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나를 보고 울화가 치밀면 이렇게 말한다.
"착한 줄 알고 결혼했는데..."
그렇다. 한때 나는 착한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착한 척하는 사람이었다. 누가 부탁하면 거절을 못 하고, 누가 불합리한 말을 해도 “그럴 수도 있죠” 하고 웃으며 넘겼다. 속은 부글부글 끓는데도 “괜찮아요”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나를 착하다고 했다. 칭찬 같았다. 그러나 점차 그 말이 불편해지고 속박처럼 느껴졌다.
‘왜 나는 자꾸 아닌 걸 알면서도 고개를 끄덕이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 불편한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진심을 말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꽤나 강렬했다. 직장 생활 중, 일이 꼬일 뻔한 대형사고가 터졌다.
그날 나는, 다음 날 아침까지 제출해야 할 긴급 자료 때문에 야근 중이었다. 퇴근 직전에 떨어진 업무 지시였다. 분주히 일을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상사였다. 회사 근처에서 술 마시는 중이라며, “일 끝났으면 들렀다 가라”고 했다.
'들렀다 가라고...? 아침까지 필요하다며?'
그래도 표현할 수 없었다. 정리가 덜 끝났다는 이유로 정중히 거절했다. 그는 이미 술이 오른 듯한 목소리로 알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다시 전화벨이 또 울렸다. 당장 오라고 했다. 짜증이 치밀었다. 무리한 요구였지만, 잠깐 다녀오기로 했다. 1시간가량 머물다 사무실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팀장과 이사실로 갔다. 그는 찌푸린 표정으로 어젯밤 일을 얘기했다. 죄송합니다까지만 하고 넘어갔어야 했다. 그런데 결국 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사님, 저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중략)”라고.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팀장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재떨이가 날아들 줄 알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팀장은 남고, 나는 그만 나가라고 했다. 잠시 후 나온 팀장은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튼 그 일은 사내에 저놈은 '할 말하는 돌+아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역설적으로 이 사건은 이후 사회생활에서 나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란 이미지로 만들어 주었다.
진심은 직선이다. 곡선을 그리는 착한 말보다, 직진을 택했을 때 더 멀리 도달할 수 있다. 진심은 불편할 수 있다. 그 불편함 속에서 관계가 자라고, 내가 자란다.
나는 이제 착한 척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내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다. 솔직함이 내 인간관계를 더 깊고 건강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싫은데 괜찮은 척’을 했는가? 몇 번이나 ‘참아야 좋은 사람이지’라고 스스로를 억눌렀는가?
착한 사람이라는 가면을 벗어도 된다. 착하다는 말은 당신의 깊이를 말해주지 못한다. 때로는 거절하고, 때로는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그것이 진심을 나누는 첫걸음이다.
착한 사람이 되려 하지 말고, 진심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