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랭바레증후군, 마흔 번째 이야기
조금 폭신한 발판 위로 올라가 몸을 좌우로, 치료사가 힘을 주는 방향에 맞춰 움직인다.
작년 9월 즈음에 처음 올라가 봤던 발판. 당시엔 발판 위에 발을 올려놓기 무섭게 미친듯한 떨림이 오며, 중심 잡고 서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당시 기억이 강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어 지레 겁부터 먹고 조심스레 발판 위로 몸을 옮겼다. 어라? 발이 막 떨리지도 않고, 균형도 얼추 잡히잖아? 좌우로 몸을 흔들고 있는 와중에도 생각보다 잘 버텨지네. 오. 신기하다.
좌우로 몸을 미는데도 버티는 모습을 보는 치료사도 덩달아 신기해한다.
다만 왼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거나, 몸을 기울일 때 무릎에 무리가 오는 게 느껴진다. 확실히 내전근의 힘을 많이 끌어 쓰고 있구나.
"옆으로 미는 건 잘 버티시니까 이제 앞뒤로 밀어볼게요."
발목에 윽 하는 힘을 주려는 찰나 고꾸라지는 듯한 모양새가 나온다. 두 손을 보조테이블에 올려놓고 있어 망정. 앞뒤로 저항을 주는 걸 버티기엔 아직 하지 힘이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서서 한쪽 다리를 내민 채, 뒷다리를 접으며 몸을 낮춘다. 그와 동시에 앞으로 내디딘 발의 발목은 들어보려 애쓴다. 아 이거 왜 이렇게 힘들어.
"뒷다리의 엉덩이에 힘이 들어오는 게 느껴지시나요?"
"어.. 허벅지에만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지고, 엉덩이에 힘이 들어오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 그러세요? 그럼 자세 풀고 일어났다가 천천히 앉아볼게요."
자극점을 찾는 것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네. 한두 번을 내리 반복하다 드디어 원하는 자극을 찾는다.
"오! 지금 딱 엉덩이에 자극이 와요."
"자 좋아요. 이제 10초 버텨볼게요. 하나 둘 셋..."
버티는 시간 내내 행여나 주저앉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기는커녕, 다리에 오는 자극 때문에 그나마도 있던 잡념이 사라진다. 아 10초 왜 이렇게 길어. 살려줘.
오랜만에 레그레이즈를 저항 없이 맨 몸으로 수행한다. 그런데 이게 웬걸? 지금까지 저항을 줬을 때보다 오히려 코어에 자극이 더 잘 오고 있잖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선생님, 저항 없이 했을 때 코어 자극이 더 와요."
"아 그러세요? 그럼 지금까지 제가 저항을 줬을 때 코어랑 고관절이 아닌, 다리 힘으로 들어 올렸다는 거네요."
"그러게요.. 그동안 했던 게 아예 타깃이 잘못된 건가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선 밍님 하지 전반적인 근력이 부족했으니까 이것도 나름 도움이 됐을 거예요."
와, 이걸 이렇게 포장해 주시네. 역시 전문가는 달라. 그리고 한 마디를 더 건네는데...
"아 밍님 오늘은 땀을 별로 안 흘리시네요? 오늘 운동이 쉬웠나 봐요."
"네? 아니 선생님 무슨 말씀이세요. 저 지금 너무 힘들어요."
"아~ 목에 땀이 안 흐르는데.. 이거 제가 너무 아쉽고 자존심이 상하네요."
"네? 아니 제가 땀을 안 흘린다고 왜 선생님 자존심이 상하는 거예요??"
"아~ 오늘 열심히 안 시켰다는 그런 느낌이죠."
"아니 무슨 말씀이시지.. 여기 치료사들 다 이상해요. 환자의 고통을 즐기는 거 같아요."
내 얼굴과 목에 흐르는 땀이 치료의 지표라니.. 허 참 미치겠네.
"아 맞다. 선생님, 데드리프트 할 때 왼쪽 무릎 불편하던 거 이제 사라졌어요."
"그만큼 밍님의 다리에 근력이 붙고 있다는 거지요. 좋습니다."
"다 훌륭한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아유~ 뭘요. 다 잘 따라와 주신 덕분이죠."
한 발로만 버티며 몸을 숙여본다. 상체가 50도 정도 기울였을 즈음, 다리는 더 이상 뒤로 올라가지 않고 상체만 숙여진다.
"어어 너무 숙이시지 마시고, 다리랑 상체가 1자로 유지되는 부분까지만 숙일게요. 상체만 과하게 숙이게 되면 허리에 무리가 오거든요."
"아 그래요? 어쩐지.. 허리가 조금씩 뻐근해지는 거 같더라구요."
"허리 다치기 않게 조심하세요."
"에이~ 허리 무리와도 며칠 쉬면 괜찮아져요~"
"아니~ 그래요! 본인 허리지, 내 허린가~"
오랜만에 계단을 함께 오른다. 뒤에서 보조해 주는 치료사.
"오른발에 힘줘서 올라갈 때, 엉덩이가 자꾸 빠져요. 힘 빡 줘서 엉덩이 빠지지 않게 고정해 주세요."
"아? 엉덩이가 빠져요?"
"네. 그냥 딱 봐도 빠지는 게 보일 정도로 빠져요. 모르셨어요?"
"네. 좀 전에 알았어요. 전 당연히 안 빠진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이래서 옆에서 봐주고 자세를 교정해 주는 사람이 필요한 거구나.
담당하는 치료사들이 공통으로 나에게 하는 말이 있다. 타격감이 좋은 환자.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환자 중에 타격감이 제일 좋고, 치료시간도 가장 빨리 흘러간다고 이야기한다.
"밍님은 해보자는 운동들은 다 해보시려고 하잖아요. 그런 모습 보면 뭔가 뿌듯하고, 재밌고 그래요. 동작들이 신경이나 근육 때문에 못 나오는 거지, 안 하시려는 건 아니니까요."
"맞아요. 곧 제가 해야 되는 거니까요. 동작을 못하는 거지, 안 하는 건 아니니까요. 당장 해야 하는 일이 이거니까 하는 거일 뿐인걸요."
"그래서 더 재밌고, 뿌듯하고 하나라도 더 알려드리고 싶어서 그렇죠~"
"아 알죠알죠~"
고통과 비명과 훈훈함이 공존하는 그런 시간의 연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