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신혼집은 작았지만,
햇살이 잘 드는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자퇴를 하고,
일을 줄이고,
매일 아침 남편이 끓여준 커피를 마시며
작은 식탁에 앉아 하루를 시작하는 삶.
그 평범한 일상이
내겐 기적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사업과 관련해
제주에 잠시 다녀올 일이 생겼다.
“한 달.
한 달만 있다가 다시 올라가자.”
우리는 그렇게 말하며,
서울의 신혼집, 우리의 작은 요새를 그대로 둔 채
정말 ‘아주 잠시’ 제주로 내려왔다.
하지만 가게에 도착하자마자,
그 ‘잠시’는...끝이 났다.
기존 관리자가
우리가 온 한달 사이에
사기를 치고 야반도주를 했다.
예약 시스템은 엉망이었고,
클레임은 밀려 있었으며,
객실은 정리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는 사방으로 뛰었다.
경찰서를 오가고,
녹취와 문자, 전화 통화 내역을 모아 증거자료를 만들고,
은행 내역을 캡처하고,
CCTV를 확보하고,
도망간 관리자의 흔적을 쫓았다.
경찰은
“사기 혐의 입증이 쉽지 않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절차는 복잡했고,
속도는 느렸다.
그 사이에도
진상 손님들도 빠짐없이 등장했다.
나는 다시,
그 익숙한 자리에 서게 됐다.
무서웠다.
이번에도
결국 내가 끝까지 다 감당하게 되는 건 아닐까.
다시 그때처럼,
또 내가 무너지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 불안은
아직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내가 다 할게.
너는 가게 일 하지 마.”
그 말이 너무 따뜻해서,
오히려 가슴이 먹먹해졌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정말,
이번엔
나는 안 해도 되는 걸까.
그에게 모든 일을 맡기는 게
무책임한 건 아닐까
나는 결국
그에게 서울로 돌아가자고 제안했다.
더는 엄마 가게에 얽히기 싫다고
너랑 행복한 신혼생활 즐기고싶다고
내 인생 살고싶다고.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장모님이 걱정돼.
이번엔 내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