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그 자체로 충분히 용기 있는 삶.
한 환자분이 계셨다.
내가 일하는 곳은 호스피스 병동. 대부분이 말기암 환자분들이며,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분들이 오신다.
그분도 말기암 환자셨다. 비교적 젊은 나이였고, 병은 이미 피부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고름이 흐르고, 상처 사이로 스며 나오는 냄새가 그분의 건강 상태를 웅변처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였다. 그리고 엄마는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다.
“기력이 회복되면 퇴원해서 항암치료 더 받고 싶어요.”
“더 좋아질 수는 없을까요?”
“자연치료는… 효과가 있을까요?”
낮 동안 그녀는 맑은 눈으로 질문을 이어갔다.
저녁이면 창가에 비치는 별과 달을 바라보며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선생님, 저는 남는 게 시간이잖아요. 이 시간이… 참 아까워요.”
그 말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었다.
혼자 병실에 누워 보내는 긴 시간이 아깝다는 말, 그리고 아직 살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나는 조심스러웠다.
섣부른 말이 혹시나 희망이 되거나, 반대로 실망이 되진 않을까…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분의 상처를 소독하는 시간은 길었다. 우리는 그 긴 시간 동안 종종 대화를 나눴다.
“어제 아이들 면회 왔죠?”
“네, 애들이 대학생이에요.”
“주말이라 엄마 보러 왔나 봐요.”
“네… 애들이 참 잘해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도 다 충당하고… 착하고…”
말끝을 흐리던 그분의 눈에 굵은 물방울이 맺혔다.
나는 소독을 멈추고, 조용히 휴지를 건넸다.
“어제… 둘째가 그러더라고요. 형, 나 엄마랑 찍은 사진이 없어. 잠깐 나가 있어줘.”
그렇게 둘째와 사진을 찍었다며, 웃듯 말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엄마 몰골이 이런데도, 둘째가 그러는 거예요.
‘엄마 잘못이 아니야. 그런 생각 하지 마. 엄마,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녀는 끝내 참아왔던 말들을 꺼냈다.
“선생님, 제가… 짐만 되고 있는 것 같아요. 남편도, 아이들도 저를 필요로 할 텐데…
그게 너무 힘들어요.”
나는 말없이 손을 잡아드렸다.
그 손은 아주 작고 말라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은 너무도 컸다.
한참을 울고 난 후, 그녀가 나지막이 말했다.
“선생님… 손이 참 따뜻하네요.”
나는 그녀가 웃을 때처럼 따뜻하고 밝은 미소를 지은 걸 보았다.
햇살이 병실 창으로 들어와 그녀의 얼굴을 비출 때, 나는 소독을 마치고 조용히 병실을 나왔다.
삶의 끝에서도 희망을 말하는 이가 있다.
사랑 앞에서 작아지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을 남기고 가는 존재.
그날 그녀의 따뜻한 손을 잡고 있던 나는, 살아 있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귀한지,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지, 조용히 배웠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되뇌었다.
“엄마, 잘못이 아니에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삶의 끝자락에서도 그녀는 두려움 대신 사랑을 이야기했고, 절망 대신 희망을 물었다.
나는 그녀의 따뜻한 손을 잡고 깨달았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
그 자체로 충분히 용기 있는 삶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