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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었는데, 그는 짱이었다.


나의 글은 점점 나아짐을 향해 닿아간다.

하지만 그 모든 나아짐의 순간에는

언제나 짱이 함께 있었다.




그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사람을 휘어잡지도 않았고,
목소리가 크지도 않았다.
항상 말보다 행동이 먼저였고,
유난히 한 박자 느린 사람이었다.


나는 가끔 그런 그를 보며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왜 저렇게 느긋하지?”
“왜 저렇게 가만히 있지?”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모든 중심은 그였다.




가게를 함께 운영하면서
나는 거의 매일 전투에 나가는 기분이었다.


문제는 끊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감정으로 움직였고,
손님은 늘 친절하지 않았다.


직원은 실수했고,

시스템은 틀어졌고,
나는 그걸 매번 혼자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항상
정확히 한 발 앞에 있었다.




진상 손님이
“내가 ○○구에서 ○○사업하는 사람인데"
라며 갑질을 시전하려던 순간,


그가 손님에게 태연하게 말했다.


“아, 그 지역 분이시군요.
저희가 그쪽 갈 일 있으면
꼭 한번 찾아뵐게요.”


그 한마디에
상대의 기세가 꺾였다.


그는 늘 내가 슈퍼 을을 자처하며

감정소모를 하기 전 분위기를 정리했다.




또 그는 사람에게
‘책임’을 어떻게 건네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이거, 해주세요”가 아니라
항상 이렇게 말했다.


“이거, 하실 수 있어요?”


그 말이 그렇게 다를 줄 몰랐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자기가 선택한 일처럼 느끼고
스스로 책임지기 시작했다.


“할 수 있다”라고 말한 순간부터
그 일은 그 사람 몫이 됐다.


나는 물었다.
“꼭 그렇게 말해야 돼?”


그는 웃으며 말했다.
“누가 시킨 일은 쉽게 잊혀지는데,
스스로 맡은 일은 오래 기억에 남거든.”




그는 무조건 친절하지 않았다.
일부러였다.


“너무 친절하면
사람들은 그게 기본이라고 생각해.
그다음엔
당연하게 더 많은 걸 요구하지.”


그의 말은
사람을 잘 알기 때문에 나오는 거리감이었다.


그는 정중했지만 휘둘리지 않았고,
다정했지만 흐리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사람들이 먼저 선을 지켰다.




직원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한 직원이 지각을 반복하던 시기,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혼자 속을 끓이고 있었는데


그는 아무 말 없이
직원과 마당을 한 바퀴 돌고 왔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그 직원은 지각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상황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는 지적하지 않고
상대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게 진짜 리더라는 걸
그때 알았다.




그는

사람을 압박하지 않고,

책임감을 가지게 만들고,
자기가 나서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먼저 움직이게 하는 사람.


모두가 바쁜 와중에도
그는 먼저 커피를 내렸고,
그리고 조용히 귤을 까서 손에 쥐어줬다.


“이럴 땐 비타민 먼저.”




그는 ‘짱’을 하겠다고 한 적 없다.

하지만
항상 그 자리에 어울렸


어느새 직원들이
그를 가장 좋아하고 있었다.




하루는
그가 내게 말했다.

“너는 짱 시켜줘도 못했겠다.”


그 말에 처음엔 웃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나는 모든 걸 끌어안고
혼자 울다가
혼자 병이 나는 사람이었고,


그는
문제를 나누고,
상황을 유쾌하게 넘기면서도
절대 본질은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말의 진짜 뜻이 뭔지
나는 안다.

“그러니까, 그건 내가 할게.”




그는 정말,
누가 봐도 짱이었다.


나는
그를 사랑했고,
조금씩 그를 닮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와 함께하는 제주는
든든했고,
외롭지 않았다.


조용히 웃고,
천천히 걸으며,
나의 하루하루는

‘괜찮은 하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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