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 」을 보고

by 소금별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수업이 없는 어느 날, 은행에 가야지 일정을 잡아놓고도 발길을 떼지 못했다. 우연히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등교시켜놓고 OTT를 틀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한 편만 봐야지 하는 것이 두 편, 세 편으로 이어졌다. 2019년 드라마라고 하는데 처음 보는 드라마였다. 2019년이라고 하면 아이들이 초등학교 3,4학년 때였으니 드라마 볼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그때도 나는 참 바빴다.


「아름다운 세상」은 2019년 JTBC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로 생사의 벼랑 끝에 선 아들과 그 가족들이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선호가 학교 옥상에서 떨어지는 순간부터 시작이 된다. 집에 와서 자기 방을 정리할테니 그대로 두라고 말하고 학교에 간 선호가 늦은 밤까지 연락이 되지 않는다. 가족들은 초조해하고 결국 선호는 의식불명인 채로 응급실에 실려 간다. 자살 시도라는 형사의 말을 엄마인 인하는 믿을 수 없다. 늘 웃어주고 상냥했던 아들이 자살을 시도했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학교 폭력을 이야기하지만 그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이야기의 배경은 강남이다. 친구가 생사를 오가고 있음에도 아이들은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투덜대고 학부모들은 학교에 민원을 제기한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의식불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남의 집 불구경하듯 냉담하다. 오히려 아이에게 불똥이 튈까 봐 걱정하고 없는 말까지 보태가며 자기 아이만 보호한다.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실소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내 아이가 그런 일을 당했다고 해도 저렇게 냉정할 수 있었을까?


학교 선생님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는 말도 있고, 학부모의 갑질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잘못을 해도 그게 잘못인 줄 모른다. 그게 잘못이라고 꼬집어주는 어른이 없기 때문이다. 한 아이만 있는 집이 많으니 그 아이가 얼마나 귀할 것인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자식, 그래서 그런 아이를 금쪽이라고 부른다. 부모들은 내 아이가 행여 피해를 입을까봐 방패가 되기에 여념이 없다. 물론 드라마에서의 부모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생각해보게 된다. 내 아이가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사과하는 부모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모두 자기가 잘났다고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그게 부끄러운 줄 모른다. 회차가 진행되면서 이야기는 서서히 진실에 다가선다. 친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선호의 동영상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진실을 회피하고 사건을 덮기에 급급한 학교와 자기 아이의 잘못이 없다며 오히려 협박하는 학부모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학폭 심의위원회에 변호사까지 대동하고 등장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실제로도 저럴까 나는 의아스러웠다. 그럼에도 그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괴로워하는 선생님이 있었고, 자기 아이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는 엄마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내 아이의 잘못은 외면하고 학폭에 얽혀 아이 인생이 꼬일까봐 걱정하는 것이 바른 일일까? 그런 아이는 어떤 어른으로 자랄 것인가? 드라마를 보면서 부모로서의 나를 돌아보았다. 적어도 진실을 외면하는 부모는 되지 말자, 아이가 잘못했다면 잘못했다고 따끔하게 짚어주는 부모가 되자고 생각해보았다,


뉴스에서 서희초 학부모에게 무혐의 판결이 내려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아이가 왕의 DNA를 가졌다며 특별한 대우를 부탁했다는 한 교육부 직원의 황당한 뉴스도 접했다. 학부모 교권 침해로 인해 괴로워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선생님의 소식도 들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무서워하지 않으며 학부모는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는다. 가진 것이 없던 시절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은 늘 선생님께 죄송하고 감사했다. 시골에서는 농사를 지어 삶은 옥수수를 보내기도 하고, 달걀을 보내기도 했다. 선생님이 가정방문이라도 오시는 날이면 없는 살림이지만 이것저것 차려서 정성을 표했다. 그 시절에는 선생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있었다. 아이들도 선생님을 존경하고 따랐다. 부모들은 아이의 학교 일에 간섭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무슨 일만 있으면 바로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하는 일 따위는 없던 시절이였다. 오히려 없던 시절이 정이 넘쳤다는 말이 그냥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 잡으려고 하는 우리 어른으로부터 출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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