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5. 일기장
사실 푸파파의 돈사고 역사는 유구하다.
2018년
* 지키지 않을 시 쭈마마 해외로 가출하겠음.
특약을 지켜 정말로 첫째 아이를 데리고
단 둘이 해외로 떴고
2023년
* 지키지 않을 시 친정엄마와 크루즈여행 가겠음.
특약을 지켜 난
해외 크루즈는 여건상 무리고
친정엄마를 모시고
자매 셋 태국 보름 살기를 하고 왔다.
참으로 줄기차게 사고 치고 각서 쓰고
이번 해외여행은
계획적인 보복은 아니고
엄마 칠순생일기념으로 푸파파 실직 전에 짰던 여행이다.
의도치 않게 푸파파가 컴백홈 한지
얼마 안돼서
태국 치앙마이로 세 자매와 친정엄마
그리고 손녀들까지
공식적인 여자들의 가출이 되어버렸네!!

출국 일주일 전
3대가 떠나는 대가족 첫 해외여행인데
뭔 자신감인지 사전모임도 안 갖은
파워 P 세 자매!
이것도 맏딸 큰언니가 해외서 보름 살기인데
떠나기 전에
한번 모여서 여행계획을 짜야하지 않겠어 하여
급조한 모임!
첫째 형부가 그날 열 시간 가까이
셋이 모여 여행일정을 짰는데 결과는
노트북에 끄적거린 준비물/주의사항/각자 가보고 싶은 곳
타자글씨를 보더니
이게 다야?라고 했단다.

그저 아이들을 다 신랑에게 맡겨두고
자매 셋만 모인 모임에 신나서
웃고 떠들고 마시고 먹느라
계획 따윈 안드로메다!!
다들 서로 어떻게든 되겠지~
누군가 이끌겠지~
어디든 가겠지~
대체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10년 전
세 자매가 떠난 첫 베트남 해외여행이 생각났다.
그때도 에어텔만 예약해 놓고
아무 생각 없이 온 언니 둘!
뭘 믿고 자유여행 선택한 거야?
모르면 패키지 가자 하지 했더니
"너 믿고" 란다..
젊은 네가 다 알아서 하라고 하는 대책 없는 아줌마 둘.

결국 3박 5일 동안 막내로 태어난 죄로
밤마다 머리 굴려 루트 짜고
앱 깔아서 택시 부르고
아주 돌아버리는 줄
A형에 브레인들이라 계획이 있을 줄 알았는데
막내 네가 여행 가장 많이 다녀봤잖아.
어떻게 가야 돼?
오늘은 어디가?
어떻게 해야 돼?
질문봇때문에 힘들었지만
내가 짜증 한번 확 내면
둘은 내 반응에 까르르 웃고

그래도 웃긴 게 피 나눈 자매라고
한 번을 안 싸우고
무사히 여행을 마쳤다.
그 이후로 세 자매는
육아에 교육에 사업에 각자 바빴고
10년 만에 딸 셋만 밖에서 모이게 된 거다.
여전히 질문봇들은
막내 네가 제일 젊으니깐
맛집, 인간 내비게이션 다 하란다.
(나도 이제 40대 중반이야 ㅠㅠ)

둘은 휴대폰 한번 꺼내지 않고
얼마나 멀어?
어디로 가야 돼?
(나도 몰라!! 이 동네 처음이야 ㅠㅠ)
우여곡절 끝에 부천 도착
실내 디스코팡팡을 모르는
두 노친네를 친히 모시고 갔더니
진짜 신기하다!!
그러면서 나보고 사진 찍으라는 할매 둘!
그 와중에 난 맛집 검색하느라 바빠서
핸드폰에서 눈을 못 떼고 있는데
찍사까지 하라니
아 짜증 나!!
언니가 찍어.
나 지금 계속 검색하는 거 안 보여?
어떻게 한 번도 핸드폰을 안 꺼내!
아~ 핸드폰 꺼내기도 귀찮아
막내 네가 해봐
까르르 웃는 언니들
아오!! 진짜 나이만 먹었지 하는 짓은
우리 두 딸과 진배 다를 바 없는 두 빌런들

시간체크부터 맛집검색 동선까지
막내야! 막내야!
하도 불러대서 환청이 들릴 정도인데
엄마 언제 오냐고 계속 전화 오는 첫째까지
내 휴대폰은 제발 살려줘~~~ 하며
오늘 혼신을 다했는지 뜨끈할 정도!!
그때
푸파파에게 온 전화
시간이 늦었는데 언제 와?(첫마디)
그만 좀 전화해!!(버럭)

나 지금 첨 전화한 건데~~(당황)
스피커폰으로 다 듣고
배꼽 잡고 웃는 언니 둘
혼이 나갔던 나에게 된통 욕받이가 된 푸.
넓은 아량으로 그래 두 노인네들
효도관광 왔다 생각하잔 마음으로
집에 가는 길까지
잘 모셔드리자 했는데
따라오기만 하면 되는 걸
걸음은 어찌나 느리던지
그 와중에 화장실 갔다 온다 하고
아주 속 터져 죽는 줄
겨우 막차를 잡아타고
자리에 앉아 한숨을 돌리고
귀가시간 예상을 위해 폰을 꺼내 들었는데
오늘 열일한 내 폰은 간당간당한 배터리에
깜깜한 화면으로 마지막 절규를 하는데
화면 위 배터리 잔량이 보이지 않아
1% 인지 7% 인지 모르겠는 상황

언니들에게 물어보니
"7"같다 아냐 "1"같다
"아니야 7이야"
확신하는 큰언니
세 자매 눈살 찌푸리며 내 핸드폰을 노려보는데
그 순간 또로로 꺼지는 핸드폰
하하하!!! 1프로였네!!!
무슨 바람에 낙엽구는 것만 봐도 웃는 고등학생들처럼
눈물 짜내며 미친 듯이 웃는 우리 세 자매

"나 노안 왔잖아"
"언니도? 나도!
"언니는 언제부터?"
"난 3년 전부터! 너는? "
이건 무슨 노안대회도 아니고
10년 만에 모인 세 자매 정모는
누가 더 늙었나 대화로 끝났다.
이 노인들을 모시고 보름을
해외로 여행 가야 한다니 벌써부터 두렵지만
신기하게 걱정은 안 된다.

해외에서 막히면 프리토킹에는 큰할매 소환
타지에서 무슨 일 생기면 뭐든지 해결해 줄 것 같은
웬만한 남자보다 든든한 여장군 작은할매
2018년 푸파파 돈사고 때도
두 팔 걷어붙이고 물심양면 해결해 준 큰언니
밤늦은 시간 전화에도 무슨 일이야? 하며
다 들어주고 해결방안을 제시해 주는 작은언니
친정엄마에게도 말 못 할 사연을
언니 둘과 의논하며 참으로 많은 고비를 넘겼다.

비록 남편복은 없지만
친정엄마가 셋이나 있는
나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