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에 나오는 아기 이름들은 태명이다
"뭐야 몽키엄마! 아직 한 명 안 낳은 거 아니야?!"
.. 그런 소리를 들을 만도 했다.
출산만 하면 푹 꺼지는 줄 알았던 배가 무려 절반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산후조리원 옆방이라 친해진 삼월이 엄마의 우스갯소리에 방에 들어와 체중계 위에 올랐다. 헉! 만삭 때 몸무게 마이너스 2.8kg!! 우리 딸이 3.1kg로 태어났는데, 만삭까지 총 10kg 증량했는데 아기 몸무게만큼도 줄어들지 않았다니.
사실 난 출산 후 금방 원래대로 되돌아올거란 근자감이 있었다. 만삭 때까지 다른 산모들에 비해 몸무게 변화가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산 전 몸무게 변화가 적었던 만큼 후에도 그렇게나 적을 줄 몰랐다. 20대 초반부터 다이어트와 몸매에 민감했던 나는 덜컥 겁이 났다.
맘대로 되지 않은 것은 몸매 뿐만이 아니었다. 임신출산대백과를 착실히 공부한 대로 난 1년 이상 완모하는 엄마가 되기로 다짐했었다. 아기를 낳기만 하면 누구나 모유가 펑펑 나오는줄 알았다. 하지만 뱃고래가 작은 우리 딸은 수유텀이 너무 잦았다. 쥐꼬리만큼 젖을 빨고 금방 돌아서서 울기 일쑤였다. 그 모든 수유텀을 다 맞추기 힘들어 조금씩 분유를 보충했더니 나의 모유량은 그에 맞게 적어지고 완모의 길은 점점 멀어졌다. 산후조리원 간호사님은 "모유량을 반드시 늘려야 한다."라며 딸래미가 분유 보충을 하는 동안 나는 억지로라도 유축을 하라고 했다. 그냥 모유 조금씩 먹고 분유를 주로 먹으면 안 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산후조리원에서 모유란 가장 신성시되는 것이었고 모든 산모의 산후조리원 퇴소 전 최종 목표는 '완모(완전 모유수유)'였다. 소심한 성격에 내 몸이 조금 편하고자 완고한 산후조리원 분위기를 거스르기 어려웠다.
그 속에서 다른 산모들에 비해 내 모유량이 적으니 나의 큰 잘못인것마냥 자책감이 들곤 했다. 게다가 출생일이 거의 비슷한 또래들과 비교해 너무 작은 우리 딸도 그 자책감을 부채질했다. 육아 효능감은 점점 떨어지고 산후조리를 편안하게 하러 들어간 산후조리원에서 더 많이 스트레스를 받았다. 딸래미가 그날 먹는 모유량과 컨디션에 따라 나의 기분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너무 지쳐 있는데 혼자 편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은 적었다. 내 방에만 있으려니 너무 갑갑하고, 방 가운데 자리잡은 유축기는 심리적으로 날 압박했다. 중앙 거실로 나오면 산후조리원 동기들이 오늘의 모유량, 아기 몸무게, 앞으로의 육아 계획을 주제로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산후조리원 동기 모임'이라는 것이 참 도움도 의지도 많이 돼서 필수적이라고 당시 어디선가 들어서 억지로 미소를 띄며 대화에 참여하다 보면 가뜩이나 바닥인 에너지는 마이너스까지 내려가곤 했다.
산후조리원을 나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산후도우미 이모님은 2주동안 정말 성심성의껏 챙겨주고 도와주셨다. 주어진 역할을 프로답게 완벽하게 해내는 분이셨다. 하지만 이모님은 내가 누워서 자고 있지 않으면 끊임없이 말을 거셨다. 본인 살아온 인생 이야기, 아기를 키울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심지어 본인의 아들 자랑까지... 혹시 산후도우미 직무 중에 산모와 말동무 해주기도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수유하고 딸래미가 자면 나도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차나 한 잔 마시고 싶은데. 멍하니 창밖을 보거나 책을 읽고 싶은데. 하지만 이모님의 인생 이야기를 매몰차게 끊지 못했다. 들으며 적절하게 공감하는 리액션과 대답을 골라내느라 또 에너지를 소진했다.
산부인과에서 5일, 산후조리원에서 2주, 산후도우미 이모님의 케어 2주. 그렇게 출산 후 한 달이 넘었는데도 손목과 무릎이 여기저기 시큰거리고 아팠다. 오히려 출산 직후보다 훨씬 정도가 심해서 덜컥 겁이 났다. 사실 매일 수유하고 아기를 안고 있으니 그게 당연한 것이었는데. 그땐 내가 마치 평생 고치지 못할 산후풍이라도 맞이한 것 마냥 큰일인 줄 알았다. 작년 이맘때 나는 날씬하고 건강했는데, 임신 출산을 겪고 한 순간에 몸매도 건강도 망가졌구나 하는 절망감이 매일 엄습하여 울었다. 엄마라면 이런 것들을 달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난 결코 그럴 수 없는데. 너무나 안타깝고 우울하기만 한데.
보기 싫게 찢어진 색종이같던 그 시간도 더뎠지만 서서히 지나갔다. 젖몸살로 산통과 버금가는 통증을 경험하며 완모의 꿈은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편한 마음으로 분유를 먹이면서 여건이 될 때 모유를 먹였다. 딸아이는 개월별 영유아검진때마다 몸무게가 하위 10%를 넘기지 못했지만, 소아과 의사가 툭 던지는 "3%에서 98%까지 정상입니다."라는 무덤덤한 말로 안심했다. 드라이아이스를 얹은 듯 시큰거리던 무릎과 손목도 아주 조금씩 괜찮아졌다. 출산 후에도 한동안 임부복을 입어야 할 만큼 부풀어있던 배도 차츰 가라앉아 임신 전 몸무게로 돌아왔다. 집 근처 룸카페에서 소규모 돌잔치를 할 무렵이었다.
첫 출산이란 게 기대감도 크지만 걱정도 커서 주변 고만고만한 말들에 귀가 많이도 팔랑거렸다. 그래서 '출산 전 꼭 장만해둬야 할 물건 리스트'같은 것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어떤 리스트에는 유축기가 필수라는데 어떤 곳에서는 낭비라 하고, 어떤 산모는 모유저장팩은 꼭 여러 개 쟁여놓으라고 하고, 유모차는 꼭 디럭스여야 한다는데 어떤 산모는 아니라고 하고... 우왕좌왕 혼란스러워 이것저것 구비해 놨는데 미리 구비한 것 중 상당수가 '나에게는' 불필요했다. 다른 임산부들 하는 것처럼 출산 후 2주 산후조리원, 2주 산후도우미는 필수 코스인 줄 알았고 안 하면 산후조리에 대실패해 평생 산후풍에 시달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극히 내향적인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너무 힘들었다. 아기가 자는 동안에도 누군가와 계속 마주하고 그에 맞게 반응하느라 진이 빠졌다. 혼자 푹 쉴수 없는 상황은 내향적인 나를 극한으로 몰아갔다. 매일같이 아기가 울면 난 더 크게 울고 싶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내가 직접 경험하며 나만의 방식으로 산후조리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산후조리원이나 산후도우미 케어 대신 혼자 집에서 아기를 돌봤다면, 잘 몰라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아기가 잘 땐 나도 혼자 쉬거나 같이 자며 에너지를 충전했더라면. 아기가 먹는 만큼 젖을 주고, 잘 안 먹으면 배불러할 때까지 분유를 먹이고, 그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무리해서 유축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 같다. 아기는 자기 먹을 만큼 알아서 잘 먹었을 텐데.
고만고만한 또래 엄마들의 서로 다른 의견들에 귀가 팔랑이는 대신 소아과, 산부인과 의사의 조언만 구했어도 충분했을 것 같다. 산후 육아용품들은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사면 되지 미리 쟁여놓을 필요도 없었다(요즘 웬만한 육아용품은 로켓배송으로 빠르게 구할 수 있다.). 몸이 예전같지 않아도,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산후풍괴담같은 것 생각하지 말고 잘 쉬고 잘 먹고 기다리면 알아서 회복될 것을. 거절 잘 못하는 성격에 제대로 '영업'당하여 그 비싼 산후조리원 마사지를 받으면서, 마사지사의 서비스형 멘트에 적절히 대꾸까지 하느라 정신적으로 진이 다 빠졌었는데. 과연 그게 나에게 도움이 얼마나 됐을지.
모든 사람들이 제각각이니 당연히 갓 태어난 아기들도 제각각이다. 한참을 지나고 보니 알게 됐다. 아기와 엄마의 상황에 맞게, 서툴더라도 나름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함께 성장하는 것이 길게 보았을 때 가장 행복할 걸. 뭐 그리 처음부터 잘해내려고, 다 갖추고 시작하려고, 정석대로 하려고 아등바등하며 스트레스를 스스로 받았는지 그때의 내가 안쓰럽다. 앞으로는 주변 육아 모습에 흔들리지 않고 나와 우리 딸이 가장 행복하게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육아를 하고 싶다. 일단 내가 행복해야 우리 딸도 행복할테니 그냥 내 몸과 마음이 좀 편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