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은 하루가 멀다 하고 연락 오고
푸파파는 언제까지 시댁서 유배생활을 해야 하냐고
불안해하는데
오히려 내 일상은 평온했다.
평일에는 눈뜨고 잘 때까지 아이 둘과 나만 있었던 독박 일상
그리고
주말에는 잠만 자던 푸파파 꼬라지를 안 보니 마음의 안정이 왔다.
내가 지금 200만 원을 갖고 이혼하자는 건 아니다.
(얼굴이 박보검이었으면 채무가 2억이라도 이혼 안 했겠지.)
이건 신뢰의 문제이고 회사에 잘렸을 때도
"우리 엄마 말처럼 우리 아이들 건강하고 자기가 거짓 없이 나를 속이지 않으면 우리 가정 괜찮아"
말해줬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이야
앞으로 믿을 수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에 선뜻 받아주질 못하겠다.
그리고 내쫓은 지 2주 만에 꼬랑지 내리고
잘못했다고 연락 오는 푸파파에게
내가 15년 동안 살면서 돈사고를 친척 있어?
없어
난 15년 동안 내가 하고 싶은 거 참고 살았는데
지금 쫓겨난 지 14일 됐는데 벌써 용서하라고?
왜 자꾸 날 힘들게 해
난 애들하고 잘 살고 싶은데
우리 애들 경제적으로 좀 부족할지언정
정서적으로는 풍족하게 하고 싶은데
왜 자꾸 네가 그걸 못하게 해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마!!
가만 좀 내버려 둬
휴대폰에 대고 소리치고 일방적으로 끊어버린 그날 저녁
아이들 다 재우고 나 혼자 술을 마시며
어쩌다 우리 가정 이렇게 됐는지
눈물 한잔, 한숨 한잔, 원망 한잔 그렇게 들이키다
'폭삭 속았수다' 를 보게 되었다.
살민 살아져
살면 살아져
살다 보면 더 독한 날도 와
애순아, 살다가 똑 죽겠는 날이 오거든
잠녀 엄마 물질하던 생각혀
흙 밟고 사는 것들이야
끄떡하면 죽는단 생각하는데
암만 죽겠고 서러워도
잠녀 입에서는 그 소리 절대 안 나와
그 드신 물속에서
죽을 고비 골백번마다 살고 싶은 이유가 골백 개더라
몸 괴되면 마음이 엄살 못해
살다가 살다가
똑 죽겠는 날 오거든
가만 누워있지 말고
죽어라 발버둥쳐
이불이라도 끄나다 밟고
밭 갈아엎고 품이라도 팔러 나가
나는 안 죽어
죽어도 살고야 만다
죽어라 팔다리를 흔들면 꺼먼 바다 다 지나고
반드시 하늘 보여 반드시 숨통 트여
저 '엄혜란' 배우는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지
사실 몇 년 전 신랑이 돈사고를 칠 때도
이번 일도 친정엄마에게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자나 깨나 자식걱정하는 엄마 마음을 알기에
그 마음을 내가 엄마가 되어서 더 뼈저리게 알기에
신랑을 내쫓고 시댁을 발칵 뒤집어 놨지만
세상 제일 마음 아파할 친정엄마는
지키고 싶었던 내 마음에
차마 엄마에게 전화조차 하지 못해
내 마음이 벙어리냉가슴처럼
사무치게 쌓였었는데
전광례 분이
내 친정엄마가 되어 내게 말해주는 것 같아
'엄마 나 잘 살아보고 싶은데 실은 너무 힘들어'
아이들 깰까 이불을 끌어모아
입에 대고 엉엉 소리 내 울었다.
그렇게
엄마 품에 안겨 펑펑 울고 싶었나 보다.
앞으로 우리 생때같은 아이들
어떻게 키워야 할지 구만리 같고
엄마라는 위치가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고
이제 어떻게 해야 돼 물어보고 싶었는데
애순이 엄마가 대답해 주는 것 같았다.
'살민 살아져'
그렇게 별거는 보름 만에 끝났다.
하지만 내 계획엔 반전이 있었으니
이번엔 내가 보름동안 집을 나갔다.
- 다음 편은 '금요일'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