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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하마 Oct 14. 2024

내향인 엄마의 이기적인 생각-5

내향인 엄마의 이기적인 운동 취향

  쇄골과 배가 전부 드러나는 흰 브라탑에 네이비색 5부 레깅스를 입고 거울을 본다. 타이트한 핏이니 몸매 라인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제법 팔도 복근도 단단해지고, 군살이 튀어나온 부분도 별로 없다. 쭉쭉빵빵 늘씬한 몸짱은 아니지만 제법 탄탄하고 건강해보이는 내 몸을 보니 뿌듯하다. 육아휴직을 했던 작년 이렇게 입고 바디프로필도 찍었는데 다행히 그 때랑 몸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마흔을 바라보는 아줌마 치고는... 나 쫌...괜찮은데??


  아무리 내가 근자감을 갖고 해맑게 우쭐해한다고 해도 이 패션 그대로 헬스장에 갈 만큼 대담하지는 못하다. 헬스장에 가려면 이 위에 티셔츠 하나라도 입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브라탑에 레깅스만 입은 채로 옷방에서 나왔다. 나는.. 헬스장에 가지 않고 집에서 운동하는 '홈트(홈 웨이트 트레이닝)족'이기 때문이다. 집에서 한껏 폼을 잡으며 그럴듯하게 운동복을 입고서는 혼자서, 매트를 깔고 덤벨을 들고 힙밴드를 차고 50분간 고강도 근력운동을 한다. 주 3회, 50분씩.


   나의 운동 여정은 20대 초반부터 시작됐다. 아무것도 모르고 헬스장에서 해맑게 런닝머신만 타던 것이 시작이었다. 그곳에서 영업당해 얼떨결에 퍼스널 트레이닝(PT)을 받았다. PT를 계기로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강박'이 생겨 쉬지 않고 꾸준히 운동을 해왔다. 이후 수영 강습도 받고, 그룹 필라테스, 요가, 크로스핏, 댄스, 스쿼시, 플라잉요가 등 종목만 바꿔서 칼로리를 태웠다. 건강한 몸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로지 보여지는 몸매를 예쁘게 하기 위해서였다. 소위 '다이어트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운동을 꾸준히 하던 습관 덕분에 임신중에도 임산부요가를 꾸준히 다녔다. 그 덕분인지 진통 5시간만에 비교적 순산할 수 있었다. 임산부요가와 꾸준한 걷기운동 덕분인지 임신기간동안 체중변화가 크지 않았다. 만삭때까지 10kg정도밖에 찌지 않았으니까. 


  보여지는 몸매가 정말 증요했던 만큼 출산 후 빠르게 임신 전 몸매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내 몸무게는 출산 후 아기 무게만큼도 빠지지 않았다. 산후 두 달 만에 다이어트의 의지를 불태우며 호기롭게 걷기운동을 시작했다. 남편이 퇴근하면 한 시간 아이를 맡기고 아파트 주변을 산책했다. 꾸준히 꽤 강도 높은 운동을 해 왔는데 이까짓 걷기쯤이야...하고 자만한 결과! 출산 두달만에 한 걷기는 아무리 살살 걸었다 해도 무릎을 몇 배 더 시리게 만들었다. 며칠 못 가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몸매는 망가지고, 온 몸이 아파서 운동도 못 하고, 그 와중에 젖을 먹이느라 허기가 지니 우는 아기를 안고 정신없이 먹느라 매 끼 고봉밥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있고.. 이러다 평생 이 배가 꺼지지 않으면 어쩌지 덜컥 겁이 났다.


  그 후 몇 개월 더 지나 우리 딸이 기어다니게 될 무렵부터 마디마디 통증은 많이 줄었다. 몸무게도 조금은 빠졌지만 내 마음에 들진 않았다. 본격적으로 운동을 다니기 시작했다. 남편이 퇴근해 온 저녁시간에 순식간에 다녀와야 하므로 멀리서 배워야 하는 운동, 오래 걸리는 운동은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선택지 없이 집 바로 앞 피트니스센터에서 그룹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그룹 필라테스는 함께 배우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강사도 너무 자주 바뀌어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같은 피트니스센터에서 하는, 그보다 인원수가 적고 강사가 어느 정도 고정돼 있는 플라잉요가 수업을 듣게 됐다. 필라테스보다 훨씬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원몽키 자세도 버겁더니 꾸준히 하자 투몽키를 기본으로 하는 응용 동작들을 전부 할 수 있었다. 해먹으로 온 몸을 감았다 풀며 스트레스도 풀렸다.


  하지만 필라테스를 하든, 플라잉요가를 하든, 그걸 하기 위해 피트니스센터를 다니면 운동 이외에도 신경쓸 일이 많았다. 갓 퇴근한 남편이나 친정부모님께 아기를 부탁해야 했고, 그마저도 딸아이가 나에게서 유난히도 안 떨어지려 하면 갈 수가 없었다. 아기가 너무나 보채서 피트니스센터에 가지 못한 날은 아기도 밉고 남편도 미웠다. 아무도 잘못한 사람은 없는데 다 나만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분노가 치밀었다. 


  피트니스센터가 집 바로 앞에 있어도 강습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10분 전쯤에 도착해서 몸을 풀고 있어야 했다. 운동에 소요되는 시간이 50분 정도라면 피트니스센터까지 이동시간, 대기시간, 옷을 갈아입거나 씻는 시간까지 포함해 1시간 30분정도의 여유 시간을 잡아야 했다. 아이가 잠든 이후에 나갈 수 있으면 아기도 보채지 않을 테고 누구한테 맡긴다 해도 맘 편히 다녀올텐데, 저녁 강습시간은 대부분 애매하게 7시에서 8시 사이였다. 출산하기 전에는 내가 의지만 있으면 자유롭게 다니고 배울 수 있었는데. 아기를 돌보면서는 최소한의 운동조차 안간힘을 써야 했다. 


  게다가 필라테스나 플라잉요가는 수강생이 대부분 4-50대 아주머니들이었다. 비슷한 연령대의 그들끼리 이미 너무나 친해져 언니동생 하는 사이들이 돼 있었다. 수업시간 10분 전에 가면 나는 조용히 몸을 풀며 멍하니 쉬고 싶은데 왁자지껄하게 수다를 떠는 분위기에 운동 전부터 에너지가 소진되기 일쑤였다. 나에게도 말을 걸면 미소를 지으며 묻는 말에 친절하게 대답하고, 그 대답을 골라내느라 진이 빠졌다. 다들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나에게 이쁜 애기엄마라고 부르며 호의적으로 대해주셨다. 하지만 나는 그 호의가.. 감사하긴 한데 너무 버거웠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편하게 혼자서 운동하고 싶었다. 그게 가능한 것은 홈트레이닝뿐이었다. 처음에는 그닥 내키지 않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유튜브를 켜니 수많은 운동 채널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무작정 4-50분짜리 전신운동 영상들을 다 따라했다. JJ, 빅시스, 힙으뜸, 메이크단단, 강하나스트레칭, 핏블리, 다노 등등 유명 운동채널들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영상을 따라했다. 모두 구독자도 많고 홈트족들로부터 검증된 훌륭한 채널들이었다. 거의 5년 정도 여러 채널을 방황하다가 최근 2년 전부터 한 채널에 정착했다. '핑크힙 응비'라는 채널이었다.


  핑크힙응비 채널은 주로 덤벨, 밴드를 사용한 고강도 웨이트트레이닝 채널이다. 나에게는 타바타나 노반복 유산소운동보다는 횟수, 세트를 반복해 근육을 강화하는 웨이트트레이닝이 잘 맞았다. 그 전에는 운동을 하면 땀이 많이 나고 숨이 차고 너무 피곤했다. 그리고 운동 후에는 너무 허기지고 식욕이 늘기 일쑤였다. 

  고강도 웨이트트레이닝은 숨이 차거나 땀이 비오듯 흐르지는 않았다. 이마가 살짝 젖는 정도로만 땀이 나고 숨이 턱까지 차기보다는 심장 박동만 약간 빨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운동 후 피곤하기보다 오히려 힘이 샘솟았다. 운동 직후에는 오히려 상쾌했으나, 다음 날 뻐근한 근육통이 있었다. 그런 근육통을 몇 달 꾸준히 느끼자 몸이 단단해졌다. 눈에 띄게 가늘어지진 않았지만 덜렁거리던 살들이 정리됐다고나 할까. 웨이트트레이닝 후에는 저칼로리 다이어트식단이 아닌 단백질 위주의 양질의 식사가 필요했다. 그래서 매 끼 고기, 야채, 밥을 충분히 골고루 먹었다. 그러자 폭발하던 식욕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탄수화물 중독인가 싶을 정도로 매 순간 쿠키나 빵이 생각났는데, 웨이트트레이닝과 양질의 식사를 시작하고 몇 개월만에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오히려 쿠키나 빵을 보면 너무 달 것 같다는 생각에 거부감이 들었다. 


  지금은 주 3회 50분씩, 핑크힙응비채널의 고강도 전신 웨이트트레이닝으로 홈트레이닝을 한다. 운동복을 내 취향으로 골라 입고 혼자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며 운동한다. 정해진 시간 없이 딸아이가 혼자 책을 읽거나 잠이 든 시간에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어서 신경쓸 일도 별로 없다. 나 혼자 운동하니 오롯이 내 몸의 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다. 어느 근육을 목표로 어떻게 힘을 줘야 하는지 생각하며 초집중하다보면 50분이 금방 지나간다. 오히려 운동 전에는 천근만근같던 몸이 운동 후 활력이 샘솟는다. 평일에는 자기 전에 운동을 하기 때문에 운동 후 프로틴쉐이크를 먹고 잠든다. 주말에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운동을 하기 때문에 운동 후 고기반찬을 푸짐하게 얹어 늦은 아침식사를 한다. 이제 초등학생이라 엄마가 자기를 안 돌봐줘도 보채지 않는 딸은, 운동하는 내 옆에서 낙서를 하거나 조악한 무언가를 만들며 빈둥거린다. 엄마가 아침운동을 시작한 덕에 아직 아침밥을 먹지 못했지만... 그래도 참고 잘 기다려준다. 고맙고 조금 미안하지만... 그래도 엄만 지금 운동해야겠다. 엄마가 건강해고 행복해야 너도 더 행복할 것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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