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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47평의 의미

아파트 평수는 무엇을 의미할까?

by 희서

경기도 남부, 서울에서 남쪽으로 약 35km 떨어진 곳에 자리한 도시, 오산. 본디 거북 '오(鰲)' 자를 써서 '거북 모양의 산'이라는 뜻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며 사람들이 발음하기 쉽고 쓰기 편한 한자 까마귀 '오(烏)' 자로 바꾸어 쓰면서 '까마귀 산'이라는 의미로 굳어진 곳. '거북산'이 주는 인상은 중하고 묵직했지만, '까마귀 산'은 왠지 소박하고 소담한 정취가 긴다. 우리의 두 번째 보금자리는 로 그 오산의 한 아파트다. 나는 이곳에 살면서 중학교 친구인 '지유', 아니 '지유 엄마' 종종 떠올렸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지유네 집에 놀러 간 떠올랐다.


희서야, 우리 집에 놀러 올래?

지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건 그 집에 다녀온 후였다. 지유는 중학교 3학년 시절, 내 짝꿍으로 사실 짝이 되기 전에는 그리 친하지 않았다. 반쯤 정신을 어디에 두고 오는지, 선생님의 질문은 놓치기 일쑤였고, 친구들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아닌 자세를 취하던 아이. 그러면서도 늘 해맑던 아이. 나는 그 아이와 내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랬던 우리가 말하게 된 건, 그래서 내가 지유네 집까지 가게 된 건, 다 키 때문이었다. 우리의 유일한 공통점은 키가 비슷하다는 거였고, 키순으로 짝 맺기를 좋아하는 담임 덕에 우리는 이전보다 가까워지게 되었다.


오늘 수업 마치고 우리 집에 가자

엄마는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오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별 볼 일 없는 살림과 별 볼 일 없는 대접을 남에게 보이며, 시간 들이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유의 제안은 나에게 신선하게 느껴졌다.


"좋아."


당시 내가 살고 있던 아파트 정문에서블록만 올라가면, 이저 건설 회사서 세운 아파트들이 줄지어 있었다. 지유는 중 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나는 그 아이를 따라가며 한 블록이 만들어내는 의 간극을 피부로 느끼고는 움찔했다.

지유네 집은 2층이었으므로, 우리는 계단을 통해 걸어 올라갔다. 지유가 현관문을 열고 먼저 집으로 들어섰다. "들어와, 희서야." 나는 지유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2층임에도, 전등을 다 꺼놓은 상태임에도 집안은 환하게 빛났다. 벽지와 바닥이 빛났고, 사진 액자 속, 미소 짓는 지유가 빛났다. 넓은 거실, 특히나 지유네 주방이 우리 집 거실만 한 게 놀라웠다. 냉장고 문에는 자석이 빼곡히 붙어 있었는데, 지금까지 외국 여행을 하며 기념품으로 사 온 거라고 했다. 지유 엄마는 직접 만든 쿠키와 음료를 내주며 미소 지었다. 그 상냥한 표정이 괜스레 마음을 울컥하게 했다.


"희서야, 만나서 반가워. 많이 먹어."


나는 오산의 미분양 아파트를 계약한 날부터 지유가, 지유 엄마가, 그 집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내가 살고 있는 집도 2층이었고, 저층임에도 환하게 빛났으며, 주방도 넓었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때로는 공간이 사람을 만들어 간다. 공간은 생명도 말도 없지만, 어느샌가 흩어졌던 기억을 데려와 호흡을 불어넣고, 의미를 부여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추억이라고 명명했다. 나는 그곳에서 있던 과거를 려내고, 잊힌 사람을 집어냈다. 내가 그 시절의 지유 될 수 없지만, 지금의 나는, 지유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베이킹을 배운 나는, 아이 친구들을 초대했고, 쿠키를 대접했다. 종종 놀잇감을 만 나는, 아이 친구들을 초대고, 진심으로 놀아주었다.


지유 엄마를 닮아갔던 장소


나에게 은 집은 단순히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지유 엄마의 미소를 닮아가려 애쓰던 나의 의지, 추억의 크기, 회복의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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