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구와 훈훈함 사이, 그 어딘가에서 #27

길랭바레증후군, 스물일곱 번째 이야기

by 밍밍한 밍

○ 2023년 1월 넷째 주


"밍아 명절음식은 챙겨 먹었니? 좀 가져다줄게. 지난번이랑 비슷한 시간에 가면 될까?"

"네! 지난번이랑 비슷하게 와주셔도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시간 맞춰서 갈게."


명절을 맞아 이모할머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손수 명절음식을 챙겨주시겠다고..

이모할머님의 음식을 먹다 보면 나도 이런 맛을 내는 음식을 하고 싶단 생각이 든다.

퇴원 후 자취를 다시 시작하면 끼니를 간단하게 해치우기 위한 조리 비슷한 요리가 아닌, 진짜 맛 내는 요리를 시도해 봐야겠단 다짐을 한다.

KakaoTalk_20230616_092603099.jpg 이모할머님께서 손수 챙겨주신 음식.


"밍님 벽 기대고 설 수 있으시겠어요?"

"음.. 좀 불안하긴 할 거 같은데 보조테이블을 짚고 서있을 수 있을까요?"

"제가 잡아드려도 괜찮을까요?"

"네. 괜찮습니다."

"자 벽에 잘 기댄 채 그대로 쭈욱 상체만 내려올 거예요."

"아 벽에 기댄 채 스쿼트 하는 거죠?"

"네! 맞아요.. 혹시 해보신 적 있으세요?"

"여기 와서 얼마 안 됐을 때 해봤는데, 그땐 다리 조금만 힘 들어가도 주저앉을 거 같았어요."

"아 그러셨군요. 그럼 조심하면서 해보도록 할게요."


처음 동작을 수행했던 때에 비해 다리에 힘이 더 들어오며, 조금이나마 더 잘 버텨지는 것을 체감한다. 살짝만 앉는 제스처를 취해도 훅 하고 꺼져버릴 것 같던 초기와는 달리, 이젠 조금이나마 몸이 내려가지더라. 하지만 오른쪽 허벅지에선 버틸 힘이 부족하니 몸이 자연스레 왼쪽으로 틀어진다. 왼 허벅지의 힘이 상대적으로 세다 보니 해당 부위에 힘이 더 실리고, 그 작용으로 자연스레 몸이 틀어지는 것이다.


"오른쪽 허벅지에 힘주세요. 몸 틀어지면 안 돼요."


생각은 하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서 더 의도적으로 오른쪽 허벅지에 힘을 주기 위해 안간힘을 써보지만, 시도만 할 뿐 결과는 왼쪽으로 틀어지는 몸뿐이다.




오른쪽 종아리 뒤편에 근육통이 생겼다. 이 부위는 또 처음인데..?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자연스레 회복될 것을 뻔히 아는 사실이지만, 그 불편함이 날로 더해가는 실정. 하루라도 더 빨리 통증이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에 치료사에게 근육 좀 풀어달라 요청한다.


"선생님 저 오른쪽 무릎 뒤쪽에 근육통이 온 거 같은데 풀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 그럼요! 여긴 어쩌다 근육통이 생겼어요?"

"발판에 발 올려놓고 몸 전체를 들어 올리는 거 하다가 무리가 왔나 봐요."

"흠.. 그럴 수 있죠. 왼쪽은요? 왼쪽은 안 아파요?"

"네. 왼쪽은 통증이 하나도 없어요. 근육통 느낄 근육이 없는 건 아닐까요?"

"근육도 아직 안 붙었고, 신경이 돌아오는 중이라 그럴 수 있어요. 후에 시간 지나고 근육 붙기 시작하면 그땐 아플 수도 있어요."

"오.."


그와 동시에 치료실에 퍼지는 비명소리.


"아악. 악. 잠깐 잠깐만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후.. 아니.. 아니에요."

"그쵸? 누가 보면 환자 괴롭히는 줄 알겠어요."

"예? 아니 즐거워 보이시는데 괴롭히는 거 아니에요?"

"에이~ 아니에요."

"악 아악. 잠깐 잠깐."


다음날 그 부위엔 멍이 들었다.


"선생님 이거 멍든 거 맞죠?"

"어 맞네요. 제가 너무 세게 했나 봐요. 미안합니다. 그 부위 아프신가요?"

"아뇨. 움직이는 데엔 지장 업어요. 근육통도 조금씩 괜찮아지는 중이에요."

"다행입니다."




치료실에 새로운 기구가 들어왔다. 보아하니 레그 익스텐션, 렛 풀 다운, 체스트 플라이 등을 할 수 있는 기구로 보였다. 다른 층에 있던 기구를 가져왔다던데.. 처음 본 기구는 한번 써주는 게 또 예의 아니겠는가?


"선생님 저 새로 들어온 거 써봐도 돼요?"
"당연하죠. 자 이동합시다."


레그 익스텐션을 수행한다. 겨우 5kg일 뿐인데.. 웬걸 오른쪽 허벅지는 쥐어터질라 그러네.
반면 왼쪽 허벅지는 나름 잘 버텨준다. 10회도 다 채우지 못했는데, 오른쪽 허벅지는 힘이 다 빠져 너덜거리고, 왼쪽 허벅지 혼자 무게를 지탱하며 운동을 한다.


"아니 밍님 왼쪽 허벅지만 운동을 하면 안 되죠. 오른쪽을 해주셔야죠."

"하 힘이 안 들어와요."

"조금 쉬었다가 할게요."

"선생님 쉬는 시간 동안 상지도 할 수 있을까요?"

"좋아요."


렛 풀 다운을 시도해 보려는데, 팔의 가동범위가 당최 나오질 않더라. 아쉽게도 렛 풀 다운은 포기한 채 체스트 플라이를 열심히 시도한다.


"오 이런 자극 오랜만이에요."

"자 이제 하체도 하셔야죠?"

"하... 맞아요.."


또다시 털리는 나의 허벅지. 살려줘.

2299623_1.jpg 이거랑 거의 흡사한 기구가 들어왔다.


치료시간 중 내가 쓰던 휠체어를 가져오는 치료사.


"선생님 제 휠체어는 왜요?"

"밍님 휠체어 끌고 가 본 적 있으세요?"

"아뇨. 아직은 손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휠체어가 뒤로 넘어갈까 봐 시도해 본 적 없어요."

"흠. 한번 시도해 볼까요?"

"네. 좋아요."


역시나 뒤로 훙 하니 넘어가려는 휠체어.


"밍님 잠시만요."


그러더니 휠체어에 앉는 치료사.


"이러면 좀 괜찮지 않을까요?"

"넘어가진 않겠죠?"

"에이~ 밍님이 팔에 힘을 빼시면 되죠~"

"아.. ㄱ..그쵸 ^^"


그렇게 치료사를 휠체어에 태운 채 병실까지 끌고 간다.

왼쪽 골반은 아직 버틸 힘이 부족해서 그런지, 툭툭 빠지는 느낌이 든다. 덩달아 오른손 힘도 빠지지 않는 건 덤. 그래도 엎어지지 않고 왔으면 됐지 뭐.




주말 저녁, 로비에 나와 이야기를 하던 도중 러시아식 만두를 먹어본 적 있냐는 질문이 들어온다.


"밍아 너 러시아 만두 먹어본 적 있어?"

"러시아식 만두요? 아뇨. 먹어본 적 없어요."

"그럼 한번 먹어봐. 우리 병실 러시아 환자 가족이 싸 온 건데 형은 향신료 때문에 못 먹겠더라."

"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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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이 독특했던 러시아 만두와 통영 굴.


특유의 향이 나긴 했지만 거북함이 드는 정돈 아니었다. 후추 비슷한 향이었지만 그것보단 묵직함이 더 컸다. 소스는 칠리소스 같기도 하고.

우리나라 고기만두, 김치만두, 갈비만두 등의 만두 마냥 만두피가 있고 그 속을 재료가 채우는 형태가 아닌, 만두피라 하는 것들이 겹겹이 층을 이루고 그 사이사이 속이 조금씩 가미된 느낌을 줬다. 하나로도 속이 든든해진다.


병실에선 통영에서 굴을 보내주었다며 통영 굴을 초장에 버무려 노나 주셨다.

와 얼마 만에 먹어보는 굴인지. 굴의 싱싱함에 미세포가 감동하더라.




평일 내내 미친 듯이 땀 흘려가며 운동하는데 이런 먹는 보람도 함께 따라오니 더할 나위 없이 좋더라.

운동은 운동대로 치료사의 정성 어린 손길과 괴롭힘(?)이 느껴지고, 병실에선 환자들 간의 훈훈한 정이 피어오르는, 나쁘지만은 않은 그런 생활이 이어진다.


인복과 먹을 복은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을 느끼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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