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죄라면, 나는 이미 유죄다. 새벽, 여전히 아들의 부재에 익숙해지지 못한 나는 창밖을 바라본다. 새까맣게 칠한 캔버스에 노란색, 흰색 물감을 콕콕 찍은듯 빛나는 점들이 보인다. ‘이 시간이면 일어났을까?’ 며칠 전, 고등학교 기숙사로 들어간 아들을 떠올리자 눈시울이 뜨거워져온다.
구피 먹이를 주고, 식물들에 분무기로 물을 뿌리는 일상 루틴을 시작한다. 매일 이렇게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인데 이 헛헛함은 무엇일까? 아침 7시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카톡을 열어본다. 숫자 1만 보일 뿐 카톡 세상은 너무나 고요하다.
‘카톡’ 소리에 얼른 휴대폰을 들고 카톡을 들여다본다. 그때 보이는 ‘어’라는 글씨! 오늘 하루 어땠어?, 밥은 먹었어? 내가 쓴 안부가 폭포가 쏟아지듯 주르륵 내려오는데 달랑 한 글자만이 보인다. 아들 기분을 읽을수가 없다. 무뚝뚝한 아들 얼굴이 스친다. 카톡을 나오니 휴대폰 바탕화면에 늠름하게 서있는 아들 얼굴이 보인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고 했던가! 아들과 나의 사랑을 저울질 할 수 있다면 내 쪽이 묵직하게 내려갈 것이다. 윗사랑은 없고 내리사랑만 있다는데 내 사랑도 자꾸만 아래쪽으로 흐른다.
아들을 기숙사에 데려다놓고 오는 그날, 옆지기도 나도 밤새 잠을 설쳤다. 이제부터 3년, 아들은 대입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가족과 함께 하는 삶 대신 옆 친구의 고요에 긴장하는 3년을 보내야 한다.
아들은 고등학교 입학 하루 전 기숙사에 입사했다. 며칠동안 꾸려놓은 짐들이 피난을 가듯 꾸러미로 쌓여갔다.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은 그날, 우리는 챙겨놓은 짐을 하나씩 들고 가숙사로 향했다.
기숙사에 도착하니 운동장은 차들로 가득했고, 부모들은 마치 피난을 가듯 짐을 옮기고 있었다. 우리 모습도 저럴까 싶어서 순간 픽하고 웃음이 났다. 기숙사 안은 이미 도착한 사람들로 붐볐다. 입구에서 아이가 지낼 방을 확인하고 서명을 한 후 휴대폰을 꽂아두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올라간다.
방에 도착하니 먼저 온 사람들이 정리한 흔적들이 보였다. 옆지기가 나서서 매트 커버를 씌우고 이불 정리를 한다. 옷장에 교복을 걸고 이것저것 가지고 온 물품들을 정리하니 눈이 시큰해졌다. 학습실로 가서 자리를 확인하고 아이 주변을 기웃거리며 도와줄 거리를 찾는 옆지기가 애처로워보인다.
그렇게 아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리 곁을 떠났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다. 첫날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던 옆지기도 이제 쿨쿨거리며 잠을 자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마음이 불안하던 나도 이제 안정을 찾아간다. 뾰족하게 마음을 찌르던 날카로운 날도 이제 부드러워졌다.
사랑하면 유죄라고 했던가! 아들을 더 사랑한 나는 유죄가 되었다. 오늘도 나는 돌아오지 않을 메아리를 기다리며 아들 생각을 한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듯, 새끼는 때가 되면 둥지를 떠난다. 사랑하는 만큼 기꺼이 보내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어미가 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