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투자
여느 부동산과 다를 건 없었다. 가로보다 넓은 세로 벽을 따라 책상 두 개가 붙어있었다. 남은 공간에는 손님용 원탁 하나와 두서너 개 의자가 놓여있었다. 탁자 옆, 벽에는 오산 지역의 지도가 붙어 있었는데, 이것은 그 공간을 다소 경직되게 했다. 중간중간 화분에 심긴 식물들이 그곳의 삭막함을 누그러트렸다.
"커피 줄까?"
"네, 감사해요."
하루 세 번, 아파트 앞 작은 호수에서는 음악 분수 쇼를 했다. 아들은 그곳에 가는 걸 좋아했다. 아이 손을 잡고 그 길을 지날 때마다 나는 상가의 부동산 사장님과 자주 마주쳤다. 몇 마디 인사가 오가다 보니 자연스레 말문이 트였고, 어느새 친분까지 쌓여 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희서 씨, 시간 있어? 잠깐 들어와 봐."
"안녕하세요? 사장님."
"혹시 투자할 생각 있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얼결에 부동산 사무실로 들어간 나는, 흔들리는 동공과 요동치는 마음을 진정할 길이 없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동산 정책도 쉴 새 없이 방향을 달리했지만, 당시 박근혜 정부 시절엔 수출 부진과 경기 둔화를 이유로 소비와 투자 촉진을 위해 사상 최저 금리가 적용되고 있었다. 그 시절, 부동산은 저금리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전셋값이 낮으니 대출받아 집을 사자'라는 수요가 늘어났고, 결국 가계 부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기였다. 너도나도 집을 사들이는 광풍 속에 나의 고민은 깊어졌다.
의자에 앉으니 미처 보지 못했던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개업 식당에서 자주 보았던 성경 욥기의 8장 7절이었다. 욥의 친구는 알았을까. 당신이 욥의 죄를 억지로 끄집어내 회개시키려 했던 그 말이 3,00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식당가에서 복의 부적처럼 걸려 있을 줄을.
"아까운 거라 새댁이 생각나더라고."
수년은 묵은 듯한 장부를 가지고 사장님은 내 앞에 앉았다.
"연식은 좀 있는 아파트지만, 초중고가 다 모여 있는 곳이라 늘 수요가 있어. 최근에 매매가가 많이 내려가서 전셋가랑 차이가 안 나. 투자는 이런 데에 하는 거야."
급작스러운 제안에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더 들어보기로 했다. 사장님은 손에 든 장부를 펼쳐 나에게 내밀었다. 그곳엔 지인이 그 아파트에 투자해서 벌어들인 수익이 적혀있었다.
"이게 진짜예요?"
"내가 새댁한테 거짓말하겠어?"
말로만 듣다 문서로 적힌 내용을 보니 마음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쓰디쓴 입안에 사탕을 잔뜩 문 듯, 도파민이 달큰하게 삐져나왔다. 매매가와 전세가 차이는 이천만 원 남짓. 빚을 조금 내면 가능한 금액이었다.
"사장님, 남편이랑 상의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부동산 사무실을 나와 아이와 호수 근처로 갔다. 때마침 잔잔했던 호수는 음악에 맞춰 높이 솟아올랐다. 그 돈 투자하면 내 인생도 저렇게 올라가려나? 돈방석에 앉아있는 나를 상상하니 실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날따라 호수는 더 힘차게 물을 끌어올렸다가, 더 크게 떨어뜨렸다. 내 마음도 덩달아 오르락내리락했다.
세상에는 수만 가지의 변수가 있다. 한두 개의 물구멍이 고장 나, 이 빠진 분수 쇼를 본다거나, 시끄럽다는 민원으로 음악이 사라진 볼품없는 분수 쇼만이 남는다거나. 느닷없는 빗줄기에 분수 쇼가 아예 멈춘다거나. 인생은 직선도, 곡선도 아닌 꼬불꼬불 꼬부랑 고개였다.
그럼에도 나는 사장님 제안에 미혹되었다. 얼마 되지 않는 아빠 월급으로 알뜰살뜰 살림하던 엄마는 청약에 당첨되어 경기도 만안구 다세대 주택에서 가족들을 이끌고 인천의 한 아파트에 정착하게 했다. 그때부터 엄마의 짠순이 기질과 대범함은 본격적으로 발휘됐다. 조금 더 큰 평수의 아파트를 하나 더 분양받았고, 우리는 두 채의 집을 갖게 된 것이다. 거기서 끝낸 여사님이 아니었다. '헐값이 나왔다'라는 소문을 듣고 그녀는 아파트 한 채를 더 사들였다. 본인은 일 년에 옷 한 벌 살까 말까 하면서 어느새 집은 세 채가 되었다.
누가 알았겠는가. 남 여사의 피땀으로 올린 그 집들을 홀랑 다 말아먹는 작자가 나타날 줄을. 아빠의 무책임한 행동에 엄마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아파트는 남 여사의 희망이었고, 동시에 절망이었다.
아파트에 얽히고설킨 우리 가족의 역사가 이러한즉, 아파트 하면 징글징글했다. 그럼에도 나는 남 여사의 피가 흐르고 있었으므로, 그곳에 다시 희망을 걸어보고 싶었다. 내 남편은 적어도 집을 말아먹을 거 같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럴 놈 같았으면 애초에 결혼도 안 했겠지.
"부동산 사장님이 좋은 물건 있다고 추천하시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이렇게 말하고 보니 꼭 암거래 같다.)
예상했던 대로, 남편은 노! 였다. 이사 오며 받았던 아파트 대출금도 얼마간 남아있었고, 투자를 하려면 위 지역(여기서 위 지역은 서울이다)에다 해야지 왜 지방에다가 하냐는 것이었다. 서울에 투자하려면 목돈이 있어야 하는데, 당장은 불가능한 일이니, 할 수 있는 선에서 한번 해보고 싶다고 나는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그럼, 그 아파트 가서 보고 다시 얘기하자."
반 설득당한 남편을 데리고 나는 다시 부동산 사무실로 왔다. 벽에 걸린 성구(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가 몹시 거슬렸지만 모르는 척 사장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남편도 같이 왔네. 가봅시다. 내 차 타고 가요."
이리하여, 우리는 졸지에 한밤중 오산시 카 투어를 하게 되었다. 남편의 표정은 여전히 떨떠름했다.
사진 출처- pex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