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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일상을 잃어버렸다-2
03화
쪼그려 앉기와 즐거움 사이, 그 어딘가에서 #22
길랭바레증후군, 스물두 번째 이야기
by
밍밍한 밍
May 29. 2023
○ 2022년 12월 셋
째 주
어느샌가 보행보조기로 걸음걸이를 연습하는 것이 하루 중 일과로 자리잡는다.
아침, 점심으로 치료 텀 15~20분 간 병동 로비를 걸어본다.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다리 움직임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치료사의 피드백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의식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어느 날은 5분 남짓 걸었을 때 오른쪽 무릎 안쪽 관절에 약간의 통증이 찾아온다. 스스로 정한 시간을 채우지 못했다는 생각하에 통증을 참고 꾸역꾸역 15분의 시간을 채운 후 자리로 돌아온다.
무릎을 콕콕 찔러오는 이 감각은 단순히 근육통에 의한 통증이 아님을 나에게 알려온다.
'야야 밍아 나 관절인데, 나 좀 살려줘.'
'쉬면 괜찮아져.'
얼마간 쉬고 나면 사라지는 통증.
치료시간에 치료사에게 통증에 관해 물어본다.
"선생님, 걸을 때 오른쪽 무릎 안쪽에 콕콕 찌르는 통증이 오더라구요."
"아 그래요? 지금은 좀 어떠세요?"
"좀 쉬면 통증은 사라지긴 해요."
"다행이네요. 밍님 무릎 관절을 잡아주는 근육이 약해 관절에 무리가 가는 거일 수 있어요. 아프면 무조건 쉬세요. 쉬는 것도 중요해요."
"네. 알겠습니다."
충격 흡수를 하지 못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군.
참 많은 걸 배워가는 시간의 연속.
"밍님 평행봉 잡고 쪼그려 앉았다 일어나 볼게요."
"선생님, 이거 될까요?"
"할 수 있어요. 봉 잡고 있으니까 괜찮아요."
평행봉에 의지한다 한들 당최 몸이 움직여주질 않는다.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고, 평행봉을 잡고 있는 팔은 부들부들 떨리고, 다리는 안쪽으로 말려들어가고
총체적 난국으로 어찌어찌 쪼그려 앉았다 일어나기를 2~3차례 반복한다.
"밍님 팔에 힘 빼고, 다리 안쪽으로 모아지면 안 돼요. 조금 쉬었다 할게요."
"아니에요. 한 개만 더 하고 쉴게요."
"가능하시겠어요? 무리하시면 안 돼요."
"후"
숨을 크게 한 번 내쉬고 한 번 더 쪼그려 앉았다 일어나기를 수행한다.
치료사가 동작 수행 시 알려준 주의할 점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발도 발이지만, 일차적으로 팔에 힘이 당최 빠지질 않는다. 이것 또한 갈 길이 머네.
전기 점검으로 인해 정전이 된 병. 오묘한 분위기가 병동을 감싼다.
외부의 햇빛이 들어오고 있음에도 어딘가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느낌이 든다.
이래서 공포 관련 이슈에 병원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구나. 절로 납득되는 아침의 정전.
아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둘걸. 왜 찍어두지 않았지.
여느 때와 다름없이 SCI FIT을 땀 흘려가며 열심히 돌리고 있던 때.
왼쪽 허벅지인지, 골반인지 뼈 하나가 툭 빠지는 느낌이 든다. 이게 무슨 느낌인가 싶다.
하지만 통증은 없어 한 번 툭 빠지는 느낌은 괜찮을 거란 생각에 그냥 무시한 채 돌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빠지는 나의 관절.
허벅지를 휘감고 있는 세라밴드를 풀고, SCI FIT의 강도를 낮춰 계속 돌리기 시작한다.
재미없는 시간일지언정 해야 하는 건 해야 하기 때문.
이 현상에 대해 주치의 회진 때 질문을 해보기로 한다.
"밍님, 치료 시간에 너무 집중하고 계시는 거 같아 치료하는 걸 보다 가고 있거든요. 열심히 잘해주고 계시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제가 SCI FIT을 돌리다가 왼쪽 허벅지 쪽 관절이 툭 빠지는 느낌이 있는데 혹시 왜 그런 건지 알 수 있을까요?"
"아 그러시구나. 지금 허벅지랑 골반을 잡아주는 근육이 약해서 해당 부위를 제대로 잡아주지 못해, 말씀해 주신 증상이 나올 수 있거든요. 혹시 통증도 있으신가요?"
"그렇군요. 통증은 없어요."
"그럼 다행이네요. 그럼 열심히 잘 운동해주고 계시니까 근력이 일정 수준 이상 회복되면 그런 현상도 자연스레 없어질 거예요."
"감사합니다."
"컨디션은 좀 어떠세요?"
"컨디션은 괜찮습니다. 근육도 주차마다 조금씩 붙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좋아요. 지금 운동 강도가 너무 과하진 않으시죠?"
"네. 수~목 즈음 되면 근육통 마냥 뻐근함이 오긴 하는데, 움직일 때마다 아프거나 하진 않아요. 뻐근함도 주말 쉬면 사라지구요."
"아 그러시구나. 그럼 지금 강도 유지하도록 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밍님 바닥에 있는 물체 한 번 잡아볼까요."
"넘어지진 않겠죠..?"
"안전장치는 확보해 뒀기 때문에 괜찮아요. 넘어질 거 같다 싶으면 뒤에 베드 있으니까 뒤로 주저앉으시면 돼요."
"후"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시고 바닥에 있는 물체를 잡아본다.
온몸에 흐르는 긴장감. 와 쉽지 않네.
이 긴장감 덕에 다리는 뻣뻣하게 굳어 접혀 내려가지 않고, 허리만 숙 내려가는 형태가 나온다.
덩달아 상체 역시 하체 못지않게 많은 힘이 들어간다.
"밍님 긴장감 좀 푸세요. 온몸에 힘이 장난 아니에요."
"넘어질까봐 무서워서 그런가 봐요."
"안 넘어져요~ 괜찮아요. 다시 서서 긴장 풀고 다시 해볼게요."
"후"
"괜찮아요. 안 넘어져요. 자 다시."
머리는 긴장감을 좀 내려놓으라 아우성이지만 몸은 택도 없지 ^^
"밍님 이런 자세 해본 적 없으시죠?"
"네, 발병 이후론 지금이 처음이에요."
"몸이 익숙하지 않아 긴장하고 있을 가능성이 커요. 점차 괜찮아질 거예요. 바닥에 있는 물체를 줍고 일어날 때, 지금 허리 힘이 많이 쓰이고 있어요. 이게 몸이 긴장하고 있어 허리 힘으로 들어 올리는 거일 수 있거든요. 이러면 나중에 허리 아파요."
"아 그래요? 어쩐지 허리가 뻐근하더라구요."
"그럴 수 있죠. 일어날 땐 무릎-엉덩이-상체 순으로 일어나셔야 해요. 무릎과 엉덩이가 펴지면 상체는 자연스럽게 펴질 거라 허리에 힘도 안 들어갈 거예요."
"무릎-엉덩이-상체. 네 알겠습니다."
기억할 것. 무릎과 엉덩이가 펴지면 상체는 자연스레 펴진다. 냅다 허리부터 들지 말자.
"하루 스케줄 중 밍님이랑 하는 시간이 제가 활력을 얻어가는 시간이에요."
"네? 저랑 하는 시간이요? 왜요?"
"밍님 운동시키는 거 열심히 따라오는 거 볼 때마다 뿌듯해요. 그 모습 보면서 에너지를 얻어가요."
"헉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그만큼 열심히 따라와 주셔서 오히려 더 감사하죠."
치료사가 해보라는 동작을 수행하려고 하지만 100% 완벽한 동작으로 수행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찌어찌 하나라도 조금 더 해보려는 그 노력이 보기 좋다는 치료사들.
모든 치료사들이 그렇게 이야기해 주신다. 난 할 걸 하려는 것뿐인걸.
"역시 괴롭히는 맛이 있어요. 밍님이랑 하는 시간은 엄청 빨리 가네요."
"밍님은 타격감이 좋아요. 재밌어요."
정말 즐겁다 ^^
노트북을 구매한 후 새로운 재미가 하나 더 생겼다.
자취방의 짐을 빼며 게임 컨트롤러를 가져온 것도 신의 한 수. 그동안 잊혀졌던 겜돌이의 세포가 다시금 눈을 떴기 때문.
겜돌이 세포가 눈을 뜨기 시작했다. 좌 스컬, 우 위쳐3
이 기회에 그동안 구매만 하고 라이브러리에 잠들어있던 것들을 하나씩 설치하고 플레이한다.
당장은 스컬과 위쳐3.
아침, 점심, 저녁 틈날 때마다 게임 플레이에 여념이 없다.
특히 위쳐3는 차세대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며 한글더빙이 추가되었기에 몰입감이 한층 더 되살아났다.
반복 플레이를 하면 금방 질려하는데, 위쳐3가 최초로 그 지루함의 벽을 가뿐히 넘어섰다.
올 해의 크리스마스는 병원에서 위쳐3와 함께 지내간다.
연말은 밖에서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쉬운 건 사실이지만 이젠 그냥 그려려니 지나간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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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ch Book
어느 날, 일상을 잃어버렸다-2
01
다가오는 연말과 따스함 사이, 그 어딘가에서 #20
02
자취방 정리와 아쉬움 사이, 그 어딘가에서 #21
03
쪼그려 앉기와 즐거움 사이, 그 어딘가에서 #22
04
새로 뜨는 해와 가벼움 사이, 그 어딘가에서 #23
05
또 장염과 고마움 사이, 그 어딘가에서 #24
어느 날, 일상을 잃어버렸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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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랭바레증후군으로 1년 간의 입원 생활을 거쳐 일상에 적응 중입니다. 삶의 일부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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