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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초짜의 첫 계약

무언가를 가지려는 순간.

by 희서

10월의 밤이 이렇게 어둑했었나. 저녁 곱 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자연에서 온 빛은 삽시간에 자연으로 돌아갔다.


가로등 하나 없는 도로를 려가는 차. 퀴는 음침한 곳을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후미진 목에 진입해서야 차는 서서히 멈췄다. 이곳은 우리의 목적지가 아니었다. 장한 탓에 바닥에 물기가 송골송골 맺혔다. 나는 남편과 아이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룸미러 속 부동산 사장님을 힐끗 바라봤다. 보일 듯 말 듯한 저 눈빛은 믿을 만한 인지 닌지 헷갈렸다. 장은 박의 리듬을 타며 귓가를 때렸다. 그때, 운전석 새어 나온 낮게 깔린 음성.


"희서 씨, 저 옆에 보여?"


칠흑 같은 어둠 속, 보이는 건 없었다.


"저 상가주택이 이번에 매물로 나왔어. 급매야. 나중에 이런 것도 생각해 봐. 목이 참 좋아. 가는 길이라 잠깐 들렀어."


"아, 네. 급매..."


'휴우, 그럼 그렇지. 무슨 막장 드라마를 찍고 있었던 거야.'


심장은 다시 정박자를 찾고, 제자리로 갈 채비를 했다. 마음이 놓이자 금세 어둠에 적응한 눈은 상가주택 윤곽을 어스름히 인하기 시작했다. 건물은 암전 속에서도 묵은 세월을 드러냈다. 저 건물의 주인은 어떤 사연으로 급매를 내놓았을까. 부디 돈, 건강, 자녀 문제로 급전이 필요한 일이 아니기를. 하지만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금액으로 집을 내놓았다 것은, 그것이 돈, 건강, 자녀 문제일 확률이 높다.


차량은 산한 골목을 벗어나 빛이 송송 새어 나오는 거리로 향했다. 그제야 몸의 신경이 균형을 잡았다. 나는 안전벨트를 느슨하게 풀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오산의 한 주공 아파트였다. 전세를 끼고 있는 매매였고, 세입자는 두 달 뒤 새 아파트로 입주 예정이라고 했다. 늦은 밤, 양해를 구하고 집을 둘러보았다. 10년이 넘은 아파트임에도 관리가 잘되어 있어, 따로 손 볼 건 없어 보였다. 도배 정도만 새로 하면 될 것 같았다. 새 세입자를 구하는 게 관건이었지만, 부동산 사장님을 믿어보기로 했다.


투자는 철저한 분석과 논리로 덤벼들어도 예상에서 어긋날 수 있는 것데, 나는 그곳이 신혼집을 닮아 정이 갔다. 내 이름을 걸고 하는 투자에 진짜 어른이 된 느낌마저 들었다. 갭이 얼마 나지 않는다는 건 여전히 구미가 당기는 일이기도 했다. 동산 바람이 불던 그 시절엔, 나도 뭔가 하나를 쥐고 있어야 마음이 덜 흔들릴 것 같았다. 불안정성을 걷어내기 위해 불확실성을 택했다. 안을 꿈꾸며 제 발로 더 큰 위험 속으로 걸어 들어간 셈이었다.


부동산은 '지금'을 사는 게 아니라, '앞'을 내다봐야 하는 일이라는 걸 초짜가 어찌 알았겠는가. 달콤한 미래를 믿으며 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내 이름으로 계약한 첫 번째 집었다.



무언가를 가지려는 순간, 다른 것을 두려워할 수 있고, 무언가를 지키려는 순간, 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실을 깨닫기까지는 불과 한두 달이 충분했다. 투자가 리 쉬운 이었다면 너도나도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흩어지는 법. 무대고 뛰어든 과는 처참했다. 두 달 후, 옆 동네 신도시가 대대적으로 입주를 시작하자 모든 게 무너졌다. 새 세입자를 구하는 일부터가 막막했다. 부동산 사장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임자는 다 있기 마련이라고 했지만, 그 말은 나를 더욱 걱정스럽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신도시로 몰려가면서, 새 세입자를 구하는 건 그야말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격이었다. 전 세입자 역시 신도시 입주 예정이었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전셋가를 낮추고 또 낮출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투자금의 갭은 벌어졌다. 결국 내 몫의 돈이 두 배로 묶여서야 겨우 세입자를 구할 수 있었다. 세입자는 인근 회사에 다니는 총각으로, 수더분한 외모가 인상적이었다. 전 세입자 짐이 빠지는 날에 환승 이사를 해야 한다며 도배는 굳이 새로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음씨 좋은 세입자를 구해놓고 나는 그제야 한숨 돌렸다.


비록 전셋가는 떨어졌지만, 일시적인 일일 거라 생각했다. 신도시 입주가 끝나면 모든 건 제자리로 돌아올 거라 믿었다. 그래야 했다. 잃은 것은 한순간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벌기 위해 매일 아침 어린아이들과 전쟁을 치르던 엄마, 출근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던 직장인, 남편 퇴근 시간만을 기다리는 핏기 마른 아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부터 집값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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