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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니 Dec 25. 2024

재등록을 위한 우쭈쭈 작전

발레리나가 된 나무늘보

어느덧 수업이 10회를 채워가면서 엄마가 필라테스를 계속할 것인지 그녀의 낌새(?)를 살피기 시작했다. 나도 회원인데 다른 회원의 재등록 유도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나에게 떨어지는 한 푼의 커미션도 없는데 말이다. 여하튼 순탄하게 재등록의 길로 이끌기 위해 우쭈쭈 작전에 들어갔다.


엄마가 어찌나 동작을 잘 따라 하는지... 같이 운동하는 시간이 얼마나 즐거운지... 우쭈쭈를 시작했더니 본인의 소감을 술술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표현법을 빌리자면, 항상 어깨에 우루사 곰 한 마리가 얹혀있는 것 같아 묵직한 통증이 있었는데 요즘은 몸이 너무 가볍다고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수업을 빠져서 운동을 쉬면 근육이 조금씩 결리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난 그때를 놓치지 않고 역시 필라테스의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우리 엄마도 여성이기에 물개박수와 함께 적극적인 공감을 내비치면 대화가 더욱 화기애애해지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쯤이면 재등록의 길로 한 발짝 들어간 셈이다. 


엄마의 다음 이야기가 인상 깊었는데 마치 발레리나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아무래도 내가 갖고 있던 선입견 같은데 그 말은 어린 소녀가 할 법한 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의 속마음을 깊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발레리나가 신는 토슈즈 같은 양말을 신어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아니면 몸에 딱 감기는 레깅스를 입고 팔다리를 움직이는 동작을 해서인지 되물었다. 나의 예상과 다르게 허리부터 정수리까지 꼿꼿이 핀 동작을 하면서 발레리나가 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이후로 거울에 비친 본인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자 수시로 자세를 고치게 되었다고 한다. 


발레리나의 아름다운 의상에서 비롯된 기분이었을 것이라 추측했는데 의외의 답변이었다. 하지만 평소 엄마가 넌지시 말하던 것들을 떠올리니 그녀가 이해되었다. 우리 엄마는 주관적으로도 그리고 객관적으로도 무척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다. 하지만 좋지 않은 자세로 생활하다 보니 그 습관이 몸에 티가 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타인은 이를 감지하지 못하지만 본인의 몸은 본인이 제일 잘 아는 법. 그리고 그것이 불편하게 인식되는 순간 문제가 되는 법이다. 그래서 엄마는 높이가 달라진 어깨, 당당해 보이지 않는 자세가 부끄러웠던 것 같다.


부끄러움을 극복해 가는 나무늘보. 그녀는 이제야 그 부끄러움을 대면하고 스스로 해결해 가는 과정을 지나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감을 얻고 있다.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발레리나는 아니지만 거울 앞 누구보다도 당당한 자세로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은 그 자체로 빛을 발하고 있다. 필라테스를 통해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건강해지는 우리 나무늘보가 자랑스럽다. 이로써 우리의 재등록은 무탈하게 성취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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