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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크하드 Jun 06. 2024

'파묘(破墓)'가 아닌 '파수(破水)'

각자육아로 각자도생

2023. 10. 15. 일기장


우리 강아지 둘째 네 돌 생일날

여태껏 생일이 뭔지도 모르고

이제껏 생일선물 제대로 받아본 적 없는

무수저 안쓰러운 둘째를 위해

올해만은 잘 챙겨주리가 마음먹고

둘째 최애 만화 고고다이노 키즈카페를 물색했다.


생일 전주 주말 거사를 위해

엄빠 모두 컨디션 조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복병이 생겼으니 그것은 첫째의 지적능력.


이제는 고고다이노 따윈 개 싱거운

 열 살짜리는 나가기 싫다고 생지롤지롤을 떠는데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사실 끝까지 갔으면 데리고 갈 수 있었으나

첫째의 최근에 한 무료심리검사가 마음에 걸렸다.

가족을 빗대어 동물 피규어를 고르는 심리검사였는데

아빠는 곰(휴일에 맨날 잠 ㅠㅠ)

엄마는 캥거루를 고른 첫째.


'금쪽같은 내 새끼' 주력 팬인 나도 이 정도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눈치가 오더라.

내가 너무 둘째 동생만 끼고 살았구나.

열 살도 어찌 보면 어린 나이인데 너를 너무 등한시했구나.

요즘 부쩍 둘째에 대한 질투가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첫째의 엄마에 대한 독점욕을 맘껏 소진시켜 주기로 결정했다.

결국 그날의 타협점은 각자 좋아하는 걸 하기

푸파파는 강아지 둘째랑 키즈까페.

쭈마마는 망아지 첫째랑 워터파크.


비록 대중교통에 수영복 한 짐 때문에 산악 가방을 메었지만

탈의실에서 수영복을 갈아입으면서도 순간

따로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내미 두 명이라 우리 네 식구 수영장에 왔으면

두 딸은 모두 다 내 소관이니 도망가는 둘째 챙기랴

나는 왜 안 챙겨주냐 입 대빨 나온 첫째 챙기랴

내 정신은 안드로메다행이 불 보듯 뻔하다.


가볍게 첫째 수영복만 꺼내

갈아입어라 입만 나불대면 되니

이 얼마나 우아한 말투와 몸짓인가~~

내 수영복만 갈아입어도 된다는 게 

이리도 감사할 일이었던가


십 분 만에 수영복 환복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수영장 입수.

그때부터 세 시간 내내 물놀이 지옥행이 시작되었으니

열 살 망아지 딸내미의 체력이

이 정도였던가 탐복한 날이었다.

나는 50분 정도 물놀이하고

10분 정도 밖에서 멍 때리고

세 번의 텀을 반복하는 동안

아직 수영을 못하는 땅꼬마 첫째는

풀수영장에 들어가면 정수리만 보이는데

쪼꼬만 게 살겠다고 튜브에 킥바에

그리고 내게 매달려

손가락발가락이 물에 팅팅 불어도 나오질 않으니

수영장 물을 짧디 짧은 다리와 팔로 연신 파대는

'파묘'가 아닌 '파수'영화를 보는 듯한 공포감.


11시에 입수해서 2시까지 물속에서 나오질 않는

첫째를 보며 저게 사람인가 수영 못하는 인어인가

정오가 지나 다들 배고프다고 자리를 뜨는

다른 일행들을 부러움으로 바라보며

오렌지 주스 몇 모금에 몬스터급 에너지 음료

먹은 후의 체력을 보여주고

연신 엄마를 불러 재끼는데

이대로 물속으로 잠수를 타고 싶단

생각이 간절했다.


세 시간 물놀이 후 질질 끌려 나온 첫째는

점심으로 에너지를 만빵 채우고

또다시 2차 물놀이가 시작되었으니

워터파크 내에 있는 목욕탕.

10시에 집을 나가서 영혼을 겨우 붙들고

7시에 귀가완료.

< 물 만난 광신도들 - 둘째에게 '외모 몰아주기' >


신랑에게 오늘 있었던 독박육아를

랩처럼 쏟아내려고 현관문을 제쳤는데

둘째 강아지팀의 부재중.

바로 전화를 하니 친정부모님과 같이

친정집에서 저녁식사 중이란다.


오잉? 강아지랑 단 둘이 간 게 아니라

친정부모님께 급 전화를 걸어

같이 키카에 갔다는 것.

(이 날 친정아빠는 생애 첫 키즈카페 경험)

아니 이건 계획에 없던 건데.

9시에 귀가한 둘째 강아지팀에 패배한 날이었다.


문초를 시작하자 가관이었다.

키카갔다가 둘째 옷이 젖어서

쇼핑하러 파주 아웃렛에 갔다가

파주에 간 김에 말똥 도넛 갔다가

배가 고파 심학산 근처 두부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심학산 근처 영천사까지 갔다가 왔단다.

(친정부모님 귀가시켜드리니 저녁때가 다 돼서

친정에서 저녁까지 먹고 온 강아지팀)


두 분 취향을 다 만족시킨

미친 하루 스케줄을 들으며 혀를 내둘렀다.

아빠는 영천사에 탐복하시고

엄마는 MZ감성 말똥도넛을 맘에 들어하시고

둘째는 키카댄스타임에 방방이를 뛰는 데

흡사 고고다이노 종교집단 같았다며

입에 침을 마르도록 썰을 푸는데

제각각에 무계획 즉흥여행에

대단한 3세대 집안혈통역마살을

뼈저리게 엿볼 수 있었던 하루 일과.


그리고 이 일과는 전날 우리 네 식구 모두

독감예방접종을 맞은 다음 날이라는 건 안 비밀.

월요일 아침 네 식구 아무도 안 아프고

출근, 등교, 등원한 것에 감사하며

내 두 어깨는 지금 파스로 도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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