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을 낳고 몸에 서서히스며든 지방 덩어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결속을 다지듯, 한데 뭉쳐 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옷은 편한 게 제일이라는 실용주의를 좇는 사람이 되었지만 나름의 철칙은 있었다. 옷은 자고로 뱃살과 팔뚝살을 가릴 수 있는 형태로 되어 있되,너무 펑퍼짐하면 오히려뚱뚱해 보일 수 있으니 적당히 날씬해 보이는 착시를 일으켜야 할 것. 한 마디로 나는 실용주의를 가장한의류선택불능자가되었다.'수영복 아무거나'의 뜻은 그런 의미로 몇 시간째 수영복 아무거나를 검색하며 어렵사리찾은 수영복 아무거나를 들고워터파크에 갔다.
"엄마, 재밌어. 밖에 있지 말고 물에서 우리랑 놀자."
"여보, 들어와 봐. 우하하하."
'수영도 못 하는 사람들이 튜브 하나 가지고 저리도 잘 노나. 신기한 노릇일세.'
워크파크에 가서도 팔뚝 살에만 신경이 모아졌던 터라 물놀이에는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물에 뜨지도 않을 테니까.
결혼 전에 공립 수영장에서 강습을 두어 달 받아본 적이 있다. 내 실력과는 상관없이 쭉쭉 진행되는 강습 진도에 몸도 마음도 따라가지 못해 절망스러웠던 경험을 한 뒤로는 일찌감치 수영 꿈나무의 날개는 고이 접어두었다.
워터파크까지 온 마당에 더 이상 물에 들어가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었으므로,가족들 성화에 못 이기는 척물속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에서난생처음 생각지도 못한 물맛을 보게 되었다.
'뭐지? 이오묘하고 포근한 느낌?'
튜브를 안전띠 삼아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안락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팔뚝 살, 뱃살 걱정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고, 물이 주는 충만한 감성에 푹 빠져 유유히 물 위에 떠 있는 나는, 한 마리의 백조 아니 물범이 되었다. 넘실대는 물살에 스며드는 햇살이 그날따라 더 윤이 났다.
출처- istock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모험을 즐겼던 시절은 봉투에 꾹꾹 눌러 담아 묶어두고 꺼내지 말아야 했었다. 둘째를 임신하며 겪었던 강렬하고 두려운 폐쇄적 공포는 언제 어디서든내 사지와 혼을 집어삼킬 수 있는 존재였기에 살얼음판을 걷듯 살아야 했다. 도전하며 얻는 성취와 희열의 길이 아닌, 절제되지 않는 상황과 공포를 피해 가는 삶을 선택했었다. 그랬던 내가 물맛을 알게된 것이다.
'수영을 배워볼까? 내가 할 수 있을까? 다시 해볼까?'
딱 한걸음만 뗄 수 있는 용기
익숙하지 않은 길로 들어서면 한참을 헤매다가,작은 돌부리에도 걸려 넘어질 수있지만 그 길은 다른 이들도 처음일 것이다.모두에게 낯선 그 길에서 더디고 서툴지만 한 걸음만, 딱 한 걸음만이라도떼고 싶었다. 천천히 용기를 내어, 용기 낸 만큼 나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가족 수영이 시작된 첫날,
수영장에 도착한 나는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지하 주차장과 연결된 수영장 안에는 그 작은 창문 하나가 없었다. 밀폐된 공간을 보고 있자니 속이 메슥거렸다.
'수영장이 지하에 있을 거라고 왜 생각을 못 했을까?'
바람 앞에 위태로운 촛불처럼 마음이제멋대로 나부끼기 시작했다.
'더디어도 괜찮아.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한 걸음만 떼어보자. 딱 한 걸음만.'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기개를 담은 한 걸음을 천천히 떼었다. 그리고 수영장 입구 문을 힘차게 열었다.조명에 비친 물살이 나풀거리며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