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고등학교 입학 하루 전날, 기숙사에 들어갔다. 토요일 오후에 나와서 일요일 저녁에 기숙사로 입사하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학원을 다니라고 했더니 손사래를 치던 아들이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했다.
공부를 하고 싶다면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인지상정! 나는 인터넷을 검색해서 학원을 알아보고, 하이애나처럼 학원가를 헤맸다. 평상시엔 보이지도 않던 학원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길을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보니 ‘학원'이라고 쓰여진 간판들이 빼곡히 보였다. 전화로 상담도 해보고 방문해서 상담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사교육을 끊으셔야 합니다.” 그 내면의 목소리에 나는 움찔해졌다.
지금까지는 될 수 있으면 사교육은 지양하고 엄마표 학습을 했지만 고등학생은 어쩔 수 없었다. 사교육의 도움을 받으려고 한 발 내딛는 것이 씁쓸하지만 우리 부부는 허리를 졸라매고 아이를 도와주기로 했다.
주말 오후, 아이를 데리러 가기 전에 다시 학원에 들러 상담을 받았다. 상담을 하다가 아이가 마칠 시간이 되자 부리나케 차를 몰아 학교에 갔다. 학교 주차장에는 아이를 데리러 온 차들이 가득했다. 우리도 그 속에 섞여 아이를 태우고 학원으로 향했다.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집에 갈까 하다가 무인카페가 눈에 띄어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기로 한다. “앞으로 여기 있으면 되겠네!” 옆지기가 좋은 곳을 발견했다며 호들갑을 떤다. 옆지기는 집에 갔다 오면 기름값이 아깝다며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학원에 보내려면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카페에 앉아 창밖을 보니 빼곡하게 서 있는 건물 속, 학원 간판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어, 여기가 학원가였네!” 아이 동선을 고려해서 우리는 이쪽으로 학원을 알아보기로 하고 전화를 몇 군데 돌린다. 커피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우리는 밖에 나가서 좀 걸어보기로 했다. 다시 겨울이 찾아온 듯 찬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우리는 옷깃을 한껏 여미고 바람 속을 걷는다. 그제야 조금씩 피기 시작한 벚꽃이 보이고, 활짝 핀 산수유가 눈에 들어온다. “벌써 봄이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봄을 외쳤다.
쌀쌀한 봄바람을 맞으며 아이 학교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되돌아온다. 아들을 기다리며 우리 주말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기다린다는 것은 부모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세찬 바람이 불었지만, 따스한 햇살이 우리를 위로하듯 머리 위를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