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 엄마의 이기적인 생각-7
내향인 엄마의 이기적인 집안일
금요일 늦은 저녁에는 청소를 한다.
청소가 너무너무 싫으면서도 집이 지저분한것은 또 싫다. 억지로 해야 할 일이라면 그나마 가장 홀가분한 시간에 해야 한다. 한 주의 일을 무사히 마무리한데다가 다음 날에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니까 부담도 없다. 금요일이라면.. 밤에 청소를 마치고도 더 늦은 밤까지 책을 읽거나 이렇게 끄적일 수 있다.
가장 안 내키는 욕실청소부터 시작이다. 욕실이 하나뿐이니 욕실청소는 20분이면 충분하다. 욕실 바닥에 물을 뿌린 후 세제를 뿌려 수세미로 문지른다. 물로 헹궈내며 곳곳에 달라붙은 물때와 머리카락을 없앤다. 그리고 마른 행주로 물기만 닦아준다. 물걸레로는 세면대와 변기, 수도 등을 닦는다. 구축 아파트인만큼 욕실도 낡아 군데군데 줄눈에 때가 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티가 안 난다. 완벽하게 깔끔한 것은 이미 포기했다. 그 상태로 청소를 마무리하고 모든 청소도구는 욕실 벽 고리에 걸어 둔다.
욕실 청소가 끝나면 나머지 공간은 청소 티슈로 닦기만 한다.
소형 아파트라 청소기 따로, 걸레질 따로 하는 게 오히려 더 번거롭다. 청소기나 걸레를 보관하기에도 지저분하고, 가뜩이나 작은 베란다가 더 좁아 져서 걸리적거린다. 그래서 내가 그냥 청소티슈로 먼지들을 모아 티슈와 함께 버린다. 티슈에 소독수가 묻어있어 걸레질한 효과도 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청소 티슈 열다섯 장 정도면 거실, 부엌, 방 3군데, 바닥이며 가구며 신발장까지 모두 닦을 수 있는 아담한 우리집이 너무 좋다. 청소할 때마다 드는 생각, '집 줄여 이사오길 참 잘 했다.'
집 전체 청소에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이전에 살던 30평대 아파트에서는 그 두세 배가 걸렸다(욕실도 두개이므로). 그게 너무 버거워서 가사도우미님의 도움을 주 1회 받았다. 그런데 집을 줄여 오니 그럴 필요가 없다. 가사도우미 비용 줄이고, 관리비도 월 10만원은 아낀다. 게다가 이전 30평대 아파트는 월세 세팅을 해놓고 지금 집에 전세로 들어온 것이라 월세 수익까지 얻고 있다.
밥하는 것도 참으로 번거롭다. 친정집이나 시댁이나, 우리 어머님들은 밑반찬도 국도 찌개도 뚝딱 내어 주시는 게 참 신기하다. 나는 요리를 싫어하기도 하거니와 잘 못 해서, 나물 몇 개와 국 하나만 끓여도 1시간이 후딱 가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이야기하자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매번 끼니마다 하면 오래걸리지. 그냥 시간이 남고 심심할 때마다 밑반찬을 해놓고 조금씩 꺼내 먹는단다."
헉, 난 아무리 심심해도 절대 부엌에서 식재료를 꺼내 요리하지 않는다. 워킹맘인지라 평일엔 여유시간도 거의 없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맛있게 요리해 예쁘게 플레이팅하는 재미로 한다는데, 나는 그런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저 매 끼 의무감에 한다. 나 혼자 먹으면 채소랑 고기만 대충 소금에 볶아서 먹고 싶은데. 그러면 반의 반 시간도 안 걸릴텐데. 남편과 딸이 스멀스멀 원망스러워지다가 내가 왜 이딴 생각을 하는가 자책도 조금 한다.
평소 여유있을때 반찬을 해 놓기도 싫고, 그렇다고 매일 퇴근하자마자 한시간씩 반찬을 만들면 너무 우울할 것 같아 주기적으로 반찬을 사 먹는다. 평일 아침식사는 간편하게 핑거푸드(오리고기깻잎말이, 유부초밥, 주먹밥 등)이다. 평일 저녁에 국이나 찌개는 끓이지 않는다. 주문한 반찬들에 계란후라이를 얹거나 고기만 조금 볶으며 준비시간을 절반 정도로 단축시킨다. 평일에 퇴근하고 저녁밥을 하는 시간은.. 정말 하루 중 가장 짧았으면 하는 시간이다. 국이나 찌개는... 여유 있는 주말 아침에 만들기로.
주말에 시간이 많다고 해도 매 끼 밥을 한다는 건 나에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면 주말이 너무 우울해 맛있는 급식이 나오는 학교로 출근하고 싶어질 것 같다. 그래서 주말에도 아침밥 한 끼만 그럴듯하게 차린다. 점심식사는 빵과 과일, 커피이다(우리 딸은 두유). 딸래미도 '특별한 점심'이라며 좋아한다. 평일에 엄만 자기가 만든 반찬도 아니면서 "기껏 차려줬으면 골고루 좀 먹어 깨작대지 말고"라고 폭풍 잔소리를 하는데, 빵과 우유를 먹을 땐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니까.
처음 결혼했을 때부터 집안일이 너무 귀찮고 번거롭게 느껴졌다. 그래도 살다 보면.. 한 몇 년 지나면 나도 제법 집안일에 익숙해지고 속도도 붙고 잘 하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역시 난 아니었다. 한 달 전 결혼 10주년 기념 프로필사진도 찍고, 딸래미는 벌써 초등학생이 된, 30대 후반 아줌마가 됐는데도 집안일이 어렵고 번거롭고 느리고 서툴고.. 무엇보다도 너무 싫다!!!!!
앞으로 집안일을 덜 번거로워하며 능숙하게 하고 싶다....가 아니라, 지금보다도 더 간소화해서 집안일 시간을 단축시키는 노하우들을 열심히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