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로 떠나며
엄마가게 일은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 일이
나를 얼마나 갉아먹었는지,
얼마나 나를 잃게 만들었는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학업을 끝내지 못한 것도
가게의 몫이 컸다.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늘 그 일부터 해결해야 했고,
내 계획은 언제나 미뤄졌다.
그냥 다, 다 싫었다.
내 인생을
내 뜻대로 설계할 수 없다는 것이
무력했고,
괴로웠고,
견디기 힘들었다.
그런데
나에게 가게 일 안하게 해주던 남편이
말을 바꿨다.
“장모님이 걱정돼.
지금 우리가 아니면,
가게가 정말 무너질 수도 있어.
딱 한 번만... 다시 해보자.”
그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차마 거절할 수 없었고,
그가 이 말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고민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원망스러웠다.
나를 살리겠다며 데려온 제주에서
또다시 나를
가장 아팠던 그 자리에 세운 그가,
솔직히 너무 서운하고
너무 미웠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가게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죽기보다 하기 싫은 일의 연속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숨이 막혔고,
아침에 눈을 뜨면
도망치고 싶었다.
손님의 전화벨 소리에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이미
서서히 번아웃이 오고 있었다.
나는 점점 무기력해졌고,
침대에 누운 채
눈을 뜨고도
일어나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 무기력은
곧 절망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또 자살 시도를 했다.
그건 충동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순간의 나는
해방되고 싶었던 것 같다.
남편은
완전히 무너졌다.
우리는
그날 정말 크게 싸웠다.
감정을 쏟아내며
서로를 할퀴었고,
상처 주는 말들이
숨 쉴 틈도 없이
서로를 덮쳤다.
결국 우리는
좋은 병원을 찾았다.
집에서 한 시간 거리.
멀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주저하지 않았다.
정해진 날이 되면
조용히 운전대를 잡았고,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병원 앞에 도착하면
그는 늘 똑같이 말했다.
“다녀와.”
그 짧은 한마디에
그를 향해 쌓여있던 원망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진료실 안에서,
의사 선생님은 조용히 내 눈을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본인의 선택으로 이뤄진 게 거의 없으셨을 거예요.”
“남편의 선택,
엄마의 선택,
누군가의 기대와 필요 속에서
계속 살아오셨잖아요.”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이 너무 정확해서,
말 대신 눈물이 먼저 터졌다.
의사 선생님은 잠시 기다려주신 뒤
다시 조용히 말씀하셨다.
“이제는,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것’ 말고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을
조금씩 찾아야 해요.”
첫 진료라 상담 시간이 길었지만,
내 마음에 조용히, 그리고 깊게 남은 건 단 한 문장이었다.
"누구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 말고,
이제는 내 삶을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