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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 Oct 07. 2023

비 오는 출근길

거미야, 내 우산에서 떨어져.

출근길에 비가 억수로 많이 와서 옷이 다 젖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거의 다 도착했는데 눈앞에서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바람이 불어서 춥고 이젠 가방 속까지 젖어 들어가는 상황이 좀 힘들더군요.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더니 비가 사선으로 와서 안쪽으로 심하게 들이쳤습니다. 특히 가운데 유리벽이 뚫린 곳 근처는 처마에서 떨어지는 비 때문에 바닥에 고여 있던 물이 계속 튀어 올라 차가웠습니다. 거기를 피해서 서려고 하니 사방이 온통 물웅덩이라 그냥 그 자리에 서서 종아리로 물이 튀는 것을 참기로 했습니다.     


우산을 접으려고 하는데 검은 천 바깥으로 거미의 형체가 비쳤습니다.     


안녕! 잘 가렴.     


우산 안쪽에서 손가락을 튕겨 거미를 멀리 날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우산을 접으려고 하는데 손잡이 쪽으로 거미가 올라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게 왜 아직도 붙어있지? 원래 두 마리였나?               


우산을 거꾸로 잡고 털어서 거미를 떨어뜨리려고 하니까 요요처럼 잠깐 멀어졌다가 다시 우산에 달라붙었습니다.               


거미줄을 걸어놓았구나. 그래서 아까 튕겼을 때도 날아갔다가 돌아왔던 거야.               


공주의 공을 주워 준 개구리 왕자처럼 능청맞게도 거미는 우산 안쪽으로 살살 기어들어왔습니다.               

이제 좀 제발 가라고 기도를 하면서... 구박을 하면 속상해서 사라지지 않을까 싶어 우산을 뒤집어서 거미가 비를 맞도록 했습니다. 몸을 웅크리고 버팁니다.               


관성의 법칙이 있으니까 우산을 ‘탕’ 하고 접으면 튕겨나갈 수도 있겠지. (비싼 우산이라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접힙니다. 제가 가진 것 중에 거의 유일하게 비싼 물건입니다.) 그렇게 우산을 접었더니 이 녀석이 가지는 않고 이제는 접힌 우산의 주름진 틈으로 들어가서 쉬려고 합니다.               


그래, 우리 평화적으로 해결하자.               


저는 우산을 도로 펴고 거미의 위치를 확인한 다음 버스 정류장 기둥에 살짝 우산살을 붙여 놓았습니다. 거미가 기둥으로 옮겨갔습니다.               


됐다!               


저는 신나서 얼른 우산을 떼어냈습니다. 거미가 다시 요요처럼 날아와 우산에 붙었습니다. 내 우산에 거미줄을 붙여놓았기 때문입니다. 빗소리 때문에 들리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거미도 괴로워서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습니다.               


이러는 동안 저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습니다. 거미랑 씨름을 하는 동안 엉덩이가 지붕 바깥으로 나가서 속옷까지 젖고 침몰한 보트처럼 변해버린 신발에는 물이 가득했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안 되겠다.               


저는 마음을 굳게 먹고 지갑에서 딱딱한 신용카드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우산을 기울여 우산살을 벤치 위에 붙였습니다. 거미가 다리로 바닥을 몇 번 더듬어보더니 조심스럽게 나무 의자로 옮겨갔습니다. 저는 딱딱한 카드로 거미와 내 우산 사이를 칼질하듯이 여러 번 문질렀습니다. 거미가 천천히 멀어져 갔습니다.               


저는 물에 쫄딱 젖은 채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습니다.     


학교에 도착해서 새 양말로 갈아 신었습니다.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퇴근 준비를 하면서 젖은 양말을 챙기는데 혹시 하루 종일 여기에서 끔찍한 냄새가 났던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더군요. 살짝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고 있는데 옆자리 선생님이 갑자기 말을 시켰습니다. 저는 반사적으로 재빠르게 축축한 양말을 책상 밑으로 내던졌지만 그 선생님은 무슨 말을 꺼내려고 했던 것도 잊고 얼른 고개를 돌렸습니다.     


힘든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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