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 엄마의 이기적인 생각-9
내향인 엄마의 이기적인 여가 시간
도서관 카페에서 혼자,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방금 전 골라 온 책을 읽으며, 다이어리에는 마음에 드는 문장을, 흘러가는 내 생각을 끄적이기.
누군가에겐. 특히 우리 남편 같은 사람들에겐 세상 노잼인 일이라지만 나에게는 세상 최고의 여가 활동이다. 여기서 나는 커피가 좋은 것일까, 도서관이 좋은 것일까, 카페가 좋은 것일까, 책을 읽는 것이 좋은 것일까,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혼자 있는다는 게 좋은 것일까. 아무 문장이나 자유롭게 끄적이는 게 좋은 것을까.
어느 하나가 아니라..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서 가슴이 벅차오를만큼 행복한 것이겠지.
"혼자 있는 게 그렇게 좋으면 진짜로 아무도 없는 집에서 커피 마시면서, 카페처럼 음악도 틀어놓고, 드립커피 내려서, 책 읽으면서 다이어리에 끄적이면 되잖아"
하지만 집에 있으면 왠지 책도, 다이어리적기도 시시하다. 너무 추레한 차림에 부스스한 모습으로 있으면 그냥 잠만 자거나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게 된다. 분명 몸은 편한데 너무나 공허하다. 그래서 자꾸만 도서관으로, 카페로 간다. 부스스하지 않게 머리도 매만지고, 5분 컷 초간단 메이크업이라도 하고, 추레하지 않게 나만 아는 나의 시그니처 스타일로 옷을 갖춰 입고서.
조금이라도 외출의 모양새를 갖추고 나가면 그제야 공허함이 사라진다. 책읽고 글쓰는 것이 온전히 즐겁다.
20대에는 늘 새로운 경험을 하고 폭넓은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무조건 좋은 거라 믿었다. 그래서 여가시간이 생기면 자꾸만 약속을 잡아 누군가를 만나려 했다. 원데이 클래스를 찾아 평소에 관심도 없던 것을 '새로운 경험'인것 마냥 참여하기도 했다. 취업준비를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자꾸만 스펙을 쌓듯 뭐라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살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SNS에 전시했다. 나는 여가시간을 매우 보람있고 발전적으로 보내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는 게시물에 좋아요를 받으면 거기에서 만족을 느꼈다. 폭넓은 인간관계를 전시하면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도파민같은 만족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렇게 여가시간을 보내면 내향인인 나는 오히려 더 지쳤다. 지친 상태로 출근하면 다시 도파민같은 에너지가 필요해 자꾸만 달콤한 간식을 찾았다.
30대 초반에 접어들며 젖먹이 아기의 엄마가 되자 20대일 때처럼 여가시간을 길게 보낼 수가 없었다. 자연스레 '다음 수유텀까지 1-2시간동안' 할 만한 것을 찾았다. 그런 것은 기껏해야 '집 앞 카페에서 책 읽기'였다.
젖먹이 딸과 함께 집에서 추레하게 지내다 보면 아무리 잠깐의 외출이어도 조금 꾸미고 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다음 수유텀 전까지, 남편 찬스를 써서 간단히 화장하고 외출복으로 갈아 입고 집 앞 카페에 책을 가지고 나가곤 했다. 지치는 육아 중이어서 그랬는지, 나에게는 이게 너무나 꿀맛 같은 휴식이었다. 잠시동안이었는데도 지친 몸과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 기분이었다. 그 경험으로.. 나는 이제껏 여가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있다. 이제 딸아이가 초등학생이 됐기에 집 앞 카페가 아니라 옆 동네 도서관 카페로 행동 반경이 약간 넓어졌을 뿐.
생각해 보면 20대에는 '보여주기식 여가생활'이라 내 성향에 맞지도 않게 그 시간을 채워서 지쳤던 것 같다. 하지만 30대 후반인 지금은 내게 온전한 쉼을 주는 여가활동을 알게 됐다. 그래서 여가시간을 보내고 오면 딸아이에게 훨씬 더 너그럽고 여유롭게 대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20대에는 매일매일 찾던 달콤한 간식들은 요즘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냥 세 끼 밥만 잘 먹으면 뭘 더 먹고 싶지가 않다. 물론 운동방법과 식습관을 바꾼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내가 제대로 쉬니 마음에 이전보다 여유가 생겨서 도파민같은 에너지가 필요 없어진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