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 엄마의 이기적인 생각-2
내향인 엄마의 이기적인 출산 후기
"무통 놔주세요! 더 늦기 전에 빨리요!! 무조건 놔달라니까요!" 라고 애원할 때 난 이미 제 정신이 아니었다.
2016년 3월의 어느 날이었다.
출산 전 나는 무통주사 없이 출산해보겠다고 호기롭게 다짐했다. 무통주사도 화학약품인데, 그런것은 아기에게 좋을 리 없으니 최대한 덜어내야하지 않겠어?이렇게 아무 것도 모르면서 해맑게 건방진 생각을 해댔다.
그 건방짐은 진통이 시작되고 1시간도 채 안돼서 산산조각이 나 버릴 정도로 하찮은 것이었다. 지금 자궁 문이 3cm밖에 안 열렸다는데 벌써 이렇게 아프다고? 이걸 몇 시간 동안 점점 더 심한 강도로 겪어야 한다고?.. 까지 생각이 미치자 정신줄을 놓고 무통주사를 놔 달라고 애원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무통천국도 찰나에 불과했다. 자궁 문이 거의 다 열리고 아기 머리가 의사선생님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무통주사의 효과도 아까 산산조각난 건방짐처럼 사라졌다. 생전 처음 느껴본 아픔에 울고 불고 몸부림쳤다. 그런데 분만실에 있는 사람들.. 의사, 간호사선생님들, 심지어 남편까지! 내가 짐승처럼 울부짖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평온해보이는 것이었다. 말도 안 돼. 난 이렇게 이사람들 앞에서 밑바닥까지 보이고 있는데 당신들은 이성의 끈을 놓지도 않고 각자 자기 일에 충실하다니! 갑자기 분만실에서 보이는 얼굴들을 모두 발로 뻥 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발로 차버려야지!!근데 발에는 힘이 없어서 움직여지지 않아! 그리고 너무 아파! 어떻게 이렇게 아플 수 있지?! 이걸 어떻게 계속 하지?! 수술!! 빨리 수술해서 아기 꺼내달라고 말해야겠다!! 근데 말도 못하겠어!!!!!라는 생각에 내가 정말로 미쳐버렸나 하다가.....
그 고통이 쑤욱! 내 몸을 빠져나가는 느낌과 동시에 "으앙!"하는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우리 딸래미와 처음 만났다.
대중매체에서 그리는 출산의 장면은 감동의 도가니일 뿐이다. 감동의 눈물을 펑펑 흘리는 엄마와 아빠. 그들이 쭈글쭈글한 신생아를 보며 너무 예쁘다 좋아하는 진부한 장면. 나도 출산하면 저런 감동의 눈물이 흐를 것이고, 이 쭈글이를 첫 눈에 사랑하게 될 것이고, 엄마가 되자마자 찐한 모성애가 생겨 아기를 돌보는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달게 해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그리고 우리 친정엄마도, 시어머니도 신혼 때 나에게 그렇게 이야기하며 은근히 임신을 권했던 것 같은데. "여자는 아기를 낳아봐야 사랑이 뭔지 안다. 모성애는 엄마의 본능이야. 아기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진짜 낳는 순간 알게 된다."
하지만 난 딸아이를 낳자마자 감동의 눈물은 커녕.. "드디어 낳았다"하는 생각을 짧게 하고 기절하듯 잠에 취했다. 도무지 조금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 나를 깨우다가 포기한 간호사는 나를 휠체어에 태워 재우며 입원실로 보냈다. 우리 남편 또한 마찬가지였다. 감동한 게 아니라 아니라 멍한 표정이었다. 게다가 내가 입원실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진짜 니가 아기 낳은것 맞지? 실감이 안 나"라고 이야기하는 바람에 나한테 맞을 뻔 했다. 내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아파하는 동안 평온한 제정신으로 기다라기만 했으니 헛소리를 해대는구나 하면서. 그리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잠에서 깨 보니 우리 부부는 뉴질랜드에 와 있었다. 우리 말고 아무도 없이 고요하고 광활한 대자연 속이었다. 남반구의 이국적인 자연 경관에 흠뻑 취해 여유를 만끽하던 찰나, 갑자기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소리질렀다. "맞다!!우리 이제 아기 낳았는데 안 데려왔어!!" 그러자 남편은 그 얄미운 평온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냐, 우리 같이 있어."
"어디? 어디???"
엄마가 된 첫 날 내가 꾼 꿈이었다. 대체 나란 엄마는, 엄마가 된 것도 아직 실감을 못 하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살짝 들었지만... 그 짧은 자괴감은 생후 하루도 채 안 된 딸래미한테 초유를 먹이느라 낑낑대면서 다 잊고 말았다. 대체 어떤 자세로 먹여야 팔이 안 아픈거야. 그리고 대체 얼마만큼 언제까지 먹여야 하는거야. 대 혼란에 정신이 몽롱한 채로 5일이 빠르게 지났다. 퇴원할 때까지도.. 아니 산후조리원에서 모유수유를 배워보겠다고 낑낑댈때까지도 나는 내가 진짜 모성애가 생긴 것이 맞는지 항상 의아했다. 엄마로서 의무감에 이 모든 걸 해내고 있긴 한데, 내가 이 아기를 정말 사랑하게 됐는지. 사랑이 아니라 의무감에 해 낸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야. 어른들 말이랑 다르잖아. 난 왜 이렇지.
지나고 보니 모성애의 모양새도 전부 다른 것이었다. 첫 눈에 아기가 너무 사랑스러운 엄마도 물론 있지만 모든 엄마가 그렇다는 건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다. 학생들도 모범생이 있고 불량학생이 있으며, 선생님도 무서운 선생님도 있고 자상한 선생님도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유독 엄마의 모성애는 같은 모습을 할 거라고 기대한다.
나는 첫 눈이 아니라 딸래미를 내 손으로 보살피면서 모성애가 생겨나는 엄마였다. 누군가는 아기가 너무 예뻐서 쑥 자라나는 모습에 아쉽고, 그래서 자꾸만 둘째 아기, 셋째 아기를 낳는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우리 딸이 아기일 때보다 초등학생인 지금 훨씬 더 사랑스럽다. 이상적이고 성스러운 모성애는 아닐지언정, 나의 모성애도 시간이 지나고 엄마 경력이 쌓일수록 꾸준히 커지는 중이다.
(우리 딸, 크면 클수록 예쁘기에 둘째 아기 가질 생각은 절대로 안 한다는 것도 안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