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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 Oct 07. 2023

다이어트편

개나 사람이나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요즘 저의 최대 근심거리는 달수씨가 너무 뚱뚱해졌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산책만 나가도 관절에도 안 좋고 심혈관 질환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살을 빼야한다는 충고를 몇 번이나 들었습니다. 물론 이건 달수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아니라요. 사람들은 대체로 예의 바르게 행동하기 때문에 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의사선생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달수씨는 맛있는 음식 먹는 걸 참 좋아합니다. 원래 달수씨는 날씬했었는데 언제부터 살이 찌기 시작했냐면 예전에 제가 계란을 삶아서 흰자만 먹는 다이어트를 할 때 노른자를 어쩔까 고민하다가 달수씨에게 준 적이 있었는데 이게 달수씨가 비만으로 가게 된 첫걸음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처음에 우리는 흰자, 노른자를 공평하게 잘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흰자만 먹고는 허기가 가시지가 않아서 달수씨에게 줘야 할 노른자까지 먹어버렸던 날이 있었습니다. 이미 그맘때 달수씨는 삶은 계란 깨뜨리는 소리만 들어도 귀가 번쩍해서 빠른 템포로 엉덩이춤을 추면서 부엌으로 다가오던 시점이었는데, 제가 규칙을 어기고 달수씨 몫까지 먹어버렸던 것이지요.     


달걀을 향한 집념


달수씨는 경악한 얼굴로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배신감과 원망으로 얼룩진 달수씨의 얼굴에 심한 압박감을 느낀 저는 어쩔 수 없이 사과의 의미로 계란을 까서 달수씨에게 통째로 주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의미에서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저를 잠깐 응시하던 달수씨는 삶은 계란을 물고 빠르게 자기 넬로 숨어버렸습니다. 그 뒤로 이상하게도 달수씨는 당연하다는 듯이 삶은 계란을 통째로 가져가서 먹게 된 것입니다.     


달수씨는 옥수수를 참 좋아하는데요, 가끔 그걸 받으면 옥수수에 닿은 코가 하늘을 향해 구겨지도록 얼굴을 옥수수에 밀착시키고 앞니로 야무지게 옥수수알을 뜯어 먹습니다. 뜯어 먹는 사이사이에 주변을 둘러보고 바닥에 떨어진 것까지 알뜰하게 다 주워먹습니다.    


 

옥수수를 먹고 있는 달수씨  

오늘 아침에 오징어 튀김의 튀김옷을 약간 떼어줬을 때는 어땠습니까? 달수씨는 위턱은 안 움직이고 돌고래처럼 아래턱만 움직여서 음식을 씹는데, 빠른 속도로 아래턱만 움직이면서 바삭바삭 요란하게 튀김옷을 씹는 소리가 얼마나 웃기고 듣기 좋던지 이런 음식은 주면 안 된다는 죄책감까지 날려버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이어트를 할 것입니다. 맥두걸 박사님의 책에 나온 대로 자연식물식으로 살을 빼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네, 물론 여기에서 우리는 달수씨와 나를 말합니다. 제가 남편한테 이렇게 말하니까 남편은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남편이 잠깐 친구를 만나러 간 틈을 타서 저는 마지막으로 돼지갈비를 재빠르게 구워먹고, 달수씨한테는 무인애견상점에 가서 말린 닭가슴살을 사다가 하나 먹였습니다. 개나 사람이나 다이어트는 원래 내일부터 시작하는 거니까요.


달수씨, 내일부터는 자연식물식으로 살을 뺄 거야. 자신 있지?


말린 닭가슴살을 정신없이 씹으며 달수씨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주접은 그만 떨고 이제 생기부를 쓰러 가야 합니다. 네네, 맞습니다. 맞아요. 생기부 쓰기가 싫어서 달수씨랑 자꾸만 산책을 나가고 하루 종일 이런 흰소리를 늘어놓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먼 과거에 어느 고등학교 총각 선생님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던 학급 급훈을 오마주하여 이러한 폭주를 마무리하기로 합니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 나의 생기부, 너의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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