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눈보라 속의 입맞춤

by 밤톨맘

거대한 사냥 원정 대회를 앞두고 황궁은 다시금 활기로 들끓었다. 황궁 외곽에 펼쳐진 광활한 사냥터에는 형형색색의 깃발들이 힘차게 펄럭이고, 수많은 천막들이 숲을 이루듯 솟아올랐다. 차가운 북풍이 평원을 맹렬히 가로지르는 계절, 사냥개들의 우렁찬 짖음이 꽁꽁 언 대지를 뒤흔들었다.


사냥 대회는 황제의 위엄을 과시하고 황실의 강건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행사이자, 각 부족과 귀족가문이 힘을 겨루는 정치적 장이었다. 우승은 곧 황제의 신임이었고, 신임은 권력이었다. 황금과 보석은 그 뒤를 따라오는 당연한 하사일 뿐, 사람들을 진정 들뜨게 만든 것은 승자가 될 가문의 이름이 황제 앞에서 선명해진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승부는 오직 숫자로 결정되었다. 점수는 사슴이나 멧돼지 같은 동물의 포획량으로 가려졌다. 하지만 호랑이, 곰, 늑대처럼 희귀한 맹수를 잡아오는 팀이 있다면, 즉시 우승팀으로 확정되는 방식이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희귀 맹수를 잡지 못했으니, 올해 역시 포획량 싸움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누군가가 이 무시무시한 동물을 잡아오는 순간, 모든 판도는 단숨에 뒤집힐 터였다. 희귀 맹수를 쫓는 것은 그만큼 사슴이나 멧돼지를 잡을 기회를 줄이는 일이기에, 모든 팀에게는 신중한 전략이 요구되었다.


이른 새벽부터 황실의 고관대작들과 귀족들이 기세 좋게 말을 타고 사냥터로 속속 운집하는 장관이 펼쳐졌다. 황후와 공주들이 화려한 사냥 복 차림으로 그 대열에 합류했고, 나 역시 언니들과 나란히 말에 올랐다. 카이두는 새하얀 준마, '차나'를 탄 채 나의 곁으로 다가왔다. 반면 왕기는 애초부터 사냥에는 뜻이 없다는 듯, 일행에서 멀찍이 떨어져 한 구석에 엉성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랜 케식 생활이 무색하게도, 그의 승마 실력은 모순적일 만큼 형편이 없었다.


팀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뉘었다. 첫째는 황제와 황족들, 둘째는 고위 관료와 귀족들, 그리고 셋째는 외국 사신단 및 초청 인사들로 편성되었다. 에르덴 언니와 바야르, 나는 카이두와 한 조를 이루어 두 번째 팀에 배치되었다.


우리 팀은 천막 안에 모여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 팀은 다시 사슴과 멧돼지 등 일반 사냥감을 노리는 조, 그리고 호랑이나 곰처럼 희귀 맹수를 추적할 조로 나누어졌다. 황실 직속 장군이자 명실상부한 최고의 실력자였기에, 카이두는 당연히 희귀 맹수 추적조를 이끌게 되었다.


“저도 희귀 동물을 쫓겠습니다.”

나는 그의 험상궂은 표정을 애써 무시하며 단호히 답했다.

“공주님은 사슴을 쫓는 게 어떻습니까?”

카이두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방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활을 꽤 쏘니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내 고집이 쉽게 굽히지 않음을 그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 제 뒤만 잘 따라붙으십시오.”


우리 팀은 고심 끝에 늑대 사냥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호랑이나 곰만큼 거대하진 않지만, 늑대는 희귀한 사냥감으로서 우리에게 충분히 우승을 안겨줄 것이었다. 하지만 늑대는 명민하고도 극도로 경계심이 강해 쉽사리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야말로 극한의 인내심이 요구되는 사냥이었다. 게다가 무리 지어 다니는 습성 탓에, 자칫 방심하는 순간 사냥꾼이 오히려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 이 모든 위험과 인내를 요구하는 사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꺼이 늑대의 발자취를 뒤쫓았다.


카이두의 노련한 눈이 늑대의 미세한 흔적들을 놓치지 않고 쫓았다. 나는 그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랐다. 눈밭 위에 찍힌 늑대의 발자국은 섬뜩할 만큼 선명했다. 우리는 말에서 내리기로 결정했다. 늑대의 예민한 후각과 청각 때문에 말은 오히려 방해가 될 터였다. 말등에서 감싸던 따뜻한 온기가 사라질 생각에 아쉬움이 밀려와, 나는 고삐를 쥔 채 말의 목덜미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얼마나 깊이 숲으로 들어섰을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쨍하던 푸른 하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맹렬한 기세로 몰려드는 거대한 먹구름이 순식간에 사방을 짙은 암흑으로 집어삼켰다. 거친 눈보라가 미친 듯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새 발밑의 눈은 허리춤까지 차올랐고, 익숙했던 길은 삽시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정신없이 흩어지던 사람들은 눈보라를 피해 황급히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어디로 가느냐고 소리쳐 묻고 싶었으나, 방금 전 보았던 눈밭에 선명하게 찍힌 늑대의 발자국이 입을 다물게 했다. 자칫 잘못했다간 더 큰 위험을 부를 수도 있었다. 그때, 그가 나의 손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길을 잃은 듯합니다."

사방은 온통 흰 눈으로 뒤덮여 세상의 경계마저 사라진 듯했다. 이대로라면 영영 고립될 터였다. 추위에 손발은 이미 감각을 잃은 지 오래였다. 카이두는 예리하게 주변을 살폈으나, 그 역시도 당황한 듯, 미세하게 동공이 흔들렸다.


“피할 곳을 찾아야 합니다. 저리로 갑시다!”

카이두는 나를 단단히 이끌고 허리춤까지 차오른 눈밭을 헤쳐 나갔다. 드디어 거대한 바위틈 사이로 간신히 몸을 피했다. 바위틈에 들어서자 맹렬하던 눈보라는 한풀 꺾였지만, 온몸을 꿰뚫는 듯한 한기는 여전했다. 그는 지체 없이 품속에서 마른 솔잎과 부싯돌을 꺼내 들었다. 마찰을 일으키자, 이내 여린 불씨 하나가 피어났다. 불씨는 그가 불어넣는 숨으로 점차 생명을 얻어, 바위틈 전체를 따스한 주홍빛으로 물들였다. 우리는 나란히 몸을 기댄 채, 불을 쬐었다. 온기가 온몸으로 번져나갔지만, 어둠이 짙게 드리운 숲은 음산하기만 했다.


“괜찮습니까?”

그의 낮은 목소리가 적막을 갈랐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따르지 말고, 공주님은 다른 팀으로 갔어야 했나 봅니다.”

“당신이 여기서 혼자 고립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저는 어떤 사냥에도 집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더 위험했을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안전합니다. 그러니 괜한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니, 그가 나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전하는 따스함에 모든 불안과 긴장이 사라지는 듯했다.


“당신을 만난 것은 어쩌면 기적 같은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만히 울리는 그의 고백에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감정들로 일렁였다. 천천히 그의 얼굴이 다가왔다. 마주친 그의 눈동자 속으로 나의 영혼이 걷잡을 수 없이 빨려 들어갔다. 차가운 겨울 공기 속, 그의 따스한 숨결이 뺨을 먼저 스쳤다. 순간, 심장이 발아래로 곤두박질쳤고,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그의 입술이 나의 입술에 조심스레 포개졌다. 차갑게 얼어붙었던 내 입술은 그의 따스한 온기에 말캉하게 녹아내렸다. 나는 이끌리듯 눈을 감았다. 세상의 모든 소음은 아득히 멀어지고, 오직 서로의 뜨거운 숨과 미친 듯이 울리는 두 개의 심장 소리만이 우리 사이를 가득 메웠다. 우리는 더욱 깊이, 서로의 온기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 혹독한 겨울밤, 차가운 숲 속에서 오직 서로의 온기만이 모든 것을 버티게 해 주었다.


눈보라는 한참을 더 몰아치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잦아들었다. 그러나 고요해진 바위틈 주변으로는, 늑대들의 낮고 굶주린 울음소리가 맴돌았다. 수색대가 우리를 찾아낼 때까지 옴짝달싹 않고 이곳에서 버텨야 했다. 카이두는 나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고, 그의 단단한 팔은 한순간도 나를 놓지 않았다. 차가운 절망감이 온몸을 짓눌렀지만, 그의 품속에서 묘한 평온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멀리서 깜빡이는 불빛이 보였다. 퍽. 수색대가 늑대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카이두의 눈빛이 순간 예리하게 번득였다. 그는 즉시 나에게 외쳤다.

“활을 드십시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노란 눈동자들이 섬뜩하게 번뜩였다. 귀를 찢을 듯한 짐승의 으르렁거림은 숲을 뒤흔들 만큼 격렬했다. 카이두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나 역시 그의 뒤를 따르며 재빨리 활시위를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카이두는 수색대 병사들과 합류하여 검을 휘둘렀다. 그는 전장의 리듬으로 움직였다. 검이 번뜩일 때마다 늑대들이 단숨에 목숨을 잃고 쓰러졌다. 그의 무력은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늑대들이 무차별적으로 꺾여나가자, 우두머리 늑대가 분노로 울부짖으며 맹렬히 포효했다. 가장 거대한 그림자가 포물선을 그리며 카이두의 목덜미로 달려드는 찰나, 나는 활시위를 힘껏 잡아당겼다. 과녁은 우두머리 늑대의 심장이었다.


쉬이이잉-! 퍼억!


묵직한 소리와 함께 화살은 정확히 늑대의 심장을 꿰뚫었다. 비명을 지르더니 맥없이 쓰러졌다. 우두머리를 잃은 늑대 무리는 전의를 상실한 채, 싸우려 하지 않고 꼬리를 내리며 미련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장군님! 공주님! 무사하십니까?”

안도감이 뒤섞인 수색대장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카이두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무사함을 알렸다. 언제 그랬냐는 듯 따스한 아침 햇살이 숲 속 깊숙이 스며들고 있었다. 하지만 평화로운 풍경과는 달리, 눈밭 위에는 생명을 잃은 늑대 사체들이 나뒹굴었다. 처절했던 싸움의 흔적만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새하얀 눈 위에 새빨간 피가 뒤섞인 싸늘한 아침이었지만, 우리는 지독했던 밤을 이겨내고 마침내 살아남은 것이다.




그날 저녁, 사냥 원정 대회는 우리 팀의 압도적인 승리로 막을 내렸다. 우두머리 늑대를 비롯한 쓰러진 늑대 몇 마리가 심판대 위에 당당하게 올려지자, 그 희귀성과 포획의 난이도를 인정받아 우리 팀의 우승이 만장일치로 확정되었다. 우리가 속한 두 번째 팀의 천막 안은 승리의 함성으로 천장을 뚫을 듯했다. 환호가 이어지는 동안, 사냥터는 서서히 밤의 색으로 잠겨 갔다.


드넓은 사냥터의 중심, 황제의 대형 천막 앞에서는 모닥불이 맹렬히 타올랐다. 붉은 노을이 지평선을 삼키며 마지막 햇살을 뿌렸고, 그 위로 초롱초롱한 첫 별들이 고요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냥터는 이내 축제의 열기로 들끓었다. 천막 사이사이에서 춤과 노래가 밤새도록 끊이지 않았고, 곳곳에 마련된 통구이에서는 노릇하게 구워진 고기의 기름진 냄새가 진동했다. 마유주는 끝없이 잔에 채워졌다. 사람들은 낮의 지독했던 긴장감과 쌓였던 피로를 깨끗이 잊은 채, 서로에게 술잔을 건네며 밤새도록 기쁨을 만끽했다.


왁자한 축제 분위기 속에서 왕기와 에르덴 언니의 모습이 시선에 잔잔히 머물렀다. 왕기는 해사한 얼굴로 언니와 마주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뺨에는 옅은 홍조가 돌았고, 희망 없이 꺼져 있던 눈빛은 별처럼 초롱하게 반짝였다. 언니의 햇살 같은 따스함이 스며들자, 왕기는 내면에 잠재했던 왕의 기운이 비로소 움트는 듯했다.


에르덴 언니가 이쪽을 돌아보더니, 내 손을 덥석 잡아 끌어당겼다.

“밤새 추위에 떨었으니 얼굴이 이리도 꽁꽁 얼었지. 여기로 와 앉으렴.”

언니는 모닥불 곁으로 자리를 비켜주었다.


“카이두 장군을 네가 구해주었다면서! 나는 네가 참으로 자랑스럽구나. 게다가 우리 팀을 승리로 이끌었잖니.”

반짝이는 얼굴로 웃고 있던 언니의 얼굴이 이내 진지하게 가라앉았다.

“허나 다음부터는 조심해야 해! 나는 너를 잃고 싶지 않구나.”

언니의 따뜻한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었다. 누군가의 날카로운 비난이 신경을 긁으며 파고들었다.


“재수 없는 계집!”

바야르였다. 그녀는 술잔을 쾅하고 거칠게 내려놓더니, 시뻘겋게 상기된 얼굴로 나를 독기 품은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우리 앞을 성큼성큼 걸어 지나가며, 모두 들으라는 듯 조롱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운도 지지리 좋은 것! 빌어먹을 운까지 붙은 거야!”

그녀의 분노는 모닥불의 열기보다도 훨씬 뜨거워 보였다. 카이두는 그녀를 냉정한 시선으로 말없이 응시했다. 그리고 그의 손이 미미하게 떨리는 내 손 위로 내려앉더니, 단단하게 감싸 쥐었다. 그와 입맞춤을 한 뒤로 나의 모든 감각이 예민해진 것인지 그의 작은 손길에도 온몸의 촉각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나는 카이두와 함께 피어오르는 모닥불 옆에 나란히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황홀한 밤이었다. 숲의 어둠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그 위로 쏟아지는 별들은 수많은 은하수를 뿌린 듯 셀 수 없이 반짝였다. 마침 별똥별 하나가 획을 그으며 떨어져 내렸다. 이내 유성우가 쏟아졌다.


“별똥별이 떨어집니다. 참으로 아름답지 않습니까?”

나의 감탄 섞인 말에 그가 짧게 미소 지었다.

“글쎄요. 제게는 밤하늘을 가르는 불화살처럼 보일 뿐입니다. 아름답다기 보다는 그저... 타오르다 사라지는 모습이 장렬할 뿐이지요.”


“소원을 빌어 보십시오. 어쩌면 아름다운 유성이 소원을 들어줄지도 모릅니다.”

카이두는 감싸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아름답다는 말에 전혀 동의하지 못하는 얼굴이었지만, 잠시 숨을 고른 뒤 말했다.

“그렇다면 손 쓸 겨를도 없이, 저리도 급히, 당신이 내 눈앞에서 스러지지 않기를 빌겠습니다. 저 유성처럼 당신이 내 눈앞에서 홀연히 사라질까 봐, 덜컥 겁이 납니다.”


그의 모든 말들이 따뜻한 위로처럼 들렸다. 끝없이 나를 살리려는 그 때문에, 끝끝내 나는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얻은 것이다. 이 겨울밤, 모닥불의 온기와 밤하늘의 별, 세상의 번잡함과 황궁의 음모는 저 멀리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그의 품속에서 나는 세상 그 어떤 곳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완전한 평화를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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