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잃어버린 이름, 바스비쉬

by 밤톨맘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몽골군이 쳐들어올 것이라는 소문이 끊임없이 떠돌았다. 간혹 멀리서 울리는 거대한 말발굽 진동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지만, 적들의 광기 어린 함성이나 전쟁을 알리는 북소리가 연달아 들려오지 않았다.


인삼을 구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길을 나선 발걸음은 오늘따라 유난히 무거웠다. 목화솜 모자를 아무리 깊게 눌러써도, 산속에서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막을 재간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랗게 뻗친 속눈썹 위로 얼음조각이 맺혀 시야마저 뿌옇게 뒤덮어 놓았다. 오늘은 이태평과 동행했다. 오랫동안 거래해 오던 푸줏간 주인장과 크게 다툰 터라, 오라버니는 새로운 거래처를 물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며칠을 미적거리며 시간을 보내더니, 어머니의 입에서 '돼지비계가 바닥났다'는 불호령이 떨어지고 나서야 마지못해 움직인 것이다. 오늘은 필히, 어떤 수를 써서라도 다른 푸줏간과 계약을 성사시켜야만 했다.


그가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는 "잠깐만!" 하는 말과 함께 황급히 나무 뒤로 숨어 버렸다. 무언가를 잘못 먹었는지 설사병에 걸린 것이 분명했다. 어머니 몰래 조금씩 빼돌린 돈으로 저잣거리의 별 진귀한 것들을 혼자 먹어대더니 이번에도 탈이 난 모양이었다. 홀로 남겨진 나는 눈에 파묻힌 발이 서서히 감각을 잃어가는 것을 느꼈다. 동상에 걸리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발을 구르고 또 굴려야 했다.


바로 그때였다. 묵직한 말발굽 소리가 얼어붙은 대지를 가르며 귓가를 강타했다. 점점 선명해지는 그 소리는 분명 내가 구르는 발소리일 리가 없었다. 설마 하는 불길한 예감은 사실이 되었다. 검은 형체들이 매섭게 나를 둘러싸더니, 순식간에 포박당했다. 뒤이어 보이는 풍경은 더욱 참혹했다. 흙먼지와 눈물로 얼룩진 아녀자들이 마치 짐짝처럼 줄줄이 끌려가고 있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공녀 차출은 '과부처녀추고별감'에서 관리가 나와 법도에 따라 이루어졌다. 헌데 어찌 이리도 무자비하게 잡아갈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을 사냥하는 수준이었다. 전쟁이라도 일어난 것인가?


막 볼일을 마치고 나오던 이태평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두텁게 쌓인 눈 속으로 급히 몸을 감춰 버렸다. 그에게서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았건만, 피를 나눈 남매사이에서 오는 절망감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지금 닥친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솟구치는 눈물을 애써 참았다. 분명 오라버니가 이 전쟁으로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를 구해야 할 테니, 숨는 것이 이치에 맞았다.


대지를 뒤흔드는 말발굽 소리가 쉬지 않고 몰아쳤다. 말에 올라탄 군사들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사방에 혼란을 뿌렸다. 거대한 불길이 의주성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몽골군의 횃불은 모든 걸 앗아가려 했다. 검은 연기가 하늘로 하염없이 치솟더니, 온통 잿빛으로 물들였다. 메스꺼운 연기는 남아 있는 모든 것을 시커멓게 태웠음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찢어질 듯한 비명과 절규, 곡소리가 메아리쳤다. 피의 파도가 한반도를 넘실거렸으며, 가는 길마다 떠도는 넋의 숨결이 하염없이 밀려왔다.


아버지, 어머니와 작별인사조차 남기지 못한 채, 나는 남으로, 자꾸만 남으로 끌려 내려갔다. 하지만 나의 시선은 북쪽에 있는 집으로 못 박혀 있었다. 포박된 상태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모진 행군이 계속되었다. 꾸벅꾸벅 졸다가 어느 병사의 무시무시한 가죽 채찍에 맞아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걸음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똑같이 매를 맞았다. 짐승만도 못한 신세였다.


그날 저녁 어느 숙영지에 도착했다. 산속에 자리 잡은 그들의 숙영지는 꽤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게르로 가득했다. 물자를 보급하고 체력을 보강해 전장에 나갈 준비를 하는 곳이었다. 나이 많은 노파들은 솥에 담긴 찌개를 휘휘 저으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어느 한쪽 게르에서는 여인들의 찢어질 듯한 울부짖음과 사내들의 끙끙거리는 거북한 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고려의 젊은 여인들은 병사들의 노리갯감이 되어 있었다.


드디어 손목에 묶인 포박을 풀어주었다. 손목이 시뻘겋게 부어 있었으나 어루만질 새도 없이 강제로 줄이 세워졌다. 어느 병사 하나가 우리를 멋대로 분류하기 시작하더니, 나이 많은 노파와 젊은 여자로 나뉘었다. 나는 목화 모자를 코 아래까지 푹 눌러쓴 뒤 허리를 구부렸다. 그리고 쉰 목소리로 앓는 소리를 냈다. 바닥의 진흙을 덥석 집어 얼굴에 문질렀다. 얼굴을 최대한 가려야 했다. 살아나갈 방법은 이 길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떠올렸다. 의지만 있으면 무엇이든 이겨내고 살아남을 수 있다. 환자들 중에서도 떠돌이 방랑자 신세보다는 돌아갈 가족이 있는 환자들이 회복력이 좋았다. 나 또한 돌아가야 할 가족이 있지 않은가. 나는 의지를 불태우며 마음을 다잡았다. 시키는 일을 하면서도 그들이 주고받는 말을 허투루 넘기지 않으려 애썼다. 어서 이 숨 막히는 전쟁이 끝나길 바라보았다. 그러면 산속 어딘가 숨어서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도망칠 수 있지 않을까?


한 달이 지났을까? 살면서 이토록 상처투성이였던 적은 없었다. 특히 전장에서 몽골군의 시체가 늘어날 때면 화풀이로 고려인들을 채찍으로 다스렸다. 몸을 둥글게 말아 이 모든 것을 견뎌내며 울부짖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우는 일은 마지막 남은 나의 에너지마저 앗아갈 테니까. 매를 흠씬 얻어맞은 밤이면 숨을 쉬는 것 마저 고통스러웠다. 비라도 내릴 때면 온몸이 흠뻑 젖어 축축했고,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로 만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혹독한 추위는 앞으로 몇 달은 더 지속될 것이다. 내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머지않아 나의 몸뚱이는 한 줌의 재가 되어 흩어질 것만 같았다.


아침이 되어 눈을 떴을 때 산골짜기에 있는 우리 집이었으면 좋겠다고, 이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매일 같이 기도드렸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세상에 정의 따위는 없었다. 고려의 자주권을 원나라에 뺏긴 이후로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허나 여태까지 보고 느낀 것은 아버지 품 안에서 바라본 세상이었다. 지금 내가 마주한 현실은 그 어떤 말로 표현되지 않을 만큼 처참했다. 그야말로 일필난기였다. 얼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나날이 짙어지고 있음을. 나의 세계가 무너졌음을. 고려 여인들은 이 전쟁의 희생양이 되었음을 직시해야 했다.


매 끼니마다 토끼, 사슴, 노루, 염소, 멧돼지를 넣고 푹 끓인 찌개를 대접했다. 그들은 온갖 짐승이란 짐승은 다 잡아왔지만 우리에게 돌아오는 음식은 얼마 되지 않았다. 부대 사람들이 먹고 남은 음식들로 하루하루 버텼다. 얼마 되지 않은 음식으로 며칠을 버티기도 했다. 헌데 이번 식사는 진수성찬에다가, 양이 어마어마했다. 그러하면 우리에게 떨어질 음식도 꽤 있을 터였다.


“어이, 이번 식사는 실수가 없어야 해. 특히 과일이 떨어지면 부족하지 않게 채워 넣도록 해.”


처음 보는 색색깔의 과일과 모양을 낸 간식들이 접시에 담아 옮겨졌다. 높고도 높은 어느 분이 이 전쟁터까지 직접 발걸음을 하시는 모양이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이 나라의 황태자가 행차하실 터였다. 며칠 전부터 그를 맞이할 준비로 숙영지는 분주하게 돌아갔다. 중앙의 저 거대한 게르를 세울 때는 온갖 진귀한 것들로 안을 단장했다. 전쟁터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화려한 궁궐을 통째로 옮겨 놓으려는 듯 정성을 쏟았다. 드디어 저 게르의 주인공이 오늘 방문한 것이다.


노파들과 함께 차린 음식들을 나르고 또 날랐다. 장군들의 우렁찬 목소리와 병사들의 거친 발소리가 섞인 게르 안은 공기마저 살벌했다. 한 치의 실수도 허락되지 않는 곳. 긴장감이 손끝까지 타고 흘렀다. 이 날카로운 감각에 저절로 손이 떨려왔다. 이를 앙다물고 접시를 부여잡았다. 이제 마지막 접시만 옮기면 되었다. 게르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숨이 턱 막혀 왔다. 공기가 얼어붙은 듯 뻑뻑했다. 이 부대의 최고 지휘자가 자리에 참석했음을, 굽힌 허리를 굳이 펴서 확인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이 넓은 게르 전체를 일순간 침묵시켰으니까. 마지막 접시고, 나발이고 그냥 이대로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가고 싶었지만, 이미 시선은 내게 집중된 이후였다. 피할 수 없었다. 숨소리마저 죽인 채 조심히 앞으로 나아갔다. 상석에 앉은 황태자, 엘 테구스에게 마지막 접시를 내려놓는 찰나, 차갑고도 거친 손이 나의 손목을 낚아챘다. 뼈마디가 부서질 듯 나의 손목을 옥죄었다.


“젊은 계집이 아니더냐? 어째서 음식을 나르고 있는 게야?”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의 시선이 내 손등에 박혔다.


“손에 주름 하나 없는 네가 감히 이 부대 전체를 속이려 들다니.”

다음 순간, 등 뒤에서 거친 발길질이 날아들었고, 몸이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욱신거리는 갈비뼈를 부여잡을 틈도 없이 바닥에 처박힌 머리 위로 그의 목소리가 내리 꽂혔다.


“젊은 계집인지 아닌지 내 이 자리에서 확인할 터이니 당장 이 년의 옷을 벗기거라!”

온몸이 얼어붙었다. 덜덜 떨리는 손끝에 힘을 주어 저고리 옷깃을 움켜쥐었다. 이 수많은 사내들 앞에서 발가벗겨질 생각에 숨이 턱 막혀왔다. 이 수모와 수치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우악스러운 손들이 나의 저고리를 잡고 뒤흔들었다. 팔이 뽑혀나갈 듯 아팠지만 손가락이 부서지도록 움켜쥔 저고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누군가가 갈고리 같은 손으로 머리채를 잡아챘다. 눈앞이 번쩍였다. 팽팽하게 당겨진 머리칼 사이로 살점이 뜯겨나가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또 다른 주먹이 날아들었다. 메마른 뺨에 연거푸 날아오른 주먹으로 코가 찌그러지는 듯했다. 콧등에서 미끈한 액체가 터져 나왔다. 뜨거운 피가 입술로 흘러내리더니 곧 비릿함이 입안 가득 번졌다. 나는 소리 내 울지 않았다. 턱 근육을 단단히 조여 그들의 무자비함을 받아냈다.


이곳의 어느 누구도 나를 일으켜주지 않으리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동정심이나 측은지심 따위 기대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오히려 나를 향한 경멸과 비웃음이 게르 안에 가득했다. 내 인생, 이토록 굴욕적이고 치욕적이며, 불행한 적은 없다고 속으로 울부짖었다. 치밀어 오르는 역겨움을 토해내듯 입 안의 뜨거운 피를 뱉어냈다. 순간, 왼쪽 저고리가 '찌이익!' 소리를 내며 찢겨 나갔다. 천이 찢기는 소리와 함께 가슴팍에 깊이 묻어두었던 반지 하나가 ‘쨍그랑’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잠깐. 방금 떨어진 것이 무엇이냐?”

황태자의 눈길이 반지에 꽂혔다. 그의 명령에 병사가 반지를 건넸다. 이제 그는 나의 아름다웠던 과거까지 무참히 짓밟아 놓으리라. 얼굴에 피가 흐르는 와중에도, 차갑게 빛나는 반지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 지옥 같은 순간에 잠시나마 숨을 고를 수 있음에, 2년 전 그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것을 왜 네가 가지고 있느냐? 훔친 게야?”

엘 테구스가 성큼성큼 다가와 내 목에 차가운 칼날을 겨누었다. 눈앞이 아찔했지만, 더이상 숨길 것도 없었다. 숨 막히는 침묵 속. 나는 바닥에 박힌 시선을 들어 올려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아닙니다. 그 반지는 제 것입니다.”

잔뜩 굽었던 허리를 똑바로 폈다. 어깻죽지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결연한 목소리로 답했다. 나는 죽음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존엄을 잃지 않으리라.


“우리말을 할 줄 아느냐?”

“예.”

그는 겨누었던 칼을 치우며 비아냥거렸다. 여태껏 자신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며 나를 욕보였다는 뜻이었다. 그는 예상치 못한 놀잇감을 발견했다는 듯, 잔인한 웃음을 입가에 드리우며 말했다.


“카이두, 네가 나와서 설명해 보거라. 너의 반지가 왜 이 계집에게 있는지.”

카이두. 그 이름이 나의 귓가에 맴돌자,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뻔했다. 코에서 흐르는 피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상처 입은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비틀거리는 몸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그저 그 이름을 멍하니 되뇌어 보았다. ‘카이두.’


그가 들어서자 게르 안의 모든 소리와 움직임이 멎더니, 이 공간을 순식간에 압도했다. 곧이어 키 큰 그림자가 내 곁에 드리워졌다. 그는 지체 없이 황태자에게 무릎 한쪽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카이두, 황태자님을 뵙습니다.”

그가 황태자에게 예를 갖춘 뒤, 마침내 나를 돌아보았다. 흙먼지에 뒤덮이고, 피로 범벅된 나의 얼굴. 형편없이 부어오른 눈두덩이 사이로 본 그의 표정이 읽히지 않았다. 그러나 흔들리는 횃불 빛 속에서도 그의 눈빛만큼은 여전히 강렬했다. 순간, 그의 시선이 나의 찢긴 왼쪽 어깨에 머무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엘 테구스에게 답했다.


“이것은 제가 부다시리에게 주었던 반지와 같습니다.”

“무슨 말이냐?”

엘 테구스의 눈매가 날카롭게 좁아졌다.


“어린 시절부터 부다시리는 저를 잘 따랐습니다. 에르덴과 나누어 끼었던 약혼반지를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던 그녀에게 제 것과 똑같은 반지를 선물했었습니다.”

“그러면 이 고려 여인이 위왕 베이르테무르의 잃어버린 막내딸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그의 질문에 카이두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나는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의 입술이 느리게 움직였다.

“그 반지를 가지고 있다면 분명합니다. 그리고 위왕 베이르테무르 어르신께서는 왼쪽 어깨의 빨간 점이 부다시리의 유일한 증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내들이 하나같이 나의 왼쪽 어깨의 빨간 점에 시선이 박혀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저고리가 처참히 찢겨 나가 훤히 드러난 나의 왼쪽 어깨가 문득 뜨겁게 느껴졌다.


“네 어릴 적 이름이 무엇이더냐?”

엘 테구스는 의심으로 가득 찬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나는 숨을 고르고, 또 골랐다. 그 모든 굴욕과 절망을 뚫고 나지막이 그리고 힘겹게 그 이름을 뱉어냈다.


“바스비쉬”

황태자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나의 모든 힘이 빠져나갔다. 순간, 바닥에 주저앉은 몸이 공중에 붕 뜨더니 이내 모든 의식마저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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