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하늘을 점령하던 먹구름을 몰아내고 난 뒤, 다시 찾아온 평화의 터에 햇솜 같은 구름이 줄지어 행군한다. 뒤이어 햇살로 따스하게 나팔을 불면 나무들과 곤충들이 일제히 박수갈채를 보낸다. 처음에는 모두가 한 마음 한뜻이더니, 후에는 제각기 흥에 취해 퍼져나가는 바람에 통일감이 희미해져서 조금 어지럽다.
우산으로 빗발치는 빗물을 막고, 우비를 갖춰 입었던 인간들도 마침내 그것들을 과감히 벗어던졌다. 그리고 아무것도 걸리는 것 없이 자유로운 그 상태로 안온감을 잔뜩 만끽한다. 그러다가도 검은 바닥을 처량히 구르는 마른 낙엽이나 낙화를 마주하면 숙연히 묵념한다.
새들은 거칠게 불어닥친 전야의 잔해를 끌어모아 그들의 집을 짓는다. 그렇다, 줄기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들도 말라가는데서 그치지 않고 누군가의 집이 된다. 어쩌면 우리 인간들의 집도 그러한 잔해의 일부가 아닐까, 막연히 생각한다
그 가운데 한 꼬마 아이 하나가 밖으로 나와 자유를 만끽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물웅덩이 속을 한참 들여다본다. 그 속에는 꼬마가 한 명 더 서 있다. 그 두 사람의 뒤로 말간 빛이 윤슬처럼 하얗게 반짝인다. 꼬마뿐만이 아니다. 모두가 혼탁한 공기 속에서 그 밝은 빛을 보고 나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생각한다. 이다음에도 비가 오겠지만 그때는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해석- 식민지 생활이 막을 내린 후 찾아온 평화를 '비가 내린 다음 날 아침의 풍경'에 빗대어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찾아온, 어딘가 불안정한 평화의 시기를 구름, 햇빛, 나무, 곤충 등 자연물을 활용하여 비유했습니다. 해방이 된 직후 다 함께 기뻐하던 사람들은 이내 저마다의 사상과 가치관에 따라 갈라서기 시작했지요.
빗물은 총알을, 우비는 군복을 의미합니다.
늘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일제의 만행에 대한 불안에서는 벗어났지만 그동안의 수많은 희생들을 생각하면 마냥 기뻐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들의 시신 앞에서, 살아남은 이들과 그 후손은 그들을 애도하고 기념하죠.
그러나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황폐해진 땅덩이에서도 사람들은 기어코 다시 일어나 살아갔습니다. 그로 인해 지금 우리가 사는 국가가 존속되어 온 것이겠죠.
꼬마 아이(들)는 현재의 우리들을 상징합니다. 역사를 배우는 까닭이 과거의 기록으로부터 현재 나아가야 할 방향을 끄집어내기 위함이라고들 하죠. 우리는 역사를 매개로 우리들의 삶을 비추어보고, 자아 성찰을 하고 더 깊은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도 역사 속 청명하게 반짝이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될 수도 있겠죠.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도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