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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 Oct 11. 2023

밤산책

사랑밖에 모르는 달수씨 

저와 남편 그리고 달수씨는 밤산책을 좋아합니다. 시시한 얘기들을 하면서 깔깔거리기도 하고, 말라비틀어진 개구리 사체 냄새가 좋아서 그 위에 몸을 비비고 또 데굴데굴 구르는 달수씨를 구경하는 것도 너무 즐겁습니다.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 발걸음을 재촉하는 달수씨


남편은 얼마 전부터 차를 바꾸고 싶어 했습니다. 남편이 원하는 그 차는 너무 비싸서 안 된다고 하니까 경매에 나온 것을 알아봤다고 했습니다.     


얼만데?     


3천5백만 원     


너무 싸네. 혹시 침수차 아닐까?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반파차! 그래서 도깨비 드라마에 나온 것처럼 도로를 달리다가 반으로 쫙 갈라지는 거 아냐?     


아니라고! 사고 경력 같은 건 다 알 수 있다니까.     


그럼 너무 싼 걸로 봐서는 귀신이 나오는 차가 아닐까? 뒷좌석에서 차가운 손이 나와서 빨간 핸들 줄까? 파란 핸들 줄까? 이러는 거지. 귀신은 기록에 없겠지.     


저는 치명적인 처녀 귀신처럼 손가락을 관능적으로 움직여서 남편의 뒷목을 간지럽혔어요.     


알았다고. 안 산다고.     


남편은 낄낄거리면서 도망갔어요.          


우리 남편은 대장 노릇을 하는 걸 좋아해서 달수씨 리드줄을 꼭 본인이 잡아야 해요. 개똥도 본인이 치운 다음 묵직한 개똥 봉지는 꼭 나에게 건네주고 다시 개끈을 받아서 앞장서서 걸어갑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던 남편이 갑자기 저에게 당신은 너무 잔소리가 심해서 같이 산책하기가 싫을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산책을 할 수가 없다고 불평을 했어요.     


잔소리라고 해봐야 개가 길에서 냄새 맡을 때는 빨리 오라고 잡아당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강아지를 만나면 인사를 할 수 있게 기다려줘라 정도였어요. 남편은 ‘강아지를 산책시킨다’에 목적을 두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거든요.


저는 우리 셋이 함께 하는 산책을 정말로 좋아했기 때문에 남편의 말을 듣고 몹시 상처를 받았습니다.     


잔소리가 심해서 미안해. 그럼 앞으로는 나 없이 당신만의 산책을 하면 되겠네.     


저는 달수씨 리드줄을 빼앗아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너무 분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옛날부터 항상 제가 우리 남편을 더 좋아했습니다. 나쁜 놈인 걸 잊고 좋다고 헤헤거리다가 또 이런 꼴을 당하다니...     


저는 달수씨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여섯 번이나 똥을 싸도 군말 없이 치우고 또 똥을 다 누고 난 후에도 떨어지지 않고 엉덩이에 매달린 시금치 같은 것도 잘 뽑아주고 하니까 같이 데리고 다녀준 거지, 자기가 엄청 좋아서 같이 다닌 줄 아는가 봐. 어처구니가 없다. 그치? 달수씨.     


한참 걷다가 개끈이 당겨지지가 않아 뒤를 돌아보니 달수씨가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먼 곳을 응시하면서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보이면 조금 앞으로 걸어왔다가 또 돌아보고 가만히 서서 그가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이것아, 너는 그 꼴을 당하고도 아직도 그 남자가 좋으냐?     


저는 달수씨 등짝을 철썩철썩 치면서 빨리 오라고 끈을 당겼습니다. 동물학대로 잡혀가지 않은 것이 다행입니다.     


역시 진정한 사랑을 하는 건 강아지뿐이라니까. 저는 억지로 리드줄을 당기면서 혼잣말을 했습니다.     


남편과 냉랭한 며칠 동안 좀 힘들었습니다. 남편에게 거절당했던 과거의 기억이 파리떼처럼 달려들어 왱왱거렸기 때문입니다.     


맞아, 그런 일이 있었지.

그래, 원래 그런 사람이었잖아.

참 무심하기도 하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지?     


남편은 제가 사람 취급을 안 해줘서 너무 괴롭고, 저는 남편이 미워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화해를 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마지못해 못마땅한 얼굴로 악수를 하고 다시 밤산책을 나왔습니다.      


달수씨는 기분이 좋아서 귀를 펄럭거리며 강중강중 뛰어다녔습니다. 앞장서서 나가면서 우리를 돌아보더니 입을 벌리고 활짝 웃었습니다.     


하여간에 진정한 사랑을 하는 건 달수씨밖에 없다니까.     


저는 사랑밖에 모르는 달수씨가 부러워서 입을 삐쭉거리면서 혼잣말을 했습니다.


바쁜 일과를 마치고 단잠을 자는 달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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