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다녀온 어느 날,
습관처럼 멍하니 핸드폰을 넘기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눈에 익은 이름이 보였다.
같은 학교, 같은 과.
하지만 거의 말을 섞어본 적 없는 사이.
존댓말로 몇 마디 나눈 게 다였던 그 친구가
인스타그램에 짧은 글을 올려두고 있었다.
“글을 영상으로 만들어보고 싶은데,
같이 해보고 싶은 분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
그 글을 몇 초 동안 바라보다가,
진짜 아무 생각 없이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예전에 썼던 시나리오들이 좀 있는데,
혹시 보실래요?”
보내고 나니 괜히 민망해서
그냥 잊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뒤,
뜻밖의 답장이 도착했다.
“혹시 더 있나요?
대표님께 보여드렸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서요.”
대표님?
그 순간,
그 친구가 지금 콘텐츠 제작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 회사 대표님이
나에게 직접 말했다.
“작가로 함께해보지 않으실래요?”
예상하지 못한 제안이었다.
내가 썼던 그 낡은 시나리오 파일들.
어느 날은 울면서 썼고,
어느 날은 스스로를 위로하듯 적어내려간 문장들.
그 글들이
누군가의 눈에 닿았고,
마음에 닿았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한참 동안
핸드폰을 붙든 채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나는,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브런치 연재에도 도전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열어본 브런치 에디터.
커서가 깜빡이며
나를 기다리는 빈 화면.
첫 줄을 쓰기까지
몇 시간을 고민했고,
그렇게 한 편, 또 한 편
글이 쌓여갔다.
누구에게는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내게는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이
너무나도 기뻤다.
생계를 위한 일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는 일.
그냥, 그게 너무 좋았다.
한편,
펜션 운영도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내가 다시 운영체계를 정리하고,
남편과 둘이서 객실을 하나하나 리모델링하고,
사진을 찍고, 마케팅을 하고,
리뷰 응대를 정성껏 하자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들려온 말 한마디.
“펜션 딸이 마케팅 잘한다더라.”
그 소문이 조용히 퍼져나갔고,
곧 외주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마케팅.
그러다 자연스럽게
디자인까지 함께 요청받게 되었다.
나는 할 수 있는 걸
하나씩 꺼내 들었고,
그 일들이
다시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내 브랜드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제주에서의 삶,
펜션에서의 경험,
자연에서 얻은 아이디어들.
이젠 남의 일을 돕는 게 아니라,
내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정부지원사업도 찾아보고,
계획서를 쓰고,
하루하루를
조금 더 ‘의미 있는 방향’으로 쌓아갔다.
그리고 그 모든 하루 속엔
남편의 사업도 함께 있었다.
남편 역시
퇴직 후 새롭게 사업을 시작했지만,
실무와 운영, 자료 정리 등
혼자서 감당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일을 옆에서 돕기 시작했다.
자료를 정리해주고,
자금을 확보하고,
마케팅을 하고,
기획서를 함께 보고,
브랜딩 방향을 같이 고민했다.
그가 입점 제안을 넣을 때면
뒤에서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을 도와줬고,
상세페이지 제작도, 홈페이지 제작도했다.
“이 정도면 네가 대표지 않냐?"
남편이 웃으며 말하면
나는 웃고 말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든 일이
내 삶을 무겁게 하지 않았다.
같이 살아가고,
같이 만들어가는 하루.
그 안에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의 모양'이
조금씩 담기고 있었다.
아직은 시작일 뿐이지만,
그리고 여전히 정신없이 바빴지만,
이제는
내가 ‘선택해서 하는 일’들로
하루를 채우고 있었다.
문득,
의사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누구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 말고,
이제는 내 삶을 살아요."
어쩌면 나는,
지금 내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