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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 Oct 07. 2023

쇼핑 중독자 달수씨

머나먼 무인애견용품점

집 앞에 있던 무인애견용품가게가 문을 닫았습니다. 우리는 늘 인터넷으로 달수씨 물건을 샀기 때문에 사실 이 가게는 잘 이용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폐점 예고와 함께 ‘재고 정리 세일’이라는 종이가 유리문 앞에 붙어있는 걸 보고 그야말로 참새가 방앗간에 드나들 듯이 그곳에 들락거렸습니다.


혼자서 길을 지나갈 때는 그곳에서 물건을 살 생각이 안 들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달수씨랑 산책을 하다가 함께 쇼핑을 하러 갔는데요,


맞다! 세일한다고 했지. 빨리 가보자.

어머, 시저(강아지용 으깬 고기 간식)가 천 원이야. 이건 두 개 사자.


무인가게니까 부담 없이 가게도 천천히 둘러보고 이상하게 생긴 신기한 간식이랑 삑삑 소리 나는 장난감들을 산다고 희희낙락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때는 이후에 닥칠 재앙 같은 건 짐작도 못했습니다.


이거 어때? 저거 맛있겠다.


심사숙고 끝에 고른 간식을 달수씨 코앞에 대고 보여주기도 하고 계산이 끝난 물건은 뜯어서 맛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돈 쓰는 게 제일 재미있었습니다.


몇 주간에 걸친 재고 정리 끝에 가게는 문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어요. 달수씨가 이 가게를 기억하고 산책을 마칠 무렵 저를 질질 끌고 이곳을 찾아가 이제는 업종 변경으로 강아지 출입을 거부하며 굳게 닫힌 유리문을 앞발로 두드린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좋은 물건이 빠지기 전에 얼른 사야 하는데 달수씨가 횡단보도를 무서워하며 안 건너려고 해서 강아지 발톱이 닳도록 억지로 끌고 다녔고, 동물병원을 연상시키는지 유리문을 밀고 들어갈 때도 기겁을 해서 8킬로에 육박하는 그 녀석을 으랏차차 들어 올려서 가게에 밀어 넣었던 것을 생각하면 참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잘 생각해 보면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에요. 지난 여름에 진짜 더웠잖아요. 달수씨 입장에서는 산책을 마칠 무렵 사람들 사이에 섞여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험을 하고, 언제든 열고 들어가면 갑자기 마법처럼 쨍하고 시원해지는 장소에서 맛있는 냄새가 폴폴 풍기는 간식을 고르고 먹어보는 일이 얼마나 즐거웠을까요?


밖에만 나오면 달수씨는 이 가게에 가기 위해 건넜던 큰 횡단보도 앞에 주저앉아 꼼짝도 안 하고 저를 쳐다봤습니다.


이거 안 되겠는데...


가까운 곳에 있는 다른 애견용품가게를 찾아서 몇 번 가보았는데 이게 무인이 아니다보니 매번 천 원짜리 강아지용 치즈를 하나 사서 나오는 게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그러거나 말거나 달수씨는 자신의 치즈를 입에 물고 경쾌하게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를 경계하는 달수씨의 무서운 얼굴


그러다가 얼마 전 놀러 간 친구네 집 근처 상가에서 무인애견용품상점을 발견했습니다. 그곳은 꽤 먼 거리에 있기 때문에 퇴근 후에 달수씨 데리고 강아지놀이터에 갔다가 출발하면 킁킁 냄새 맡고 어쩌고 저녁 산책 하는데 두 시간 반이 훌쩍 넘게 걸릴 것 같았습니다.


여기는 너무 먼데... 십 리가 몇 키로더라?


그래도 달수씨 떼가 너무 심하고 항상 집에만 갇혀있는 녀석이 좀 딱하기도 해서 한 번 큰맘 먹고 그곳에 가보았어요. 가서 오리고기도 먹고 모처럼 힘들게 왔으니 강아지용 우유도 하나 사서 먹여보았습니다.


이렇게 여기저기 애견용품가게를 전전한 저의 노력 덕분인지 달수씨는 이제 예전 가게로 놀러 가자고 저를 이끌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달수씨의 주의를 분산시켜 문제행동을 고치는 데 성공한 겁니다.


그 대신 이제는 친구네 동네 무인애견용품 가게에 매일 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 정착하게 된 겁니다. 처음으로 강아지용 우유를 마셨던 기억이 아주 좋았던 모양이에요. 저는 이런 결말은 원한 게 아니었는데...

쇼핑을 마치고 만족스러워하는 달수씨


강아지 놀이터가 파하면 한 시간 가량 걸어서 가게에 가서 구경을 하다가 오리고기 간식을 사고, 그 앞에 벤치에서 조금 맛을 본 다음 신나게 우리 집까지 걸어옵니다. 네, 달수씨만 즐거운 마음으로 날듯이 걷고 그 옆에서 개끈을 잡고 있는 사람은 피곤에 절어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걷습니다.


집에 가서 남은 오리고기를 먹을 생각에 들뜬 달수씨가 앞장서서 의기양양하게 걷다가 저를 돌아보고 활짝 웃었습니다. (정작 집에 가면 오리고기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저는 입술만 움직여서 억지웃음을 지어주며... 자식을 둘이나 낳은 것도 모자라 어쩌자고 저런 걸 키우게 되었을까 제 운명을 탓하며 터덜터덜 걸어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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