어가서 좌차(座次)⁴³를 정하고 군사를 호령하야 수성(守城) 교도며 잠복한 불국 선교사 무리를 일일(一一) 수색하야 관덕정 광장에 라립(羅立)하고 수죄(數罪)하여 왈(曰),


“교도들은 들으라 너희들은 죠선 사람으로 불국인(佛國人)의 위력을 자세(藉勢)²⁰하고 량가(良家)의 부녀들을 모욕하며 무해(無瑕)⁴⁴한 인민을 총살하고 수십 년 전에 척매(斥賣)한 토지를 륵환(勒還)⁴⁵하며 수쳔년(數千年) 금호금양(禁護禁養)⁴⁶한 쳔년송(千年松) 만년평(萬年憉)⁴⁷을 자유(自由) 작벌(斫伐)⁴⁸하며 민가(民家)에 츅복긔도(祝福祈禱)함을 임의파괴(任意破壞)하고 애자지원(睚眦之怨)⁴⁹이 잇스면 너희들은 당(黨)을 지어 슌직(順直)한 량민(良民)을 교당에나 지회소(支會所)에 잡어다가 별별 사형(私刑)을 다하야 너의 마음에 차지 안이하면 심지(甚至) 타살(打殺)까지 하고 남의 제산(財産)을 륵탈강탈(勒奪强奪)하는 것이 각일각(刻一刻)⁵⁰ 심하야 우리 제쥬사람들은 업(業)을 일코 도로와 산곡(山谷)에  방황하야 생게(生計)의 도(道)를 자유치 못하니 교도가 안이고 폭도(暴徒)이다. 너의 폭도들을 일시(一時)라도 용대(容貸)⁵¹할 수는 업다” 하고, 좌우(左右) 장졸을 호령하야 차제(次第)⁵²로 쥬육(誅戮)⁵³하니 그 수난 수쳔명(數千名)⁵⁴에 달하야 피가 흘너 내를 일우고 쥭엄은 태산갓다.


불국인 아오시증(亞奧斯證)⁵⁵은 군아랑하(郡衙廊下)⁵⁶에서 채포(逮捕)하고 최아가백(崔雅歌伯)⁵⁷은 보리밧에서 포획하야 관덕정 광장에 날입(拿立)⁵⁸하고 수죄(數罪)⁵⁹하여 왈(曰),


“너히는 외국사람⁶⁰으로 쳔주교이니 셩교이니 미명(美名)의 간판하에서 교도들을 모집하야 교의 취지난 고사하고 조선내정을 탐시(探視)⁶¹할뿐더러 교도들을 사촉(使嗾)⁶²하야 폭행이 자심하니 죠금도 용서할 수 업다.”하고 황천검(荒川劍)을 뻬여 들으니 두 사람의 머리는 오호애제(嗚呼哀哉)⁶³로다.


군수(郡守) 김창수(金昌洙)는 국교문제가 험악할가 념려하야 조복(朝服)⁶⁴을 입고 객사(客舍)⁶⁵에 나가서 자살코자 하얏다. 이 소식을 들은 리제수(李在守)는 공구(恐懼)⁶⁶한 마음을 이긔지 못하야 즉시 군수 김창수를 위해(慰解)⁶⁷하고 선교사 구마실(具瑪瑟) 문제만(文濟萬) 수삭령(搜索令)을 일변(一邊) 거두엇다. 셩산(城山)⁶⁸에 둥근 태양은 어느듯 사봉락죠(沙峰落照)⁶⁹로 변하얏다.


쥭은 듯 고요한 밤에 군경(軍警)⁷⁰은 초경(初更)⁷¹ 이경(二更)⁷² 삼경(三更)⁷³을 보(報)하얏다. 제주(在守) 몸이 피곤하야 안석(案席)⁷⁴에 누어 잠간 조우더니 비몽사몽(非夢似夢)간에 일위로인(一位老人)⁷⁵이 홍안벡발(紅顔白髮)⁷⁶에 쳥려장(靑黎杖)⁷⁷을 손에 들고 표연(飄然)히 들어와서 “즉금(卽今)⁷⁸ 그대의 몸에 불칙(不測)⁷⁹한 화가 밋칠지라 그대는 십분(十分-충분히) 조심(操心)하야 신변을 경계(警戒)할 지어다.”


제수(在守)는 놀내여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夢)⁸⁰이라 한츌쳠배(汗出沾背)⁸¹하고 밤은 삼경을 보(報)하야 월색(月色)은 쳠하(檐下)⁸² 끝에 이즈러젓다. 마음에 심히 괴의(怪疑)하야 갑주(甲冑)를 입고 황쳔검(荒天劒)⁸³ 손에 잡고 군즁(軍中)에 슌행(巡行)할세 대청(大廳) 뒷마루 엽헤 한 아해 은신(隱身)하얏다가 사람 자취 소래에 놀내여 도망(逃亡)코저 하거늘 제수(在守) 급히 달려가가서 그- 아해를 붓들고 전신(全身)을 수색하니 비수낫(匕首낫)⁸⁴ 하나가 낫타난자라 즉시 목을 배혀 군즁에 회시(回示)⁸⁵하고 한라산을 향하야 무수히 사례하얏다.


그 뒷날 새벽에 제주(在守)난 긔침(起枕)하야 오대현(吳大鉉) 강우백(姜遇伯)으로 군용(軍容)을 졍제(整齊)케 하고 산망(散亡)⁸⁶한 교도들을 수삭(搜索)하라 하얏다.


이때 각 관속(官屬)의 집 부녀(婦女)들이 주육(酒肉)을 가지고 진즁(陣中)에 들어와서 그- 치하(致賀)하난 거동(擧動)은 태평기상(太平氣像)을 자어낸지라 제수(在守) 술을 일배일배(一盃一盃) 마신 후에 황쳔검(荒川劒) 빼여 들고 안쥬를 칼끝으로 꾀여 모든 군사들에게 주면서 말하되, “대장부 국가를 위하야 폭도들을 토멸(討滅)하고 인민을 토탄 중에서 건젓스니 이몸은 히셩(犧牲)이 될지라도 팽생(平生)에 마음을 족(足)히 위로(慰勞)할 지로다.”하고 인(因)하야 파로곡(破爐曲)⁸⁷을 지어 노래하니 그- 곡조(曲調)에 하얏스되,


칼을 잡고 관덕정(觀德亭)에 일으니

성(城)은 긋고⁸⁸ 바다는 깁흐도다.

호리(狐狸)⁸⁹들은 꼬리를 감추도다.

장군(將軍)의 위덕(威德)이 놉흐시니

선우(單于)⁹⁰ 밤에 도망하도다.

방백리(方百里))⁹¹ 우리 제쥬(濟州)난

이로부터 안도(安堵)하리로다.


장졸(將卒)이 이 노래를 맛츰에 제수(在守) 또다시 슐잔을 잡으시고 영쥬십경(瀛洲十景)을 노래하니 그 십경가(十景歌)는 아래와 갓도다.


<옮긴이의 註)

¹일지군(一枝軍)-한 무리의 병사

²의취(蟻聚)-개미떼같이 많이 모여듦.

³호귀((犒饋·호궤)-군사에게 음식을 주어 위로함.

⁴황쳔류즁랑(荒川留重郞)-비양도에 살며 전복과 멸치 어업을 하던 일본인 아라가와(あらがわ·荒川), 신축항쟁 이후 조천면의 사립의흥학교에서 일본어와 개량된 어업기술을 가르치기도 함.

⁵위민제해(爲民除害)-백성을 위해서 화근을 없앰.

⁶일즉-‘일찍’의 옛말.

⁷일홈-이름

⁸장구대진(長驅大進的)-멀리 몰아서 훌쩍 나아감.

⁹짓(=깃의 古語)-보금자리

¹⁰경민장(警民長)-지금의 里長에 해당함.

¹¹신구엄(新舊嚴)-신엄리와 구엄리

¹²상하귀(上下貴)-상귀리와 하귀리

¹³내외도(內外都)-내도리와 외도리

¹⁴황사팽야(黃砂平野)-황사평, 황새왓으로 불린다. 이재수를 비롯한 주모자들의 평리원 재판 후 천주교 측이 수백 명의 희생된 천주교 교도들의 시신을 묻을 땅을 정부에 요청하여 협상한 결과, 1903년 9월 14일 대한제국 외부(外部)에서 제주목사 홍종우에게 훈령을 내려 “황사평을 천주교인 매장 조계지로 확정하라”고 지시함으로써 1904년 희생자들의 유해가 황사평에 안장되고 장례식이 치러졌다. *위 홍종우(洪鍾宇) 목사는 개항기 조선인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이자 김옥균을 암살한 대한제국의 ‘황실파’ 관료이며 친불인사로 불 수 있다.

¹⁵향곡백성(鄕曲百姓)-시골구석에 사는 백성

¹⁶마권찰장(磨拳擦掌)-주먹을 문지르고 손을 비비다; 한바탕 해 보려고 단단히 벼르다.

¹⁷병(柄)-창이나 칼의 단위(자루)

¹⁸가은지(加恩旨)-‘旨’는 언덕배기를 뜻하는 모루이나 지역의 위치는 불명하다. (가은모루)

¹⁹수포살육(搜捕殺戮)-잡아서 마구죽임.

²⁰자세(藉勢)-남의 세력을 믿고 세도를 부림.

²¹적굴(賊窟)-도둑굴

²²쥬성(做成)-달성

²³쵀절(挫折)-마음과 기운(氣運)이 꺾임.

²⁴비척(悲慽)-측은하며 슬픔.

²⁵일부토 일국루(一坏土 一掬淚)-한 줌의 흙을 붓고 한움큼의 눈물을 쏟음.

²⁶의장(義葬)-장례

²⁷교계(交契)-사귄 정분(情分)

²⁷⁻¹백보천양(白步穿楊)-활을 썩 잘 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활쏘기의 명수가 백 발자국 밖에 있는 버들잎을 하나하나 꿰뚫어 맞힌 데서 유래한 말.

²⁸시량(柴糧)-땔나무와 먹을 양식.

²⁹핍절(乏絶)-공급이 끊김.

³⁰고사(姑捨)-더 말할 것도 없고

³¹부득(不得)-할 수가 없다.

³²상혼(喪魂)-매우 놀라거나 혼이 나서 얼이 빠짐.

³³혈기(血氣)-격동(激動)되기 쉬운 의기(義氣)

³⁴김남혁(金南赫)-김옥희의 ‘제주도 신축년교난사’에는 김남학(金南鶴)으로 쓰여있음.

³⁵쥬구(走狗)-‘사냥개’의 뜻으로, 남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

³⁵⁻¹박사당(朴斯黨)-창의군이 첫 번째 처벌 목표로 삼았던 구마실 신부의 측근 崔亨淳 일당이라 보임. 장두(狀頭) 이재수가 칼을 쥐고 나와서 “최형순은 물을 것도 없다.”라 하고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어 이를 먼저 죽였다. -이옥희의 ‘제주도 신축년교난사’ 중 발췌)

³⁶날치(拿致)-죄인을 강제로 잡아 옴.

³⁷보도(報道)-알려줌.

³⁸휘동(揮動)-흔들어 움직이다.

³⁹안행열(雁行列)-기러기 대형의 열

⁴⁰불원지(不遠旨)-멀지 않은 고개마루, 제주시 서쪽 언덕배기인 모루로 보이나 정확한 지명은 불명확함.

⁴¹얼풋-얼른

⁴²병문쳔(屛門川)-제주시 오라동에서 발원하여 용담동 해안으로 흐르는 지방하천

⁴³좌차(座次)-앉을 자리의 차례(次例))

⁴⁴무해(無瑕·무하)-조금도 흠이 없음. 조금도 티가 없음.

⁴⁵척매(斥賣)한 토지를 륵환(勒還)-싸게 산 땅을 비싸게 되파는 것을 말함.

⁴⁶금호금양(禁護禁養)-특정 지역의 산림에서 수목(樹木)의 벌채, 분묘(墳墓)의 설치, 농지(農地)의 개간, 토석(土石)의 채취 등을 금지하고, 특히 소나무의 재식(栽植)과 육성(育成)에 힘쓰는 것을 말함.

⁴⁷만년팽(萬年팽·憉)-팽은 팽목(憉木), (朴樹) 등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박수무당·朴樹巫堂)은 팽나무(朴樹)로 대표되는 마을 당산나무 아래에서 굿을 하는 남자 무당을 말한다.

⁴⁸작벌(斫伐)-함부로 마구 베어냄.

⁴⁹애자지원(睚眦之怨)-눈을 흘겨보는 정도의 怨望, 아주 작은 원망.

⁵⁰각일각(刻一刻)-시간이 지남에 따라

⁵¹용대(容貸)-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줌. (=용서)

⁵²차제(次第)-순서, 차례

⁵³쥬육(誅戮)-죄를 물어 죽임.

⁵⁴수쳔명(數千名)-최근 실제 교도의 희생자는 삼백여 명으로 확인됨 *1901년 7월 발행한 <삼군평민교민물고성책>에는 신축제주항쟁 과정에서 사망한 31명의 명단과 천주교인 309명, 일반인 8명 등 사망자 숫자가 적혀 있다.

⁵⁵아오시증(亞奧斯證)-라크루(구마실) 신부의 복사 신재순(申才淳 아우구스티노)

⁵⁶군아랑하(郡衙廊下)-목관아 마루 밑

⁵⁷최아가백(崔雅歌伯)-최형순(崔亨淳)을 말함 *유배인 교도로 강봉헌과 구마실 신부 밑에서 실무를 맡아보며, 창의군과 협상 거부를 주장한 강경론자였음.

⁵⁸날입(拿立)-데려와 세움.

⁵⁹수죄(數罪)-지은 죄를 일일이 들어 책망함.

⁶⁰외국사람-당시 선교사를 포함하여 살해당한 외국인은 없는 것으로 보아 잘못된 기록으로 보임.

⁶¹탐시(探視)-관찰하다. 살펴보다.

⁶²사촉(使嗾)-사주

⁶³오호애제(嗚呼哀哉)-오, 슬프도다.

⁶⁴조복(朝服)-아침에 왕에게 문안 인사를 드릴 때 입었던 관복으로, 1416년(태종 16)에 제정되었다.

⁶⁵객사(客舍)-객관(客館)이라고도 한다.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걸어놓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렸으며, 외국 사신이나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의 숙소로도 사용되었다. 관찰사가 일을 보는 동헌보다 격이 높았으며, 관리는 이곳에 머물면서 교지(敎旨)를 전하기도 하였다.

⁶⁶공구(恐懼)-몹시 두려움

⁶⁷위해(慰解)-말로 달래다. 위안하고 마음을 풀어주다.

⁶⁸셩산(城山)-성산 일출봉, 성산일출(城山日出)은 영주십경 중 하나.

⁶⁹사봉락죠(沙峰落照)-영주십경 중 하나로 사라봉(沙羅峰)에서 바라보는 해.

⁷⁰군경(軍警)-군의 경보(警報)

⁷¹초경(初更)-하룻밤을 오경(五更)으로 나눈 첫째 부분(部分)으로 저녁 7시에서 9시 사이

⁷²이경(二更)-하룻밤을 오경(五更)으로 둘째 부분(部分)으로 밤 9시부터 11시 사이

⁷³삼경(三更)-하룻밤을 오경(五更)으로 셋째 부분(部分)으로 밤 11시부터 새벽 1시 사이

⁷⁴안석(案席)-앉을 때에 벽에 세우고 몸을 뒤쪽으로 기대는 방석.

⁷⁵일위로인(一位老人)-한 사람의 노인

⁷⁶홍안벡발(紅顔白髮)-나이가 들어 머리는 세었으나 얼굴은 붉고 윤기(潤氣)가 돈다는 말.

⁷⁷쳥려장(靑黎杖)-한해살이 풀인 명아주로 만든 장수 지팡이. 본초강목에는 청려장을 짚고 다니면 눈이 밝아지고 중풍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노인들의 지팡이로 신라시대 사용기록이 나올 정도로 오래전부터 쓰였다. 짚는 사람의 나이대에 따라 이름을 붙여 구분하기도 했는데, 50세에 자식이 주면 가장(家杖), 60세에 마을에서 주면 향장(鄕杖), 70세에 나라에서 주면 국장(國杖), 80세에 임금이 주면 조장(朝杖)이라 했다.

⁷⁸즉금(卽今)-지금 당장

⁷⁹불칙(不測)-마음이 음흉함

⁸⁰남가일몽(南柯一夢)-남쪽 나뭇가지의 꿈이란 뜻, 인생이나 부귀영화가 덧없음을 의미한다. 당나라 덕종 때 광릉 사람인 순우분(淳于棼)의 느티나무 아래서 꾸었던 꿈 이야기다.

⁸¹한츌쳠배(汗出沾背)-겁을 크게 먹어 땀이 등을 적신다는 뜻. 한나라 문제가 재상 주발(周勃)에게 일 년간의 수입과 지출액을 묻자 이를 모르는 주발이 등에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을 못 했다는 고사에서 비롯됐다. 주발은 자진해서 진평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물러났음. <史記>

⁸²쳠하(檐下=簷下)-처마. 簾·렴은 誤字임.

⁸³황쳔검(荒天劒-이재수가 비양도 근처에 살던 일본인 아라가와(あらがわ.荒川)로부터 물려받은 일본도

⁸⁴비수낫(匕首낫)-날이 날카로운 낫

⁸⁵회시(回示)-죄인을 끌고 다니며 여러 사람에게 보임.

⁸⁶산망(散亡)-흩어져 없어짐.

⁸⁷파로곡(破爐曲)-수호지 호걸 무하자가 지은 곡.

⁸⁸긋고-굳고

⁸⁹호리(狐狸)-여우와 이리, 간사한 사람에 비유.

⁹⁰선우(單于)-흉노(匈奴)가 군주나 추장을 높이어 부르던 칭호, 여기서는 불란서 세력을 뜻함.

⁹¹방백리(方百里)-제후(諸侯)가 다스리던 땅을 방백리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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