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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안 자는 환자님 vs 졸린 간호사, 승자는?"

짠내나는 호스피스 간호사의 울고 웃는 고군분투 병원 이야기

by 별빛간호사

한 환자분이 입원하셨다. 출근 후 이 환자분에 대한 인수인계를 듣는 순간, 직감이 왔다. '오늘 밤은 긴~ 긴 밤이 되겠구나.'

아니나 다를까.

근무 시작과 동시에 병실에서 콜벨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전쟁이 시작됐구나 싶어 급히 병실로 뛰어갔는데...

어라?

침대가 비어 있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환자가 사라졌다!?

당황해서 두리번거리던 순간, 시선이 닿은 곳에 환자분이 계셨다. 새 침상에 몸을 반쯤 걸친 채, 다리는 밖으로 축 늘어뜨리고, 나를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잠 좀 팍팍 오게 하는 주사 좀 줘!"

"잠이 안 오세요?"

"주사든 약이든, 먹고 한 방에 푹~ 잘 수 있는 걸로!"

순간 소름이 돋았다. 혹시... '영원한 잠'을 말씀하시는 건가 싶어 걱정이 밀려왔다.

"설마... 하늘나라 가는 주사를 달라는 건 아니죠?!"

내 표정이 너무 심각했는지, 환자분이 나를 빤히 쳐다보셨다. 나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

"진짜 하늘나라 보내달라는 거면, 못 드려요!"

나름 진지하게 말했는데...

환자분이 인상을 팍! 쓰더니 대뜸 한마디 하셨다.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안 들린다~!"

...

나도 모르게 빵 터졌다. 이 상황이 너무 웃겼다. 환자분도 내 웃음에 따라 웃으셨다.

"아니 근데, 왜 거기 누워 계세요? 환자분 자리 저쪽이잖아요!"

손짓 발짓까지 총동원하며 대화했지만, 환자분은 그저 조용히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여긴 다른 환자가 입원하면 써야 하는 자리예요. 얼른 옆자리로 가세요!"

그러자 환자분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투덜거리셨다.

"거 참, 야박하게 구네~"

본인 침대로 돌아가긴 하셨는데... 뭔가 이상하다.

(다 들리는 거 아냐...? 혹시 불리할 때만 안 들리는 척하는 건가...)

그렇게 사건이 마무리되는가 싶었지만...

몇 시간 후, 다시 콜벨이 울렸다.

급히 병실로 달려가니, 환자분이 침대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고 계셨다.

"무슨 일이세요?"

"왜 깨는겨?"

"네?"

"계속 잠 오게 해달랬잖아!"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그냥 계속 푹! 자게 해주소!"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

"환자분, 이제 일어날 시간이세요. 충분히 주무셨어요."

그러자 환자분이 한숨을 쉬며 말씀하셨다.

"돌겠네. 왜 자꾸 깨는 것이여~"

그렇게 진한 아쉬움을 남기고, 나는 다른 환자분을 보러 나왔다.

그런데...

정신없이 위중한 환자분을 돌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 환자분이 복도에 나와 서 계셨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환자분이 느닷없이 큰소리로 외쳤다.

"사람 죽어가네~~~!!!"

...?!?!?!?!?!?

(그때 시간, 새벽 5시. 모두가 깊이 잠든 시간.)

나는 기겁하며 환자분을 말렸다.

"제발, 제발 방으로 들어가세요!!"

하지만 환자분은 내 간절한 요청 따위 신경도 안 쓰고, 오히려 태연하게 한마디 하셨다.

"잠도 안 오는데, 구경이나 해야지. 의자 하나 가져다 줘!"

...?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렇게 화려한 나이트 근무를 마치고, 퀭한 눈과 다크서클을 달고 퇴근을 하려는데...

그 환자분이 환한 얼굴로 나를 배웅하셨다.

"오늘 또 보세~!"

나는 도망치듯 엘리베이터를 탔다.

제발... 오늘은 조용한 밤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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