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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신미 Oct 10. 2023

그리운 손

손처럼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것이 또 있을까. 손이 가리키는 곳에 그 삶의 방향이 있고 손이 닿은 데에 그의 흔적이 있다. 수많은 악수와 손절, 하이 파이브와 손가락 항의, 묘수나 실수도 하면서, 사람은 그 손만큼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손은 많은 명작 안에서도 중요한 상징과 의미로 쓰인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천장벽화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아담의 창조’, 그 중에서도 신과 사람이 마주 내민 손가락이다. 손 내밀어 접촉하는 데는 상호 존중이 있고 창조의 의지가 실현되며 생명이 살아나는 기적이 있기 때문이다. 손이 없이는 인류미술사에 획을 그은 저 대가의 그림도 조각도 탄생하기 어려웠으리라. 돌 덩어리 속에 갇혀 있는 상에게 자유를 부여하고 싶어서 조각을 했다는 그의 어록을 보며, 그의 위대한 손과 함께 내가 아는 어느 평범한 손이 생각났다. 한없이 그리운 그 손.

엄마는 자타공인 green thumb (화초를 잘 살리는 특성)을 갖고 계셨다. 약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이 그의 손길을 빌어 힘을 얻고 버젓해지곤 했다. 규모 있게 무슨 원예를 한 것은 아니지만 엄마의 부엌, 엄마의 현관, 엄마의 식탁과 앞뜰에는 항상 건강한 초록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고 있었다. 어떻게 엄마의 초록 잎들은 그렇게도 반짝반짝 흠이 없었을까. 꽃들은 또 어쩌면 그렇게 활짝활짝 웃으며 오래 피어 있곤 했는지. 길가에 떨어진 마른 나뭇가지 하나도 엄마의 손에 들어가면 얼마 후 푸른 잎을 내고 꽃이 피었다. 나의 아이들이 태어난 후로는 항상 멀지 않은 곳에 사셨던 엄마는 어느날 옆집 버드나무 부러진 가지를 주워다 나의 집 마당에 그냥 푹 꽂아 놓았다. 이삼년 후 그것은 제법 뿌리를 내렸고 몇 년 후엔 버젓하게 우리집의 대표 나무가 되었다. 마이너스의 손, black thumb (그린 썸의 반대. 화초를 잘 죽이는 특성)을 갖고 태어난 게 분명했던 내가 다 죽인 화분들을 엄마는 갖고 가서 다시 살려 우리집에 도로 갖다 놓곤 했었다. 아 신기해라, 살렸네. 엄마 손은 약손.

엄마의 음식은 누구나 맛있어 했다. 입이 짧은 나의 아이들도 할머니의 갓지은 밥과 나물반찬 앞에서만큼은 덥석덥석 불평이 없었다. 그뿐인가. 나의 냉장고에서 단면이 말라가는 반토막 호박, 겉이 무른 양파, 칼댄 곳이 검게 변한 양배추 같은 것들은 엄마의 손을 거치면 세상 맛있는 채소덮밥도 되고 비오는 날 부침개도 되어 나와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나는 맛있게 먹으면서도 아이들에게 오래된 채소를 먹이면 안되는데, 하며 잘난 척을 하였다. 그럴때도 엄마는 손으로 뭔가를 하시며 방 한쪽에 있는 인도고무나무 잎사귀처럼 그냥 슬쩍 웃었다. 아니다, 시들어가는 화초를 살펴주는 원예사의 얼굴로 웃은 것이다 이제 생각해 보니.

엄마의 손 맵시는 조각이불에도 알록달록 옛이야기로 살아있다. 할머니의 공단 저고리와 언니의 초등생 시절 블라우스와 엄마의 통치마가 손바닥 만한 크기로 조각조각 맞대고 누벼져 추억과 역사가 되었다. 크고 작은 이 조각이불들은 요즘도 나의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정다운 소재가 되곤 한다. 이것은 너의 증조 할머니의 저고리였어. 할머니는 나의 엄마에게 자주 부당한 꾸중을 내리시곤 했는데 엄마는 그냥 가만히 웃으며 듣기만 하셨지. 이것은 내가 국민학교 입학 기념으로 새로 입었던 옷. 처음 입은 날 그만 눈 녹은 흙탕물에 넘어져서 못입게 되었더란다. 흙물이 빠지지 않았거든. 그때 넘어져서 다친 무릎의 흉터가 여기 있잔니. 조각이불을 만들고 남은 헝겊이랑 솜은 아버지의 옛셔츠에서 나온 단추눈을 가진 인형이 되어 우리 식구로 자리 잡았다. 할머니의 낡은 스웨터는 언니의 털모자와 벙어리 장갑이, 아버지의 작아진 조끼는 오빠의 목도리와 양말이 되었던 요술. 한조각의 가치도 없을 뻔한 나 조차도 잇고 덧 대어서 하나의 구실을 하게 만든 엄마의 손. 엄마는 창조자의 손이었던 거다. 엄마 손은 금손.

사람을 몸의 지체에 비유하자면 엄마는 분명 손이었다. 미켈란젤로가 돌덩이에서 생명을 불러 내어 작품을 탄생케 했듯이 엄마의 손은 흔한 일상에서 놀랍고 좋은 것을 만들어 내곤 했다. 힘내라고 손뼉을 쳐주던 응원의 손, 몸이 약한 내가 아플 때 이마를 짚어주던 그 안타까운 손, 다친 마음으로 돌아오면 등을 토닥여 주던 치유의 손. 부족한 자식들을 위해 남몰래 모았을 기도의 손. 죽어가는 것들을 살리던 그 손이 만들어낸 기적들을 나는 분명히 보며 살아왔다. 나는 엄마의 아름다운 손에 손톱 하나라도 되어 드렸어야 마땅했으나 그도 하지 못한 불초한 자식이다. 그저 이제서야 그것이 흉내 낼 수 없는 사랑이었음을 깨달으며 보고싶은 엄마의 손을 기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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