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ne S17 PRO EVO
* 셰에라자드로부터 콘텐츠 제작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거치형, 그리고 단독 헤드폰 앰프
헤드폰 앰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동력입니다. 구동력을 출력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는 분들도 있고, 출력이 높으면 당연히 구동력이 높다 여기시는 분도 계실테지만 저는 조금 달리 생각합니다. 소리를 크게 내는 것이 출력, 소리의 크기를 자유자재로 컨트롤 하는 것이 구동력입니다. '음역대가 넓은 것과 소리의 높낮이를 갖고 노는 것'이 다른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앰프의 출력 수치라든지 얼마만큼 넓은 음역대를 낼 수 있는지를 나타낸 재생주파수 대역 같은 스펙들을 그다지 눈여겨 보지 않는 편입니다. 구동력과 음역대의 변화 표현 능력은 어떤 스펙으로 표기되지 않고 청감상의 차이로만 느껴지기 때문에 객관적인 기준은 되기 어렵지만, 제품의 등급이 올라갈수록 극명하게 차이를 보이며 급을 나누는 실질적인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앰프의 확실한 성능 향상 체감을 위해서는 포터블이 아닌 거치형이, DAC/AMP 통합 제품이 아닌 단독 헤드폰 앰프가 필요합니다. 요즘 음향기기 브랜드의 기술력이 워낙 발전해서 포터블이라 할지라도 DAC/AMP 통합 제품일지라도 앰프의 출력이 부족함이 없다고 설명하지만, 플래그십 / 실내용 / 대구경 / 평판-자력형 헤드폰의 성능을 100% 모두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거치형 단독 헤드폰 앰프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 aune의 S와 X
aune는 중국의 DAC/AMP 전문 브랜드입니다. 현재 취급하는 카테고리별 품목 수를 파악해보면 데스크톱용 10종, 포터블 7종, 헤드폰(이어폰) 3종, 액세서리 12종입니다. 가짓수야 액세서리가 가장 많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 브랜드가 주력하고 있는 카테고리는 데스크톱용입니다. 진입장벽이 낮은 만큼 편의성 위주의, 최대 성능에 한계가 분명한 포터블이 아니라 진짜로 음악을 제대로 듣고 싶은 헤드파이 유저분들을 가장 많이 고려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데스크톱용 제품은 다시 둘로 구분됩니다. 저가/소형 제품군인 X시리즈, 고가/대형 제품군인 S시리즈입니다. X시리즈 앰프 X7과 S시리즈 앰프 S17을 예로 들어 사운드는 어떻게 다른가 간략하게 설명해보자면 S17이 훨씬 넓게, 멀리, 끝까지 힘을 실어 보낼 수 있습니다. 소리의 공간감, 개방감을 주관하는 것은 DAC의 역할인데, 좋은 DAC에서 발현된 넓고 개방감 있는 공간을 힘으로, 분위기로, 에너지로 채우는 일이 앰프가 하는 일입니다. 다루고 있는 공간 규모의 차이와 밀도가 X와 S를 구분하는 기준입니다.
또한 S17의 힘과 감성이 훨씬 강하지만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절제되어 있다가 음악의 최고조에 도달할 때 폭발시키는 완급조절에 능합니다. 제가 아주 오랫동안 애정하는 남성보컬 박효신과 김진호(SG워너비)는 신인시절 '소몰이'라는 별명처럼 힘과 감성이 넘치는 창법을 구사했지만 베테랑이 된 뒤에는 나이를 먹은 만큼 여러 감정이 더해져 매끄럽게, 차분하게, 덤덤하게 느껴질 정도로 음을 조심조심 내보내다가 서서히 단계를 끌어올리는 식으로 바뀌었습니다. X7의 사운드를 신인시절로, S17의 사운드를 지금 시기로 각각 비유할 수 있겠지요. 물론 신인시절의 그 목소리를 더 좋아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훨씬 더 편안하고 깊이있게 듣기 좋은 소리는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 S17 PRO EVO
S17 PRO EVO는 DAC를 포함하지 않은 aune의 플래그십 단독 헤드폰 앰프이며 금액은 127만원입니다. 전작인 S17 PRO와 비교했을 때 네가지 바뀐 점이 있어 하나씩 짚어보면
1) 총 부품 수 635 -> 657
부품의 개수는 언뜻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오디오의 진리 중 하나 '분리되어 있을수록 성능이 좋다' 에 따라 더 높은 성능을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헤드폰 출력 - 프리앰프 출력 전환 가능
3) 헤드폰 / 프리앰프 별개 볼륨 설정
액티브 스피커를 연결하여 사용하실 분들을 위해 프리앰프 기능이 보강되었다는 것이 이번 EVO의 가장 큰 변화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이엔드 헤드파이 유저라면 스피커와 함께 음감하시는 확률이 높다고 봐야겠지요.
4) 자동 화면 꺼짐
브랜드의 디자인 감각을 엿볼 수 있기에 공을 들이는 부분이지만, 음감에 집중하고 싶은 청자들은 뭔가 화면이 떠있으면 거기에 신경을 빼앗길 수 있기에 이걸 끄는 옵션이 필요합니다.
- 곡선으로 품는다
이 브랜드는 직선과 함께 낮은 곡률의 곡선을 적극적으로 섞어 씁니다. 일단 브랜드 로고부터 그렇지요. 각지는 부분을 최대한 꺾어 부드러움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로고를 시계방향으로 180도 돌리면 처음과 똑같아지는 것에도 담긴 의미가 있습니다. 제조사의 입장을 180도 뒤집으면 사용자가 되며, 본인들 또한 한명의 유저이기 때문에 잘 이해한다는 것을 부드럽게 함축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곡선 사랑은 제품 디자인에도 투영됩니다. 보통 DAC/AMP를 주력으로 생산하는 브랜드들은 정확도 / 전문성 컨셉을 지니기 때문에 직선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래서 칼같다는 느낌을 전달하지요. 이 브랜드의 거치형 제품들은 상/하판에 곡선이 맞보고 있는 아치형 디자인을 채택하고 있고, 옆면의 직선도 사선이라 좀 더 유한 느낌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 곡선의 부드러움은 사운드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aune의 어떤 제품도 소리에서 날카로움이 배제된 채 튜닝되었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 음악성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다
aune라는 브랜드를 처음 알게 된 지 벌써 9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음악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편으로, 중국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음악성이 굉장히 진하다는 사실에 적잖게 놀랐습니다. 당시보다 차이파이의 영향력이 비교도 안되게 커진 지금도 음질을 앞세우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더 높거든요.
이 브랜드는 언제나 음악성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웁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음질 점수가 경쟁 브랜드 대비 약간 떨어지는 편이었어요. 허나 최근 몇 년간 클럭 제너레이터들을 선보이면서 음질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음질 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없지만 여전히 고유의 음악성에 마음이 더 가는 브랜드입니다. 이 제품 역시 '음악은 이렇게나 아름답고, 그걸 느낄 수 있어 행복하지 않니?' 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 앗, 뜨거
패키지를 열게 되면 위험해보이는 노란색 경고장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거기에 써있는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 제품은 많이 뜨겁습니다' 입니다. 이 헤드폰 앰프는 Class A 증폭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만큼 언제든지 최대한으로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 항상 100% 가동중입니다. 그만큼 타 증폭 방식을 사용한 앰프보다 훨씬 뜨겁고, 사용시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소한의 정보만 노출하고 있는 LCD 화면에 한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것이 온도계입니다. 전원을 켜놓으면 내부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는데, 50도가 넘어가야 이 제품의 최대 성능이 발휘되는 것 같습니다. 온도마다 미세하게 바뀌는 차이를 느끼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습니다.
- 태극권을 깨우친 헤드폰 앰프
솔직히 말해 태극권이라는 무술에 대해 깊이 알진 못합니다만 무협물에서 곧잘 등장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기에 이거야말로 이 제품의 사운드를 표현하기에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번째, 태극이라는 문양이 가지는 곡선의 느낌입니다. 음선이 직선보다 곡선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그만큼 부드럽고 온화한 뉘앙스를 풍깁니다. 우아하다는 느낌도 받으실 수 있을 것 같고요.
두번째, 느리고 여유롭습니다. 태극권을 연마하는 무술인의 동작을 보면 너무 느려서 상대가 다 피할 것 같고, 위력도 낮아 보이지요. 이 제품의 사운드는 태극권처럼 느릿느릿합니다. 진짜로 음악이 느리게 재생될 리는 없을텐데 충분히 그렇게 느껴져요. 속도가 느려진 만큼 놓치고 지나칠 수 있던 디테일과 뉘앙스를 더 살필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한국인을 대표하는 숫자가 82라고 하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매 순간순간 8282를 되뇌이며 삽니다. 이게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는데, 국제전화를 위한 국가코드도 82입니다. 이 제품으로 음악을 들을 때는 잠시 82라는 숫자를 내려놓을 수 있을 겁니다.
세번째가 가장 특이합니다. 내 힘보다는 상대방의, 내 주변의 힘을 이용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 헤드폰 앰프가 가진 힘은 강력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와닿지는 않습니다. 헤드폰 앰프 자체의 존재감을 거의 지웠다는 느낌이 들고, 그래서 단독 헤드폰 앰프인데도 소리가 투명하게 느껴지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듭니다. 보통 DAC/AMP 통합 제품과 다르게 단독 헤드폰 앰프는 출력 부분을 강조하기 때문에 두툼하고 힘찬 색채를 보이는 반면 이 제품은 오히려 입자가 가늘고 섬세한 쪽이라고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세가지 사운드 특징을 요약하면 ‘인자강’이 됩니다. 인간 자체가 강하다는 뜻이 아니라 인자하면서도 강한 사운드라는 뜻입니다.
- Gain L /H, Ampere L/H
이 제품은 증폭 수준과 전류 수준을 각각 로우/하이로 변경할 수 있습니다. 전자야 뭐 익숙하실테니 별다른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고, 후자는 어떤식으로 사운드가 변화할까요.
A-L 상태에서는 소리가 더 완만하게 표현됩니다. 음이 펼쳐지는 공간을 수평으로 확장시키고 음의 유기적인 연결을 중시하며 부드러움을 강조시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배경처럼 음악을 들을 때 유효합니다.
A-H 상태일 때는 소리와 배경이 모두 긴장하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전해줍니다. 군기가 바짝 들었다고 할까요. 음이 펼쳐지는 공간을 전후로 확장시키고 음이 앞으로 다가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움직임을 포착하여 뚜렷하게 표현합니다. 그렇게 개별 음이 가진 에너지와 색깔을 더욱 강조하는 거죠. 이 모드는 집중력있게 음악을 파고들어 감상할 때 유효합니다.
이 차이가 굉장히 섬세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오디오 옵션보다 차이가 적게 느껴질 겁니다. 과거에 테스트해 본 이 브랜드의 하위 모델에서도 이 옵션이 있었는데 그 차이가 정말 미미했거든요. 그런데 이정도급이 되니까 확연하게 차이가 나네요. 당연히 등급이 높은 헤드폰을 사용한다면 그 차이가 더 벌어질 겁니다.
- 가성비는 플래그십에서도
aune는 DAC/AMP 전문 브랜드로서 각 부품이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 그 부품을 업그레이드 했을 때에 어떤 변화를 느낄 수 있는지 아주 친절하고 단계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플래그십 단독 헤드폰 앰프 S17 PRO EVO 역시 어째서 높은 등급의 단독 헤드폰앰프를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는 제품이라 생각합니다. 플래그십 / 실내용 / 대구경 / 평판-자력형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신다면, 꼭 한번 들어보시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그 효능에 비해 굉장히 저렴하게 느껴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