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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 Oct 12. 2023

산책하면서 만난 친구들

우리 동네 인기 스타 토끼와 너구리

달수씨랑 산책을 하다가 공원에 사는 토끼를 만났어요. 예전에 만났을 때는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가더니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오더군요. 달수씨도 토끼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리드줄이 팽팽하게 당겨졌어요. 저는 줄을 꼭 잡고 있었지만 사실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어요. 토끼는 절대 잡을 수가 없으니까요.     


어떤 분이 지나가다가 토끼에게 오랜만이라고 잘 지냈냐고 안부 인사를 건넸어요.

    

토끼는 그 인사는 들은 척도 안 하고 달수씨를 똑바로 보면서 한 걸음 또 한 걸음 이렇게 천천히 다가왔어요. 달수씨도 짖지 않고 한참을 그 상태로 서 있었어요.      


달수씨, 저 토끼 웃긴다, 쟤는 토사구팽이라는 말도 모르나 봐. 그치?     


제가 이렇게 말하자 달수씨는 그걸 농담이라고 하냐는 듯이 인상을 쓰고 저를 째려봤어요. 저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달수씨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요. 다행히 토끼는 풀숲으로 돌아가느라고 그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아요.   

  



예전에 풀밭에서 달수씨가 땅에 가까이 붙어서 뭘 한참 들여다보고 있었을 때 저도 옆에 가서 유심히 본 적이 있어요. 거기에는 달수씨가 호기심을 느끼고 냄새를 맡으려고 코를 너무 가까이 대는 바람에 콧물에 젖어 약간 비틀대는 귀뚜라미가 있었어요.     


아파트 놀이터에서 고라니를 만난 적도 있었어요. 저는 웬 거대한 누렁이가 목줄도 없이 다니나 깜짝 놀랐는데 이미 몇 번 행차를 하셨던 건지 태연하게 나뭇잎을 뜯어먹더니 다시 산으로 돌아가 버리더군요. 달수씨는 그때 바닥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느라고 고라니가 온 줄도 몰랐어요. 무슨 개가 이렇게 둔할까 저는 어처구니가 없었죠.     


참, 너구리를 만난 적도 있었는데요, 풀밭에서 짐승 두 마리가 앙칼진 비명 소리를 내며 엉켜 싸우면서 우리 근처로 데굴데굴 굴러 왔어요. 고양이 두 마리가 싸우나 싶어서 쳐다봤는데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던 고양이 한 마리가 먼저 도망가고 그 자리에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남아있던 건 너구리였어요. 눈 주위가 새카맣고 꼬리가 통통해서 너구리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가 있었어요. 너구리는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우리를 빤히 쳐다봤는데 고양이가 어떻게 혼쭐이 나는지 똑똑히 본 우리는 슬며시 눈을 내리깔았어요. 달수씨도 짖지 않았어요.      


너구리 따위는 전혀 무섭지 않다고 허세를 부리는 달수씨


너구리는 성큼성큼 걸어서 원래 숲으로 돌아갔어요. 너구리의 인상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마치 멋진 연예인이라도 본 것처럼 저는 기분이 정말 좋아졌어요. 달수씨와 집으로 돌아오면서 너구리는 진짜 근사하다고 연신 칭찬을 했어요.     




달수씨랑 숲이 우거진 동산에 올라갔던 날 있었던 일이에요. 저는 안경을 안 쓰면 사물을 잘 식별하지 못 하거든요.  오솔길은 나무 그늘 때문에 길이 컴컴해서 사방에 뭐가 있는지 더 안 보이는데다 축축하기까지 해서 그곳를 지날 때는 어쩐지 늘 무서웠어요. 나무들이 모여서 내뿜는 특유의 향기를 깊이 들이마시면 가슴 속까지 시원하다가도 괜히 오싹한 기분이 들었어요.     


달수씨가 먼저 올라간 저를 따라오지 않고 아래쪽에서 납작한 돌에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아보더니, 뒤로 뛰었다 앞으로 뛰었다 하고 앞발로 살살 만져보기도 하면서 관심을 보였어요. 달수씨가 저런 행동을 할 때에는 반드시 살아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에요. 심지어 그것은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았어요.    

 

그건 신기한 마법의 돌.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이 깃들어 사는 돌.     


저는 깊은 숲을 배경으로 하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동화가 떠올라 그 돌에 가까이 다가갔어요.      


이게 뭔데 그래?      


흙이랑 구분이 잘 안 돼서 저는 어쩔 수 없이 그 돌에 얼굴을 바짝 대고 살펴봤어요. 그러자 제 입김을 느낀 두꺼비가 아까부터 귀찮게 왜 이러냐는 듯이 어기적어기적 기어서 나무 뒤로 숨어버렸어요. 이미 두꺼비한테 흥미를 잃고 나무 뿌리를 파고 있던 달수씨가 제 비명소리를 듣고 펄쩍 뛰어올라 달리기 시작했어요. 뒤에 따라오는 아줌마는 두꺼비한테 잡아먹히든 말든 달수씨는 혼자만 잘도 도망갔어요.      


사랑밖에 모르는 달수씨라는 말은 취소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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