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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니 Dec 27. 2024

엄마는 강하다!

그녀에게 보내는 지지와 응원

몸이 나른하고 노곤한 것이 모닥불 앞에 진득하게 녹고 있는 마시멜로우 같다. 이는 오늘 수업을 마친 나의 진솔한 소감이다.


바렐에 다리를 올리는 동작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평소 자주 하던 동작인지라 오늘은 무난한 시퀀스로 구성되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매트에 누워 작은 필라테스 링을 양쪽 날개뼈 사이, 허리 밑, 목 뒤에 고정시킨 채 부드럽게 근육을 풀어나갔다. 무척 쉬운 동작이지만 효과는 으뜸인 것이 서서히 몸의 긴장이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나의 예감은 바로 다음 동작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리포머로 자리를 옮겨 누운 채 다리를 허공에 90도로 들어 올리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자세인) 테이블탑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양팔은 리포머에 딸린 스트랩을 쥐어잡았다. 필라테스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어떤 자세인지 연상이 어려울 텐데, OTL 자세를 누워서 한다고 생각하면 아주 정확하다. 슬슬 안쪽 허벅지와 복부에 미세한 경련이 오기 시작했다. 내 몸이 OTL인지, 내 상태가 OTL인지, 아님 둘 다인지 모르겠는 경지에 이르렀을 때 강사님은 '헌드레드'를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헌드레드는 등을 대고 누운 OTL 자세에서 몸을 더 굼벵이처럼 말아놓고 양팔을 살짝살짝 100번을 움직이는 것이다. 땀은 비 오듯이 나고 스타카토 호흡에 맞춰 더 쥐어짜는 복부 근육은 터질 것 같아서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다. 그런데 옆을 보니 엄마는 꾸역꾸역 잘 해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짧은 시간에 엄마에 대한 경이를 느꼈고 동시에 30대 젊은 청년의 오기가 불쑥 튀어나와 포기하지 않고 동작을 마칠 수 있었다.


오늘도 그랬지만 엄마는 참 잘한다. 힘든 동작이 있더라도, 동작이 어설프더라도 끝까지 해낸다. 횟수를 다 채우고 매트 위에 널브러져 거친 숨을 쉬더라도 도중에 그만둔 적이 없다. 과거에 수년간 필라테스를 한 경험과 젊음을 갖춘 나의 실력이 조금은 좋을지 모르더라도 모든 시퀀스를 온전하게 마무리 짓는 점에서 엄마는 한 치의 부족함도 없다. 이래서 엄마는 강하다고 하는 것일까?


내가 장성한 청년이 된 후 내게 엄마는 마치 물가에 내놓은 소녀 같아보였다. 엄마가 약속이 있어 혼자 서울을 간다고 하면 복잡한 광역 버스는 잘 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교통편을 알려주며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리고 버스를 탔다고 하면 별 일 없이 잘 오고 있는지 실시간 버스 운행 노선을 확인한다. 이런 행동의 근원을 찾기 위해 마음을 깊이 더듬어보니 엄마를 '연약한 존재'라고 여기는 것에서 비롯된 것 같다. 1화 프롤로그에서 '엄마는 조금씩 작아지고 연약해지는 것만 같다.'라고 언급한 것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과연 엄마는 연약한 존재일까? 엄마와 듀엣 필라테스를 하면서, 그리고 이 브런치 북의 마지막 연재글을 적고 있는 이 시점, 나의 답변을 정정하려 한다. 엄마는 전혀 연약하지 않으며 되려 강하다. 젊은이도 따라잡기 버거울 정도의 속도로 발전해 가는 현시대의 최신 지식을 모를 뿐,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쌓아온 지혜와 단련된 속근육은 그녀의 두 다리를 땅에 견고히 지탱하게 한다. 


이제 나도 엄마를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 엄마를 사랑하고 아끼는 그 마음은 변함이 없을 것이나 그녀의 강인함을 존중하며 그녀의 굳건한 삶이 지속되도록 응원하고 지지할 것이다. 듀엣 필라테스를 통해 엄마라는 존재와 그녀의 삶을 새로운 관점에서 사유할 수 있게 해 준 우리의 시간, 그리고 끝내 이 시간에 성실히 동참해 준 그녀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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