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불란하게 수영 3종 세트를 챙겨서 집을 나선 길, 꽁꽁 싸매고 나왔음에도 손끝부터 저릿함이 올라온다.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찬 공기를 가르며수영장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가족이 함께 수영을 배울 만한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여러 전화를 돌린 끝에딱 한 군데를찾았는데, 동네 어린이 전용 수영 학원이었다.선택지 없이 시작된 강습은학원 스케줄이 모두 끝난 밤10시에 시작되었다.
아이들의 겨울방학 동안 물과 친숙해지고 물에 뜨는 걸 목표로,주 2회 강습을 받기로 결단하며 집을 나서는 길이었다.
지하에 있는 수영장은 아이들 전용 레인 3개를 겨우 욱여넣은 거처럼 비좁고 답답했다. 강습 전부터 하루의 피로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급하게 주문한 강습용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작은 레인 앞에 서 있는 4인의 모습은 오합지졸 그 자체였다.늦은 밤이었음에도 아이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들떠있었고 남편의 눈빛에선 비장한 기운이 품어져 나왔다. 그들을 바라보며 경직된 마음을 애써 이완시키려고부드러운 물살에 시선을 돌렸다.
"물과 친해져야 수영도 쉽게 할 수 있어요. 무서워하지 말고 킥판 잡고 발차기하면서 앞으로 나갈게요."
강사의 이야기에 킥판 하나씩을 집어 물속에 들어왔다. 예상대로 아이들은 선두 그룹이 되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라고,킥판 잡고 아이들은 음파까지 하며 레인을 돌았다.하룻강아지가 아닌 나는, 작은 킥판 하나 믿고과연 몸이 물에 뜰수 있을지 의심하는 동안 여러 번의 물을 먹었다. 해수풀이라더니 물맛은짜고 씁쓰름했다. 곧발차기만이 살길임을 몸으로터득하고는쉴 새 없이 다리를휘두르며앞으로 나아가려고 버둥거렸다.강습 시간이 마무리되어 갈 때까지 레인 한 바퀴도 돌지 못한 안타까운 이가 있었으니, 누가 봐도 허우대가 멀쩡해서 의문스러운1인이었다. 레인구석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벽과 하나가 된 남편은 발차기에집중하는눈빛만은 국대의 것이었다.
"허벅지 아프지 않아?"
첫날강습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은 운전하며 허벅지를 한 번씩 감싸 쥐었다.그러잖아도 내 허벅지도 탱탱볼이 된거마냥 빵빵했다. 수영이 유산소 운동인 줄 알았더니 근력 운동 한 번 제대로 하고 왔구나 싶어 몸은 노곤했지만 뿌듯했다.
그렇게 2주가 흐르고,
일주일에 두 번 밤 수영을 가는 것이 우리 가족에게 자연스러운 일과가 되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때로는 소소했을, 때로는 힘겹고도 벅찼을, 때로는 작은 웃음으로 버무렸을 하루를 살아내고 물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서로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주며 수영을 배워나갔다.
분명 같은 모습으로, 같은 강사에게, 같은 날 수영을 시작했는데 수영 실력은 제각각이었다. 선두 그룹을 놔줄 거 같지 않던 아이들은 물에만 들어가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었고, 수영을 배운다기보단 물놀이하러 온 거 같았다. 남편은 여전히 구석 자리에서 발차기 특훈 중이었으며맘처럼 진도가 나아가지 않았다. 장족의 발전이 나에게 있었으니,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는 건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오늘 나 하는 거 봤어? 킥판 없이 세 번 앞으로 간 거.감 잡았어!"
학창 시절에 이런 친구가 꼭 있었다. 공부는성심껏 하지 않지만 좋은 머리 덕에 시험 성적은 그럭저럭 잘 나오는 친구, 밤새 가며 죽어라 공부하지만 성적도 머리도안쓰러운 가련한 친구, 머리는 보통이지만 열심히 준비하여 시험 성적이 우수한 친구.
우리 가족이이 모든 유형에 해당되었으니, 가정이사회를 압축해 놓은 '작은 사회'라고 누가 그랬던가.
살아가다 보니 이런 유형도 하나 더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즐기는 사람은 그 누구도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