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뜨는 해와 가벼움 사이, 그 어딘가에서 #23

길랭바레증후군, 스물세 번째 이야기

by 밍밍한 밍


○ 2022년 12월 넷째 주


1kg짜리 공을 들고 오는 치료사.


"잉? 공이요?"

"네. 이거 주고받아 볼 거예요. 밍님 받을 때 잘 버티셔야 해요."


공을 슥 주고받아본다. 캐치볼 하는 느낌으로.

그리고 덩달아 베드로 픽픽 쓰러지는 내 몸. 1kg짜리 공일뿐인데 하체가 버텨주질 못하는 상황에 그저 헛웃음만 픽 나온다.


"와 이거 자존심 상하네요."

"밍님 잘 버티세요. 근데 별 거 아닌 거 같은데 힘들죠?"

"그러게요. 겨우 1kg짜리 공인데 스릴 넘치네요."

"넘어질 거 같으면 그냥 뒤로 쓰러지세요."

"네. 알겠습니다."


공을 받을 때야 공의 관성에 몸을 실어 그냥 툭 넘어지면 된다지만(?), 던질 때는 진짜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온다. 언더핸드로 던질 때가 그나마 좀 덜하고, 오버핸드로 던질 적엔 몸이 행여나 앞으로 고꾸라질까 두려워 무릎이 곧게 펴지기 일쑤.

행여나 백니가 일어나진 않을까 신경 쓰인다.


그러다 낯선 주치의가 말을 걸어온다.


"발목 좀 회전시켜 볼까요?"


속으론 이상하다 생각하며 지시하는 행동을 한다. 몇 가지 동작 수행이 끝난 후 주치의의 입에서 다른 환자의 이름이 나온다.


"어? 저 그 사람 아니에요."


알고 보니 내 맞은편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던 환자의 주치의였다.

한 차례 소동(?)이 지나간 후 공 주고받으며 치료를 이어간다.

주치의 바뀐 줄 알고 식겁했네. 생각해 보니 내 회진은 점심 즈음에 했었지 참.


공을 주고받으며 균형훈련을 할 때도 있고, 때론 손에 아령을 든 채 균형운동을 할 때도 있다.

아령으로 균형운동을 하는 건 진짜 단순한 동작으로 이루어진다.

아령을 손에 들고, 앞으로 뻗은 채 상체를 옆으로 돌린다. 끝.

진짜 단순한 동작임에도 파들파들 온몸이 떨려오고, 긴장도가 떨어지는 순간 바로 베드 위로 고꾸라지기 일쑤.


"별 거 아닌 거 같은데 힘들죠?"

"와.. 별 거 아닌 거가 아니네요."

"받쳐주는 하체의 힘이 부족해서 그래요. 그럼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고개만 살짝 돌려볼까요?"


아니 단순히 고개만 돌렸을 뿐인데 왜 온몸이 긴장하지?


"선생님 이것도 힘든데요?"

"그쵸? 단순한 거처럼 보이는데도 힘들죠?"

"네. 와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 방향만 살짝 달라져도 인지하는 게 달라져서 그래요. 이것도 점차 익숙해져야 합니다."

"후. 네. 알겠습니다."




발판과 테이블을 가져오는 치료사.

발판에 발을 비스듬히 세운 후 앞꿈치와 종아리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켜 세워보려 한다.

근력이 부족하여 올라가지 않는다.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몸. 팔로 테이블을 지지한 채 다시 시도해 본다.

와 이거 팔 운동 같은데..?


"선생님 팔로 테이블을 밀어 몸을 끌어올리는 거 같아요."

"팔에 힘 많이 들어가는 거 느껴지시죠? 그래도 전 이런 보상작용이 있어도 동작 수행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돼요. 한동안은 이렇게 해볼게요. 그래도 최대한 팔에 힘 뺄 수 있도록 의식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1차적으로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지지 않는 데다, 2차적으로 근력까지 없으니 마냥 더 힘들게만 느껴진다.

허벅지 쪽 운동하는 거랑은 또 다른 힘듦이네.


"그래도 밍님 처음 봤을 때보다 종아리 근육이 좀 더 올라왔어요."

"엥 진짜요? 전 잘 모르겠는데..."


괜스레 한번 찡얼거린다.


"제가 직접 다리 살펴보고 느끼는 건데 착실히 잘 붙고 있는 중이에요."

"다 훌륭하신 치료사 분들 덕입니다."

"에이~ 뭘요. 밍님이 잘 따라와 주시는 덕이죠."

"허허. 전 당연히 해야 할걸 할 뿐인걸요."




베드에 무릎을 꿇은 채 진행되는 스쿼트.

서서 스쿼트를 하기엔 몇 개 하지도 않았는데, 상체의 보상작용이 너무 심하게 오다 보니 그것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기 위한 대체재로 운동을 하는 중.


"오 밍님 이제 잘하네요."

이 한마디와 동시에 저항을 주기 시작하는 치료사.


"선생님. 갑자기 난이도가 올라갔는데요..?"
"당연하죠. 저항 없인 이제 잘하시잖아요. 운동은 힘들게 해야 운동이죠."


그치.. 맞는 말이다. 힘들어야 운동이지. 치료사의 참말에 차마 무어라 반박할 수 없더라.

그리고 다른 시간에 평행봉에서 계속되는 쪼그려 앉았다 일어나기.


"그거 지금 하면 상체 힘 많이 들어갈 텐데~"


다른 시간을 담당해 주는 치료사가 한마디 말을 건네온다.

기막히게도 그 말이 맞아떨어진다.

앉았다 일어섬과 동시에 오른발이 안쪽으로 모이면서 허리와 상체의 힘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더라.

한 3개가량 꾸역꾸역 동작을 해낸 후엔 더 이상의 근력이 남아나지 않는다.


"거 봐요. 제가 그럴 거라고 했죠?"


귀신같네. 역시 전문가는 남다르군.




2022년이 지나가고, 2023년이 밝아온다.

입원 전까진 어차피 지구의 자전과 공전으로 인해 나타나는 해돋이에 뭘 그렇게 의미를 담나 싶어 거들떠보지도 않던 새해 해돋이 행사.
병원에 있으니 그간 쌓아온 가치관에 변화가 생기는 듯싶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해돋이를 보기 위해 아침 부지런히 옥상에 올라 자리를 잡는다.
한 겨울의 아침 기온은 쌀쌀하기만 하다.
옥상에 쌓인 눈은 아직 채 녹지 않은 채 일부는 살얼음을 형성하고 있다.
그 사이를 휠체어로 지나가려니 바퀴가 헛돈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휠체어를 움직인다.

KakaoTalk_20230602_114157296.jpg 눈 쌓인 옥상. 해돋이를 보기 위한 자리를 찾고 있다.


조금 일찍 올라왔던 탓일까?

옥상 위엔 나 홀로 덩그러니 휠체어 위에 앉아 한겨울 칼바람과 친구놀이를 한다.

일출 시간이 다가옴과 동시에 하나둘 옥상에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다만 날이 추운 탓인지, 지난 추석 때에 비해 적은 사람들이 옥상 여기저기 서성이며 해돋이를 기다린다.


낮게 깔린 구름 너머 붉게 타오르는 해가 보이기 시작한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들리는 핸드폰 카메라 셔터음. 너도나도 해돋이를 촬영하기 바쁜 재밌는 광경이 펼쳐진다.


'2023년 중으론 꼭 퇴원하고 싶어요.'


한낱 공전과 자전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아무리 외쳐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간절함을 담아 속으로 되뇌인다.

KakaoTalk_20230602_085023013.jpg 붉게 떠오르는 2023년의 첫날. 올해 중으론 나갈 수 있겠지?




"밍아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대방어도 돼?"
"그럼 안될 거 뭐가 있니."


아빠한테서 걸려온 전화.
2022년도 친구들과 대방어를 먹고 싶었으나, 내 행태가 이러니 밖으로 나가 먹을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이에 대방어 배달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찰나에 아빠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때다 싶어 낼름 대방어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한다.(?)

근데 하필 낮에 치킨 시켜 먹은 날, 저녁에 대방어를 포장해 오셨다니..

이전에 말한 대방어 예정일보다 하루 앞당겨 포장해 오셨는데, 예상치 못하게 점심저녁 둘 다 거하게 먹게 됐네 껄껄.

아 몰라 일단 먹고 생각하자.


대방어는 한 점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마무리했고, 치킨은 매 끼니별로 나누어 먹는다.

대방어는 남기면 찝찝해.. 치킨은 나눠먹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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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개를 같은 날 먹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허허.




8월 3일부터 시작된 입원생활. 2022년의 연말이 지나갔음에도 난 여전히 병상이다.

처음 병을 마주했을 때 나를 반겨준 억울함과 서러움 그리고 울분.

이 감정들을 애써 무시하기 위해 억지로 밝은 척하려고 했던 때가 스쳐 지나간다.

아직까지도 종종 찾아오는 이 감정 3세트는 나의 텐션을 나락으로 데려가기 일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현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버둥거리며 현실을 외면코자 했던 시간들이 점차 그려려니 지나가는 시간들로 변하기 시작한다.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구나, 언젠간 퇴원하겠지 하는 태연함과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는 의연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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