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탄력과 첫 외박 사이, 그 어딘가에서 #39

길랭바레증후군, 서른아홉 번째 이야기

by 밍밍한 밍

○ 2023년 4월 셋째 주


"밍님, 치료시간 중 운동에 집중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운동하시는 거보다 가곤 했는데, 이젠 어려운 자세도 잘하시네요."


세트 사이 잠시 쉬는 시간에 회진을 돌던 주치의. 밸런스볼 위에서 버티는 모습과 덤벨 데드리프트 자세를 수행하는 걸 지켜본 후 말을 건넨다.


"이전보다 회복세도 훨씬 좋아지신 거 같아요. 컨디션은 어떠세요?"

"날이 갈수록 근력이랑 신경이 조금씩 돌아오는 게 느껴지는 거 같아요. 확실히 발병 초기에 비해선 회복속도도 좀 더 붙은 느낌이구요. 아 그런데 스쿼트나 수동자전거 돌릴 때 종종 무릎에 통증이 와요. 콕콕 관절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요. 근데 쉴 땐 통증이 없고, 운동할 때 간헐적으로 그런 통증이 생기더라구요."

"아 그러시구나. 대퇴슬개골 쪽 통증으로 보이는데, 지금 근력이 제대로 잡아주지 못하다 보니 통증이 발생할 수 있거든요. 시간이 지나 근력이 회복되면 나아질 확률이 높아요. 쉴 때도 아프시면 엑스레이 같은 걸 찍고 확인해 보도록 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발병 초기엔 한 달이 지날 무렵에야 가동범위가 미세하게 좋아졌음을 느꼈다면, 23년 4월에 들어선 약 보름의 시간이 지나면 가동범위나 근력이 좋아졌다는 게 느껴진다. 시간이 갈수록 가동범위가 늘고, 그에 따라 운동 수행능력도 늘어나면서 회복 속도에 탄력이 생긴다.




선 상태로 런지 자세를 시도한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내려가는 거지? 한 발을 앞으로 내디딘 상태에서 무릎을 접을 수는 있는 거지?


"밍님~ 내려가셔야죠. 가만히 서 계시면 어떡해요~"

"선생님, 이거 어떻게 내려가는 거예요? 저 내려가는 법 잊어버린 거 같아요. 발이 안 움직여요."

"자, 그럼 제가 시범을 보여드릴게요."


옆에서 런지 자세를 거뜬히 해내는 치료사.


"잘 보셨죠? 고관절~ 고관절 쪽에 집중하셔야 해요."

"네. 알겠습니다."

"아니 밍님~ 내려가셔야죠~"

"아 이건 아직 안될 거 같아요. 포기포기."


무릎을 어떻게 구부리는지 도저히 감이 안 오는 것과 더불어 설령 내려간다 한들 그대로 주저앉아버릴 거 같아 일찌감치 포기한다. 지금은 안전을 제일 우선시할 때니까.

자리로 돌아와 데드리프트를 수행한다.


"밍님 팔에 모래주머니 차고 해볼까요?"

"오 좋아요!"

"그런데 몸에 붙어있는 거라 무게 부하가 온전히 실리진 않을 거예요."


양팔에 달리는 2kg 모래주머니 한 쌍. 그렇게 무게를 살짝이나마 올린 채 데드리프트를 한다.


"어어 무릎 안쪽으로 말리면 안 돼요."


처음 동작을 수행할 땐 잘 된 거 같은데, 반복 횟수가 하나하나 쌓여갈수록 힘도 덩달아 빠지면서 무릎이 안쪽으로 말린 채 몸이 올라가는 현상이 발생한다. 덩달아 고관절을 뒤로 빼며 몸을 숙일 때 역시, 왼쪽으로 틀어지며 내려가는 것이 느껴진다.

이름하야 총체적 난국.


주중에 편지 한 통을 수령한다. 갑자기 웬 편지?

무엇인고 하니 서울오라토리오 정기연주회 초대권. 입원 전에 매 월 정기후원했던 연주단체였는데, 입원 후 후원을 중단했음에도 초대권을 보내주셨다. 헉...


오라토리오 형태의 미사곡을 연주하는 형태라 처음 접했던 무대는 마냥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몇 번 연주회를 보고 나니 오히려 마음 편안해지는 시간을 선사해 주었던 연주단체.

퇴원 후 자리를 잡게 되거늘, 후원활동을 재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끄집어낸다. 다음 정기연주회는 갈 수 있겠군. 안 그래도 연 초에 서울오라토리오 팀장님께서 안부를 묻는 연락을 주셨었는데.. 조만간 연락드려야겠다.

KakaoTalk_20230707_210533676.jpg 서울오라토리오에서 보낸 정기연주회 초대권과 연주회 포스터가 담긴 우편물.


네발 기기 자세에서 발을 옆으로 들어 올린다.

오른발을 곧잘 올라가는 반면, 왼발은 아직 치료사의 보조가 필요하다. 덩달아 몇 번 채 올리지 않았음에도 왼쪽 무릎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찾아온다.

이런 통증은 스쿼트를 일정 개수 이상 반복할 때 역시 마찬가지. 처음 몇 번은 아무렇지 않다가 점차 횟수가 많아질수록 왼쪽 무릎을 콕콕 찌르는 통증이 나를 반겨온다.


"선생님 저 왼쪽 무릎에 콕콕 찌르는 통증이 와요."

"자꾸 왼쪽 다리에만 체중부하가 걸려서 그래요. 오른쪽 다리에도 힘 빡 주고! 내려가야죠."


스쿼트를 할 때 발전된 부분이 하나 생겼다면, 이젠 두 손을 자유로이 허공에 둔 채 스쿼트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전까진 몸의 균형을 다리가 지탱하지 못해. 항상 손을 벽이나 보조테이블 등에 두어 균형을 잡아둔 상태에서 수행이 가능했었다. 이젠 드디어 이를 졸업하고, 온전히 독립된 상태에서 스쿼트가 가능해졌다.


한 발 더 나아가 한 발 내디딘 채 바닥의 물건을 집는 동작을 수행한다. 별 거 아닌 거 같은데, 별 거 아닌 게 아닌 다소 복잡하게만 느껴지는 동작. 한 손으로 평행봉을 잡고 몸을 숙여 바닥의 물체를 집어 본다. 다리에 많은 힘이 들어감은 물론이거니와 평행봉을 잡고 있는 손에도 못지않은 힘이 들어간다.


"다리에 힘 빡 줘서 버티세요! 손에 힘 너무 들어가요."

"후 그게 맘대로 안 돼요, 선생님. 근데 이 자세가 맞아요?"

"알죠. 그래서 시키는 거예요. 네, 맞아요. 지금 잘하고 계세요."


동작을 수행하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 몇 번이고 이 동작이 맞는지 질문한다.

그나저나 이 얄미 치료사를 어떡하지??? 하루는 치료사가 자신의 양말이 더러워졌다며 운을 띄운 바 있다.


"밍님 이거 보세요. 양말이 까맣죠? 오늘 오전엔 하앴는데, 금세 까매졌어요."

"?? 저한테 어쩌라는..거죠..?"


단 두 마디의 말이 오고 갔을 뿐인데, 옆에서 듣던 치료과장님이 대뜸 빵 터지시더니


"밍님 T죠?"


라고 여쭤보셨다.

애당초 MBTI에 크게 관심을 갖기 않고 그냥 내 결과만 알고 있던 와중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한 번에 맞췄지?


"어? 어떻게 아셨어요?"

"아니 어쩌냐고 대답하시는 거 보면 딱 알죠."


흠 그렇구나. 그럴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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얜 대체 어디서 이런 이상한 걸 주워듣고 가져오는 걸까? 그냥 미지근한 물이잖아


"너네 음양탕이라고 앎?"

"음양탕? 그게 뭔데?"

"투명한 컵에 뜨거운 물 120ml 넣고, 찬물 180ml 넣고 10초 동안 생기는 소용돌이 본 다음에 마셔. 그게 음양탕이야."

"?? 미지근한 물 아님?"

"어허! 음양탕이야."


음양탕 이슈로 잠시 시끌벅적해진 친구들 카톡방.

오 이거 치료사들한테 써먹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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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이 역류하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으니 꼭 유의해서 섭취하자! 음양탕!


음양탕을 기억해 뒀다가 치료시간에 모든 치료사에게 이야기를 해본다.


"선생님, 음양탕이라고 아세요? 투명한 컵에 뜨거운 물 120ml를 먼저 넣고 찬 물 180ml를 넣으면 생기는 소용돌이를 10초간 관찰한 뒤 마시는 거래요."


반응은 저마다 조금씩 달랐다. 나름 신기해하는 분이 계셨던 반면, 그거 그냥 미지근한 물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다. 그리고 진짜 소용돌이가 생기냐고 질문하는 분도 계셨다.


"뜨거운 물의 밀도가 찬 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워서 위로 올라가려고 하고, 반대로 찬 물은 아래로 내려가려 해서, 이로 인해 생기는 대류현상으로 소용돌이가 생길 수 있어요."

"아 그게 진짜 되는 거예요? 에이 뻥치지 마시구요."

"아니 진짜 생겨요, 선생님. 저 그래도 물리과예요."


예상외로 다양한 반응이 나올 줄 몰랐는데, 생각보다 재밌는 시간이었다.




입원 후 첫 외박을 다녀온다.

오이도 제방길을 걸어보고, 광교 호수공원을 걸어보고, 팔달산을 조금 걸어본다.

걷고, 걷고, 걷고.. 일정이 힘들었지만 군말 않고 걸어봤다. 결국 다 익숙해져야 할 것들이었기에.


우선 지팡이를 쓰는 게 많이 어색했다. 덩달아 다리 힘도 많이 부족하여 오른쪽 허리를 많이 끌어다 쓰다 보니, 오른쪽 허리만 뻐근한 건 덤.

지난 첫 외출과의 큰 차이점은 느껴지지 않았고, 단순히 조금 더 밖의 길바닥에 익숙해졌다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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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외박의 난이도는 생각보다 많이 어려웠다.


외박을 나오기 전 스스로의 걸음걸이를 동영상으로 촬영하였다.


팔자걸음도 팔자걸음이지만, 매 걸음마다 후들후들 떨리는 게 정말 스릴 넘친다. 그래도 아예 일어서지 못했던 작년 8월을 떠올려보면.. 약 9개월 동안 장족의 발전이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올해 중으론 무조건 나갈 수 있겠다란 희망의 불씨가 타오르던 4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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