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은병 두 개가 만들어 낸 운명의 빚

by 밤톨맘

어머니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아버지에게서 살을 꿰매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요 며칠을 난리법석이었다. 가로가 긴 무쌍의 눈매를 가진 몽골 여인들은 어머니의 쌍꺼풀 눈을 상당히 부러워했고 매번 칭찬 일색이었다. 아버지가 상처를 섬세하게 꿰매는 모습을 유심히 보더니, 눈꺼풀을 살짝 올린 뒤 주름을 만들어 꿰매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다. 이토록 기발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외모 집착은 나날이 심해져 갔다.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요량이었다. 이태평은 물불 가리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을 참 많이 닮아 있었다.


“몽골 여인들이 돈을 주고 이 쌍꺼풀을 정말이지 만들겠답니까?”

이태평은 이 사업 구상이 마음에 드는지 그의 눈이 번뜩였다. 어쩌면 화장품으로 푼돈을 버는 것보다, 의술을 빙자해 큰돈을 벌 수 있는 성형술에 눈이 돌아가는 것은 당연했다.


“태평아, 너에게 시범을 보여도 되겠느냐?”

드디어 어머니의 실험이 시작될 참이었다.

“왜 하필 나야? 이로운이 있잖아.”

“로운이는 이미 쌍꺼풀이 있지 않느냐.”

쌍꺼풀을 갖고 태어날 수 있게 도와주신 모든 천지신명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크음, 거기 누구 없소?”

싸리문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크음, 여기 누구 있소!”

이태평이었다. 그는 히죽 웃더니 싸리문 쪽으로 냉큼 걸어갔다. 저런 말장난이 재밌는 모양이다. 가볍게 삐걱거리며 열리는 싸리문이 경박스러운 이태평 같았다.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집 안으로 들어서는 이 어르신의 모습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허름한 도포에 낡은 지팡이를 짚고 서 있을 뿐인데, 그의 존재감은 상당했다. 백발을 뒤로 한 데 묶은 머리에 기름을 발랐는지 윤기가 흘렀고, 새하얀 눈썹은 양 광대를 덮을 만큼 아주 길게 자라 있었다.


“내 요즘 일어설 때마다 머리가 핑 돌고 어지러워 기운이 없소이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오전에 산에서 약초를 캐느라 안 계십니다만, 제가 들어가 진맥해 드려도 괜찮으실는지요?”

“그러지요.”

그 어르신은 나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그가 내민 손에 소매를 살짝 걷어 맥을 짚어보았다.

“기가 많이 허하십니다. 그로 인해 피가 머리끝까지 골고루 돌지 못하는 듯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소?”

그가 눈을 지그시 감더니 내게 물었다.


“근래에 무리하신 일이 있다면 잠시 중단하시고 푹 쉬십시오. 또 충분한 수분 섭취가 중요합니다. 식사를 하지 않으실 때에도 물을 꼭 챙겨 드십시오. 그리고 수정과를 자주 드시면 좋을 것입니다. 계피와 생강은 체온을 높여줍니다. 우리 몸은 따뜻해야 피가 돌게 되어 있습니다. 어르신 손이 차갑습니다.”

그는 내 처방에도 아무 말도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진맥 하던 손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순간, 어르신은 감았던 눈을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왕후가 될 상이오”

“네?”

“아가씨의 운명은 세 개의 강을 건너고, 두 개의 태양을 섬기며, 하나의 달을 잃으리라.”


순간, 내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왕후가 될 상이라니. 이 깊은 산골짜기에서 하루하루 목숨을 이어가는 내게 가당치도 않은 말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진료비를 대신하려는 고마운 덕담이려니 여겼다. 애당초 병세가 심하지 않아 딱히 약을 처방할 만한 상황도 아니었기에, 돈을 받을 생각조차 않던 참이었다. 그저 기분 좋은 덕담으로 넘기려던 찰나, 방금 그가 내뱉은 말에 나는 형언할 수 없는 전율이 돋았다. 바람 한점 없는 이 고요한 방에서 ‘휘리릭’하는 서늘한 기운이 일더니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겨울의 한기가 느껴지는 걸 보니 축월에 태어났구려.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동짓날이 떠오르는구려. 꽁꽁 언 땅 같아 보여도 그 속에는 물을 잔뜩 머금고 있지. 대지를 흠뻑 적실 자비의 샘물이 샘솟아 백성을 살릴 것이오. 허나 그 물은 스스로를 태우는 고통 없이는 솟아나지 않으리라.”


나는 어르신이 하는 말에 어떤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가 갑자기 도포 깊숙한 곳에서 은병 두 덩이를 꺼내 내 손에 쥐어 주는 것이 아닌가. 허름한 행색인 그에게서 절대 기대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증상이 심하지 않아서 진료비는 받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넣어두십시오.”

나는 그가 건넨 은병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고려의 백성을 부탁하네. 부디 아가씨의 이름처럼 그들을 이롭게 해 주시오”


나의 이름을 밝힌 적이 없건만, 어찌 내 이름을 알고 있단 말인가. 심지어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날, 해가 유난히도 짧아 평생 그토록 추웠던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마치 그날을 직접 본 것처럼 묘사했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이 상황이 두려운 나머지,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왔다.


겁에 질린 내 얼굴을 본 어머니와 오라버니, 그리고 막 돌아온 아버지까지, 온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하지만 어르신은 포기하지 않았다. 기어코 내 손에 은병 두 덩이를 쥐여 준 뒤에야 길을 떠났다. 이제 이 은병은 돌려주고 싶어도 돌려줄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와 이태평이 은병을 본 순간, 그것은 더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와 오라버니는 이 은병으로 저잣거리에 작은 화장품 가게를 차릴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지만, 나는 이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도무지 헤아릴 수 없었다. 내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거대한 빚을 진 기분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운명의 굴레로 나를 옭아매려는 그는 대체 누구인가. 그저 그가 한 말을 되짚고, 되짚고 또 되짚어 볼 뿐이었다. 그리고 내게 명심하라고 건넨 마지막 한 마디.


“아가씨에게 달은 하나요. 그대에게 두 개의 달은 없소이다.”




<2년뒤>

저잣거리에 있는 어머니의 묵직한 가게 문을 열어젖혔다. 들어가기 전부터 알싸하면서도 녹진한 인삼 향이 콧속을 파고들었다. 벽이며 바닥이며, 농후한 인삼 향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인삼이 가득 든 솥에서 피어나는 수증기가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의주는 육로 무역의 중심지였다. 대규모의 무역이나 공물은 벽란도를 통한 바닷길을 이용했지만 고려 상인들이 원나라에 종이, 먹, 인삼 등을 소규모로 교역할 때는 의주를 지나쳤다. 특히 인삼은 수도인 개경이 있는 경기 지역에서 대량으로 재배했으며, 어머니가 개경에 살았을 때부터 그 효능이 정평이 나 있던 고려의 특산품이었다.


2년 전 우리 가족에게 떨어진 은병 두 덩이. 화장품 가게를 차리고도 남을 금액이었다. 어머니는 남은 은화로 의주에 잠시 머물던 고려 상인들에게 귀한 인삼을 사들여, ‘면약’을 만들었다. 면약의 주재료는 돼지기름과 인삼. 돼지비계를 인삼과 함께 뭉근히 끓여서 뽑아낸 고농축 기름을 면포에 거른 뒤, 상온에서 식히면 펴 바르기 좋은 말랑말랑한 고체 덩어리의 면약이 되었다. 이 면약은 단연 어머니 화장품 가게의 효자 상품이자 최고 인기 품목이었다. 돼지기름과 인삼의 만남은 획기적이었다. 어머니의 기발한 생각이 먹힌 것이다. 인삼이 꼬릿한 돼지 냄새를 말끔히 잡아줄 뿐만 아니라 즉각적으로 피부에 영양을 공급하여 주름 개선에도 효과적이었다. 특히 요즘처럼 추운 겨울에는 돼지기름이 들어간 면약이 찬바람에 피부가 트고 갈라지는 것을 막아주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만들어내는 족족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요즘처럼 온 세상을 얼릴 것 같은 이런 추운 겨울날에는 모든 식구가 면약 만드는 일에 함께 뛰어들어야 수요를 맞출 수 있었다.


“가지고 왔느냐? 저번보다 값이 더 뛰었더냐?”

어머니는 솥에서 끓고 있는 인삼의 색을 유심히 살펴보느라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인삼을 너무 오래 끓이면 원하는 향을 얻을 수 없기에 매번 심혈을 기울였다. 비싼 인삼을 낭비해서는 아니 되었다.


“예, 주신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나는 얼마 되지 않은 인삼 꾸러미를 가판대에 내려놓았다. 원나라 공물로 받쳐지고 있는 시점에서 인삼의 가격은 나날이 높아졌다. 한쪽에서 이태평이 다 만들어진 면약을 작은 단지에 담아냈다. 이 추운 날, 인삼을 구해 오는 것도 나의 몫이었다. 나 또한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향긋한 인삼향을 맡으며 일을 하면 얼마나 좋으련만.


“이번에 다 소진하면 다음 인삼은 오라버니가 구해와. 내가 돼지비계를 구해 오겠어.”

단지에 담다 떨어진 면약 조각들을 끌어 모아 차갑게 얼어붙은 손등에 펴 발랐다. 살갗이 찢어질 듯이 아려왔다.


돼지비계는 비교적 흔하게 구할 수 있었다. 인삼처럼 흥정을 할 필요도, 고려 상인이 언제 올지 염탐을 할 필요도 전혀 없었다.


“이미 다 끝난 이야기야. 비계는 무거워서 힘이 센 내가 맡기로 했잖아.”

옮기는 것도 귀찮아서 웃돈을 주고 가게로 배달받는다는 사실을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얼른 겨울이 끝났으면 좋겠어.”

나는 체념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

“겨울이 끝나면 면약 수요도 줄어드는데 뭣이 어째?”

어머니는 날 선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더는 무겁고 불편한 이 공간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추위에 떨었던 몸이 채 녹지도 못했지만 몸을 일으켰다. 산골짜기 집으로 돌아가는 편이 훨씬 나았다. 조각조각 떨어진 면약을 손등에 마저 바른 뒤 목화 솜이 폭닥하게 들어간 모자를 덮어썼다. 본격적으로 인삼을 구해오는 일을 맡으면서 눈보라를 뚫어야 할 일이 많아, 아버지가 원나라 상인에게서 사주신 모자였다.




욕조에서 피어난 수증기가 천장으로 올라가 방울방울 맺혔다. 이따금씩 ‘똑똑’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외에는 고요만이 감돌 뿐이다. 저잣거리에 화장품 가게를 얻은 뒤로는 어머니 방은 온전히 내 차지가 되었다. 온갖 약초 향으로 가려져 있던 이 공간을, 비비추 향으로 가득 메웠다. 살얼음이 깔린 수정과에 잣을 몇 알 띄웠다. 목욕 뒤에 마시는 시원한 수정과 한 잔은 정신을 맑게 해 주었다. 예전 같았으면 꿈도 꾸지 못할 호사였다. 귀하디 귀한 잣에다가 엄동설한에 목욕이라니.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설경을 두고 이제는 아름답다고 감히 말할 수 있으리라. 꽁꽁 움츠러들기만 하던 혹독한 겨울날이 더이상 아니었다.


그 도사가 두고 간 은병 두 덩이로 우리 집 가세는 나날이 좋아졌다. 어머니와 오라버니는 그 돈에 대해 어떤 마음의 짐도 없겠지만 나는 어깨가 무거웠다. 내가 왜 그 빚을 곱씹고 또 곱씹어야 하는지 억울할 때가 많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돈을 실질적으로 쓴 건 어머니와 오라버니가 아닌가? 빚을 갚아야 한다면 그 둘에게 물어야 하지 않은가? 이름이 문제였을까? 이태평처럼 속 편하게 이름을 ‘이기적’이라고 지었더라면, 나 또한 편히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호사도 그 은병 두 덩이가 아니었으면 가당치도 않을 일이었다.


나는 그 해에 일어난 일에 대해 떠올리며, 헝겊 주머니를 풀어 반지를 꺼내 보았다. 만약 그가 이 반지를 남기지 않았다면, 그가 내 인생에 등장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이라 봐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2년 동안 어떤 소식도 없었다. 나는 오직 반지 하나에 기대어 그의 희미한 발자취를 붙들 뿐이었다.


그 도사 덕분에 반지를 팔아 살림에 보탬을 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여전히 그에게 이 반지를 돌려주기 위해 나는 가슴속 깊은 곳에 간직했다. 그리고 반지를 보며 추억했다. 기우 연등제에서 보았던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불빛, 하늘을 수놓던 반딧불이 풍경, 그와 나누었던 이야기들. 그 해는 내게 참 특별하고도 기이한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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