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서 Dec 20. 2024

공황장애가 수영을 만나면

수영장이 지하에 있었다

 '여기에 둔 거 같은데 수영복이 없네. 낼모레 필요한데. 아무거나 빨리 주문하자.'


 아이 둘을 낳고 몸에 서서히 스며든 지방 덩어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결속 다지듯, 한 뭉쳐 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옷은 편한 게 제일이라는 실용주의를 좇는 사람이 되었지만 나름의 철칙은 있었다. 옷은 자고로 뱃살과 팔뚝살 가릴 수 있는 형태로 되어 있되, 너무 펑퍼짐하히려 뚱뚱해 보일 수 있으니 적당히 날씬해 보이는 착시를 일으켜야  것. 한 마디로 나는 실용주의를 가장한 의류선택불능자 었다. '수영복 아무거나'의 뜻은 런 의미로 몇 시간째 수영복 아무거나를 검색하며 어렵사리 찾은 수영복 아무거나를  워터파크에 갔다.


 "엄마, 재밌어. 밖에 있지 말고 물에서 우리랑 놀자."


 "여보, 들어와 봐. 우하하하."


 '수영도 못 하는 사람들이 튜브 하나 가지고 저리도 잘 노나. 신기한 노릇일세.'


 워크파크에 가서도 팔뚝 살에만 신경모아졌터라 물놀이는 크게 관심 가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물에 뜨지도 않을 테니까.


 결혼 전에 공립 수영장에서 강습을 두어 달 받아본 적이 있다. 내 실력과는 상관없이 쭉쭉 진행되는 강습 진도에 몸도 마음도 따라가지 못해 절망스러웠던 경험을 한 뒤로는 일찌감치 수영 꿈나무의 날개는 고이 접어두었다.


 터파크까지 온 마당에  이상 물에 들어가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었으므로, 가족들 성화에 못 이기는 척 물속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난생처음 생각지도 못한 물맛을 보게 되었다. 


 '뭐지? 이 묘하고 포근한 느낌?'


 튜브를 안전띠 삼아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안락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팔뚝 살, 뱃살 걱정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고, 물이 주는 충만한 감성에 푹 빠져 유유히 물 위에 떠 는 나는, 한 마리의 백조 아니 물범 되었다. 넘실대는 물살에 스며드는 햇살이 그날따라 더 윤이 났다.


출처- istock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모험을 즐겼던 시절은 봉투에 꾹꾹 눌러 담아 묶어두고 꺼내지 말아야 했었다. 둘째를 임신하며 겪었던 강렬하고 두려운 폐쇄적 공포는 언제 어디서든 내 사지와 혼을 집어삼킬 수 있는 존재였기에 살얼음판 걷듯 살아야 했다. 도전하며 얻는 성취와 희열의 길이 아닌, 절제되지 않는 상황과 공포를 피해 가는 삶을 선택했었다. 랬던 내가 물맛을 알게 된 것이다.


 '수영을 배워볼까? 내가 할 수 있을까? 다시 해볼까?'


 딱 한 걸음만 뗄 수 있는 용기

 익숙하지 않은 길로 들어서면 한참 헤매다가, 작은 돌부리에도 걸려 넘어 수 있지그 길은 다른 이들도 처음일 것이다. 모두에게 낯선 길에서 더고 서툴지만 음만, 딱 한 걸음만이라도 떼고 싶었다. 천천히 용기를 내어, 용기 낸 만큼 나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가족 수영 시작된 첫날,

수영장에 도착한 나는 잖이 당혹스러웠다. 하 주차장과 연결된 수영장 안에는 그 작은 창문 하나가 없었다. 밀폐된 공간을 보고 있자니 속이 메슥거렸다.


 '수영장이 지하에 있을 거라고 왜 생각을 못 했을까?'


 바람 앞에 위태로운 촛불처럼 마음이 멋대로 나부끼기 시작했다.


 '더디어도 괜찮아.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한 걸음만 떼어보자. 딱 한 걸음만.'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담은 한 걸음 천천히 떼었다. 그리고 수영장 입구 문을 힘차게 열었다. 조명에 비친 물살이 나풀거리며 입을 열었다.


 '어서 와. 겁먹지 말라고.'

 

출처- istock

  



 표지 출처- istock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