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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하마 Oct 13. 2024

내향인 엄마의 이기적인 생각-4

이기적인 내향인 엄마가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방법

"만나서 반가워요~ 만나서 반가워요~ 트니트니!"

 영유아 체육활동 문화센터의 대표 강좌. 대부분의 아이들이 신나게 움직이며 놀고 온다는 트니트니 수업시간이었다. 우리 딸 빼고 다른 아이들 대부분 즐겁게 춤추고 레일을 따라 뛰어다녔다. 캥거루 가면을 쓴 덩치 큰 트니트니 선생님이 우렁차게 함성을 지르자 다른 아이들은 일어나 박수도 치고 만세도 했다. 하지만 잔뜩 겁에 질려 있던 우리 딸은 와앙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엄마 품에 매달려 수업이 끝날 때까지 떨어질 줄을 몰랐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을 사진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나에게 매달린 딸을 안고 내가 대신 마라카스를 흔들고 뛰느라 더 정신이 없었다.


  '몸을 활발히 움직이는 신체활동을 많이 해야 쑥쑥 큰다'

  '다양한 사람, 다양한 환경을 접해야 두뇌 발달이 촉진된다'

아기발달백과에 수십 번도 더 나오는 메시지들이다. 밑줄과 별표를 쳐가면서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활발한 신체활동을 유도하기 위해 트니트니수업같은 문화센터 수업에 참여했다. 놀이터에 나가 그네나 미끄럼틀을 타도록 유도해보았다. 집에 유아용 트렘폴린과 미끄럼틀도 들여놓았다. 하지만 워낙 몸집도 작고 신체발달도 느렸던 우리 딸은 겁까지 참 많았다. 문화센터나 놀이터에서 조금만 큰 소리가 나도, 낯선 아이들이 보여도 지레 겁먹고 나에게 착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다른 아기엄마들은 정신 없이 뛰노는 아이들을 쫓아다니느라 힘든 반면 나는 내게 매달려 있는 딸을 떼어내고 어르고 달래느라 진이 다 빠졌다. 

  우리 딸은 집에 있는 트렘폴린과 미끄럼틀도 처음 구입했을때만 조금 타다가, 며칠 지나자 뛰어놀기는커녕 그 위에 스티커를 붙이며 놀거나 인형 집을 만들어주곤 했다. 


  다양한 사람, 환경을 접하게 하려고 또래 아기엄마들과 주기적으로 만났다. 또래 엄마들과 만나면 함께 수다를 떨며 아이들을 돌보기 때문에 하루가 금방 간다고, 아이와 보내는 하루가 조금 덜 지칠 것이라고 선배 엄마들에게 조언을 듣기도 했다. 그래서 전 직장에서 친해진 아기엄마 선생님과 요일을 정해 서로의 집에 매 주 오가며 아이들을 만나게 해준 적도 있다. 문화센터에서 만난 엄마들, 산후조리원에서 친해진 엄마들과도 아기들을 데리고 자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우리 딸은 나랑 둘이 있을 땐 평온하게 잘 놀다가도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곳에서 만나면 내게 착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자기들끼리 잘 노는 아기들을 눈으로만 보며 서로 수다를 떠는 엄마들 사이에서, 나만 우리 딸을 안고 어르고 달래가며 전전긍긍했다. 그 와중에 다른 엄마들이 묻는 말에도 적절히 대답하려고 억지미소를 띄며 안간힘을 썼다. 가뜩이나 부족한 에너지가 모두 분산이 되니 미칠 것 같았다. 함께 있는 엄마들은 "아이가 아직 낯을 많이 가리나보다"하며 안됐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너무나 지쳤다. 에너지가 바닥난 채로 딸아이를 목욕시키다가 딸아이가 조금만 칭얼대도 확 짜증이 나곤 했다.  


  밖에서 잔뜩 겁에 질려 내게 안겨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던 딸은 집에 돌아오면 마음놓고 놀았다. 주로 인형이나 뽀로로 콩순이 피규어들을 가지고 하는 역할놀이를 좋아했다. 또래 아이들이랑 함께있을 때 할 것이지 나랑 둘이 있을 때만 하려고 했다. 놀이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았든데 한 시간도 안 된 것처럼 느껴졌다. 함께 그림을 그려도, 블록놀이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드라마에서 보면 엄마가, 아이를 사랑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바라보면서 행복한 미소를 띄며 놀아주던데. 나에게는 딸아이와 둘이 노는 시간이 별로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사랑이 뚝뚝 떨어지기는커녕 졸음이 뚝뚝 떨어져 눈꺼풀이 감기고 하품이 쩌억쩌억 나왔다. 세상에저 제일 지루한 놀이가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하다가, 나 정말 엄마 맞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혼자 놀아주기는 너무 지루하고 힘들고, 데리고 나가 활동적으로 놀아주려니 안 따라주고. 아기발달백과처럼 잘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자존감이 뚝뚝 떨어졌다.


  그래도, 그림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가장 견딜만 했다.

책을 워낙 좋아해서 그런가, 나는 그림책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쉬웠다. 역할놀이 할 때처럼 뭐라고 반응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억지미소를 짓지 않아도 됐다. 그저 읽기만 하면 됐다. 백희나 작가님, 앤서니 브라운 작가님의 작품들은 그 그림만 봐도 미소가 나올 정도로 독특하고 흥미로웠다. 게다가 나름대로 실감나게 연기하며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나의 맛깔나는(?) 연기를 들으며 우리 딸도 즐거워했다. 그 앙증맞은 몸을 포근하게 안아주며 그림책을 읽을 때, 나름 엄마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아서 하루동안의 자괴감이 조금 사라지기도 했다. 


  '놀아줘야 하는' 시간은 지난했지만 서서히 줄었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까지 또래 친구들 근처에도 가지 않더니 유치원에 입학하며 단짝친구가 한 명 생겼다. 꼭 우리 딸처럼 수줍음도 겁도 많고 조용한, 비슷한 성향의 친구였다. 아이들끼리 먼저 친해지자 엄마까지 함께 만날 필요가 없어졌다(그 엄마도 나처럼 에너지가 적고 내향적인 사람이었다. 아이끼리 비슷하니 신기하게 엄마끼리도 비슷하다). 하루는 우리 집에서, 하루는 단짝친구의 집에서 둘이 하염없이 놀았다. 편안한 친구와 놀다 보니 엄마를 찾지도 않았다. 드디어 해방이다!


  또래 아이들을 피해 나한테 달라붙어있던 딸을 보며, 영영 친구를 못 사귀면 어떻게하나 걱정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괜한 걱정이었다. 아이들마다 사회성이 발달하고 친구를 사귀는 시기와 방법이 다를 뿐이었다. 


  초등학생이 된 딸은 지금도 한두 명의 단짝친구와 논다. '인싸'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그 단짝친구 한두 명 제외하고, 친하지 않은 친구들과는 지금 2학기 중반이 넘어가는데도 말 한마디 안 해봤다고 한다. 그래도 우리 딸은 학교생활이 너무 재밌단다. 나도 공감된다. 사실 나도 학창시절 내내 반에서 한두 명의 친구들과만 조용히 지냈지만, 학교생활이 대체로 행복했기 때문이다.


  이제 스스로 자기 일을 척척 하는 야무진 초등학생이 됐다. 학교 마치고 댄스 방과후, 피아노와 태권도학원, 미술활동을 하느라 하루가 알차게 흘러간다. 집에 와서도 혼자 뚝닥뚝닥 뭔가를 만들거나 노래를 부르며 피아노를 친다. 역할놀이를 가끔 해도 혼자 여러 역할로 빙의할 뿐 나한테 함께하자고 조르지 않는다. 이제 학교 숙제를 봐 주거나, 함께 그날 배운 교과서를 살펴보는 것으로 함께하는 시간을 채운다. 나에게는 아기 때처럼 놀아주는 것보다 이렇게 숙제나 공부를 봐 주는 것이 백 배는 더 수월하다(우리 남편은 반대다. 같이 공놀이하고 뛰어다니는게 훨씬 낫지 함께 공부를 하다니 세상 재미없을거라고 한다. 역시 사람마다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다르다.). 모든 하루 일과가 끝나면, 자기 전에 함께 책을 읽는다. 이제 그림책을 읽어주지 않아도 딸은 혼자 잘 읽는다. 오히려 엄마가 읽어주면 답답해한다. 땡큐다! 나도 옆에서 내 책을 함께 읽는다.


휴일에는 도서관에 함께 가서 각자의 책을 빌린다. 그 책을 가지고 도서관 카페에서 디저트를 나눠먹으며 각자의 책을 읽는다. 출산 전 막연하게 로망으로 삼던 육아의 한 장면이었다. 이 장면을 실현하는 데 출산하고도 8년이 넘게 걸릴 줄이야. 나는 책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구절을 다이어리에 적는 습관이 있는데 우리 딸도 이런 나를 따라한다. 아기 때 쫑알쫑알 인형으로 빙의해 놀던 모습보다, 초등학생이 돼서 날 따라 책읽고 수첩에 끄적이는 모습이 백 배는 더 사랑스럽다. 통념과는 다르게(보통 자녀가 아기일 때 너무 귀엽고 예뻤다고들 한다) 나는 딸래미가 아기일 때 모습들보다, 지금 모습들이 훨씬, 훠~~얼씬 사랑스럽다. 솔직히 말하면 나를 좀 더 편하게 해주기 때문인 것 같다. 나같이 좀 특이한 엄마는 이런 마음이다.


  내일은 일요일이다.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빈둥대다가 도서관 카페에서 빵으로 늦은 점심을 떼우기로 했다. 조용히 책도 읽고 점심밥차리기도 슬쩍 건너뛸 생각에 설렌다. 우리 딸도 엄마의 골고루 먹으라는 잔소리를 들으며 밥을 꾸역꾸역 먹는 대신 빵과 우유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생각에 신난다. 초등학생이 된 지금에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버겁지 않고 조금은 행복해졌다.


... 그래도 ... 아무리 그래도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건 안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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