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추워지면서 베란다에 있는 식물들을 거실로 들였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생기 넘치던 잎들이 자꾸 늘어지기 시작한다. 녹보수 잎을 들춰보니 개각충이 보이고 그 옆에 있는 커피나무까지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더는 안되겠다 싶어서 베란다로 몇 개의 식물을 옮겨다 두었다. 커피나무도 그 식물들 중 하나였다.
며칠 전, 아침에 분무기를 들고 베란다로 가봤더니 커피나무 잎들이 이상했다. 광택을 내던 잎들이 시꺼멓게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병해중인가 싶어서 잎을 들춰보고, 물을 너무 자주 주었나 하면서 물 주는 시기를 되돌아보기도 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냉해를 겪으면 커피나무 잎이 변색된다고 했다. ‘아, 이런 멍충이!” 식물에 대한 나의 무지를 탓하며 커피나무를 얼른 거실로 들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커피나무는 아프리카 등 열대지역에서 자라는 나무인데 냉해 생각은 못했던 것이다.
바삭바삭 타들어가는 커피나무 잎을 보고 있자니 지금의 내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근래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참이다. “엄마, 아빠는 네가 공부를 못해도 괜찮아. 그러니 네가 가고 싶은 학교를 소신있게 선택했으면 좋겠어.” 그 말에 아들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어느 고등학교를 선택하든지 성적이 상위권이 되려면 경쟁을 피할 수 없기에 고민이 많을 것이다. 성실하게 공부하는 게 중요하니 최선을 다해보고 안되면 다른 길도 있으니까 미리 걱정할 것 없다고도 이야기해주었다.
어제 아침에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원서접수를 하려고 하는데 아이가 ‘ㅍ’고등학교에 원서를 내겠다는 확인전화였다. “네, 선생님. 아이가 원하는 대로 원서를 써주세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원서접수는 일단락되었지만 아이가 가고자 하는 학교의 치열함을 알기에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런 나의 눈에 다시 커피나무 잎들이 들어왔다. 몇 달간 싱싱했던 잎들이 어느새 생기를 잃고 사그라들고 있었다. 마음이 무거운 돌을 얹은 것처럼 자꾸 가라앉았다.
원서접수가 그렇게 끝이 나는 줄 알았는데 오후에 아이 담임 선생님의 연락을 받았다. 아이가 원서접수를 망설이는 것 같아서 생각을 하라고 시간을 주었더니 학교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주변 친구들이 ‘ㅅ’고등학교에 가니 마음이 흔들렸는지 아이 결정이 번복되었다. “ ‘ㅅ’ 고등학교로 결정한거야? 네가 원하는 학교에 원서 써.” 했더니 아이가 머뭇거렸다. 아직 고민중인 것 같아서 원서는 다음 날 쓰는 걸로 했다.
간밤에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빠는 네가 학교를 소신있게 지원했으면 좋겠어. 그 학교에 가서 공부 못해도 괜찮아. 지방에 4년제 대학도 많고 전문대도 있으니까 꼭 수도권에 있는 대학 안가도 돼.” 남편은 아들과 같은 나이의 자신을 떠올리며 아이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앞으로 네 인생에 결정할 일이 많을거야. 그때마다 모두 옳은 결정을 할 순 없어. 결정이 후회될 때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결정이 후회되어도 최선을 다하는거야.” 오고가는 대화 속에서 아들 얼굴이 점차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결정을 하겠다고 했다. “모든 것을 붙잡고 갈 수는 없어. 선택하기가 힘들면 하나를 버리면 돼.” 나는 아들에게 그렇게 말해주었다.
아들이 학교에 간 지금, 그 버리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눈에 거슬렸던 커피나무 잎을 그 버림의 마음으로 바라보니 견딜만 했다. 지금보다 잎의 상태는 훨씬 나빠질 것이다. 하지만 따스한 봄을 기다리며 겨울을 잘 버틴다면 새 잎이 돋아날 것이다. 더 안좋은 상황이 될 수도 있겠지만 커피나무는 커피나무대로, 나는 나대로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으로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이는 고민하던 하나를 놓아버리고, 하나를 움켜잡았다.
라디오에서 DJ의 음성이 울려퍼진다. “인생에서 시행착오는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그 시행착오를 현명하게 넘기는 게 아닐까요?” 아이의 인생에도 시행착오가 많을 것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뿌리를 튼튼하게 내리듯이 그 시행착오가 아이 인생을 더 단단하게 받쳐주겠지 생각해보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