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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바라보며

by 소금별


봄이 오는 소리에 콧바람을 쐬고 싶어서인지 바람이 나고 싶은 날이다. 옆지기와 굴찜을 먹으러 가자고 도원결의를 하듯 결심을 굳히고 애들에게 물어본다.


”우리 바람도 쐬고 밥 먹으러 갈까?” 아이들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우리를 바라본다 오늘도 나가고 싶지 않은가보다.


소라처럼 자신 안에 갇힌 아이들을 두고 둘이서만 집을 나선다. 국도를 따라 달리니 차가 조금씩 막히기 시작한다. 연휴 시작이라 차들이 거북이처럼 느리다.


창문으로 ‘타다닥’ 빗방울이 부딪힌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창밖의 풍경이 흐릿해진다. 라디오에서 흐르는 음악이 봄을 닮아간다.


우리는 굴찜을 먹으려고 빗속을 뚫고 두 시간을 달린다. 넷이던 우리가 둘로 갈라져 이산가족이 된 것 같아 괜스레 울적해진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말없이 창밖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굴찜을 먹고 어리굴젓을 싸게 산 옆지기는 오늘 신이 났다. 집에 가기 전 잠시의 여유를 위해 카페에 들르기로 한다. 마침 차를 세운 곳 옆에 마음에 드는 카페가 있었다.


카페 통창으로 서해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우리는 아메리카노와 고구마라떼를 시키고 창밖을 응시한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눈으로, 마음으로 들어와 앉는다. 흐릿한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어렴풋해서 하늘마저 바다를 닮아버렸다. 그 바다를 통통배가 질주하며 길고 흰 선을 그리고 있었다.


“나중에 이런 카페할 수 있어?” 정적을 깨고 옆지기가 말을 건네자 나는 고개를 흔든다. “여기 온 사람들은 좀 여유있어 보이지?” 남편의 말에 좌우를 둘러보니 어른들만 가득하다. “다들 자식들 다 키워놓고 이렇게 쉬는 걸까?” 남편이 중얼거리듯 말한다. 그때 뒤쪽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대화가 귀에 스친다. “이번에 아들 대학 갔지?” 나는 외면한 채 바다의 수평선을 찾아 멀리 멀리로 시선을 옮긴다.


우리는 차를 마시며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을 안타까워한다. “어릴 때는 잘 따라 다녔는데 왜 그러지?”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은 아직 어두운 터널에 있고 우리는 터널 밖에서 말없이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터널 안에도 햇빛이 들겠지? 우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애들 크면 우리도 저렇게 놀러 다닐까?”하는 남편의 말에 순간 슬퍼진다. 오래된 연인을 두고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 슬픔이 꽃처럼 피어난다. 아이들은 점점 자라고 우리는 서서히 늙어간다.


날개짓을 스스로 하게 되면 둥지를 떠나는 새들처럼 아이들도 언젠가 우리 둥지를 떠나 가겠지. 이제는 기다림에 익숙해질 나이가 되었다. 봄이 오는 길목,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상념에 젖어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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