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랭바레증후군, 마흔두 번째 이야기
지난주와 같은 운동 사이클을 수행한다.
레그레이즈 - 크런치 - 벽 잡고 런지 - 데드리프트. 지난주와 같은 횟수, 같은 세트를 수행하고 난 후 힘에 덜 부친다는 느낌을 받는다. 체력, 근력에 약간의 성장이 있었구나.
추가로 베드에 엎드려 두 발을 모은 채 들어 본다. 아 이건 엉덩이가 아니라, 허리의 힘을 끌어다 쓴다는 게 느껴진다. 금세 뻐근해지는 오른쪽 허리.
이후 남은 시간 동안 치료사의 보조 하에 병동을 조금 빨리 걸어보기로 한다. 넘어지지 않도록 코어를 지탱해 준 채, 치료사가 나를 앞으로 조금씩 밀며 전진한다. 익숙하지 않은 속도에 발목이며 골반이며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휘청거리기 바쁘다. 그저 넘어지지 않고 발을 들어 올린다는 동작에만 집중한다. 특히나 왼쪽 발목. 너덜거리는 발목에 의해 몸이 행여나 고꾸라지진 않을까 겁을 먹고 있다 보니 더 위축되는 듯한 몸뚱이. 그렇게 어영부영 속도를 내며 병동 한 바퀴 빠른 걸음을 어렵사리 소화한다.
얼굴과 목엔 몸의 긴장을 대변하듯 한바탕 땀 소나기가 내린다.
"아 밍님 땀 많이 흘리시네요. 뿌듯합니다. 오늘은 95% 정도 만족하네요."
나머지 5%는 어디로 간 거지?
오전 첫 타임을 소화한 뒤 수동자전거 위치로 어기적 어기적 움직인다. 잠시 몸을 기댄 채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갖는다.
"밍님 아침부터 샤워했어요?"
"후. 땀으로 샤워했어요."
얼굴과 목, 앞/뒷머리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수동자전거도 마저 돌리고 물 한바탕 끼얹으러 가야지. 이거 영 찝찝해서야 원.
"밍님 살 빠졌어요? 얼굴이 조그매졌어."
치료실과 병실을 오가던 중 간호사가 물어온다.
"여기 들어와서 찐 거 도로 빠졌어요!"
"어쩐지~ 얼굴이 점점 조그마해지는 거 같더라니."
먹는 양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신경이 재생되고 근육량이 늘며 이전에 비해 동일 시간 대비 칼로리 소모량이 늘어남에 따라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거 같다. 앞으로도 이런 현상이 유지됐으면 좋겠다.
"밍님 제자리 점프 해본 적 있어요?"
"여기 와선 없었어요."
"그럼 한번 해볼까요?"
"네. 한번 해보죠."
"하나 둘 셋!"
치료사의 구령에 맞춰 있는 힘껏 뛰어본다.
오! 발바닥이 땅에서 떨어졌다! 발병 후 처음으로 양발 모두, 그것도 동시에! 지면에서부터 떨어졌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발목에 힘이 없어 축 늘어진 느낌이 들지만, 그래서 심지어 왼발부터 지면에 닿기 시작했지만, 중력으로부터의 온전한 저항을 해낸 셈.
"한 1cm 정도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되긴 되네요."
"선생님, 그런데 무릎이 콕콕 찌르는 통증이 와요."
"발목이랑 고관절에 힘이 부족해서 충격 흡수를 못해, 착지할 때 충격을 무릎이 온전히 다 받았나 보네요."
"맞아요. 그런 거 같아요. 쉬면 나아지겠죠~"
"계속 불편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네."
덩달아 두 손 자유로이 스쿼트도 할 수 있게 됐다.
"오 뭐죠? 이젠 두 손 놓고 스쿼트도 할 수 있으시네요."
"그러게요. 이게 왜 되죠."
"자 그럼 투명의자 자세에서 한 발을 앞으로 내밀어 보세요."
"이거 어떻게 움직이는 거예요?"
"이렇게요."
"끄으으..."
된다고 하기 무섭게 운동강도를 올려버리는 치료사. 덕분에 허벅지가 터질 거 같다.
치료실 베드에 발을 올려놓는다. 그대로 계단 오르듯 몸을 올린다.
왼발을 중둔근의 힘이 부족하여 균형을 잡진 못하지만, 치료사의 보조 하에선 몽이 올라가지긴 하더라.
"자 이제 발 바꿔서."
오른발을 베드 위에 올려둔다. 그리고 힘을 준다! 주는데..
"??? 뭐 하고 계세요???"
"??? 힘 준 건데 안 올라가지는데요???"
"오른쪽 허벅지에 힘을 빡 주셔야죠."
"아니 분명 힘줬어요."
"아직 오른쪽 허벅지 힘이 많이 부족한가 보네요."
분명 힘을 준 느낌은 있는데.. 힘을 줬단 느낌만 있고 몸은 제자리에서 한 발을 올려놓은 그 자세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었다. 다리 근육만 꿈틀거릴 뿐, 몸의 높이엔 변화가 없다. 굳건히 지키고 있는 나의 자리와 굳건히 고수하고 있는 나의 자세.
"이제 좀 걸어볼까요?"
"넵."
"오 이제 골반 많이 안 틀어지네요. 오른쪽 발목 가동범위만 좀 더 나오면, 골반도 더 안정적으로 잡힐 거 같아요."
오른쪽 발목은 좀 많이 늘어나야 할 거 같은데 말이지. 그런 의미로 반 타원 구조물에 발을 살짝 올려놓은 후 무릎을 굽힌다. 발목에 엄청난 뻐근함과 뻣뻣함이 느껴진다.
"와 선생님, 발목 엄청 뻐근해요."
"그쵸. 가동범위가 잘 안 나오는데 거의 억지로 늘리려고 하다 보니 그럴 수 있어요. 제 힘으로 하는 것보다 밍님 본인 체중을 사용해서 늘리는 게 더 효과적일 거 같아요."
딱 한 번의 자세를 취했을 뿐인데, 오른쪽 발목에 얼얼한 뻐근함이 찾아온다.
와...
주말엔 고모, 고모부와 사촌, 이모할머니와 함께 점심을 먹는다.
내 발병 소식을 들었을 때, 행여나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다던 고모. 그로 인해 오히려 고모가 더 힘들어하셨다고..
"물론 지금도 가끔 감정이 널뛰기하는 것 마냥 오는 때가 있긴 해요. 그럴 때가 왔을 때 회복하는 탄력도 점차 빨라지고 있고, 점차 마음속 미련을 버리고 나니까 한결 더 편해지더라구요."
오히려 소승불교를 실천 중이라며, 열반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는 말을 꺼낸다.
나온 겸 경기도박물관과 수원시립미술관엘 들렀다.
경기도박물관에선 지석 기획전이, 수원시립미술관에선 가족과 미술관의 소장품, 2가지의 기획 전시가 진행되고 있더라.
지석, 무덤 속 돌에 해서체로 새겨진 글씨를 보며, 조상이 얼마나 예에 관해 중요시했는가에 대해 가늠해 본다. 아무도 보지 않을 무덤 속에 넣을 돌에, 그 사람에 대한 명성, 그리움 등을 새겨 넣고 보관함에 넣어 무덤에 함께 봉한 지석. 덩달아 해서체에서 오는 그 정갈함이란..
동방예의지국이란 단어에 어울리는 유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수원시립미술관의 기획 전시 중엔 미술관의 소장품에 대한 것이 맘에 들었다. 맘 편히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맘에 드는 작품을 맘껏 구경한 시간.
여러 작품 중 매듭이란 작품이 가장 맘에 들더라.
매듭이라는 하나의 큰 줄기를 단단히 붙들어 메고 있는 것과, 얇은 한 가닥의 매듭을 가까스로 붙들고 있는 것, 힘이 다해 매듭에서 이탈한 줄기를 보며. 어쩌면 인생도 이와 같은 하나의 거대한 매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병실로 돌아와선 뮤지컬 <세종 1446>을 시청하였다. 생각보다 세종에 관한 역사적 고증이 잘 반영되어 있음에 놀랐다. 물론 일부 장면에선 극의 극적 연출을 위해 왜곡된 건 있었으나, 그 부분은 어느 정도 가늠하고 보아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뇌리에 남는 넘버는 비록 없었으나, 왕위를 물려받은 직후 태조의 그림자에 갇혀 정무를 살피던 때부터 한글을 창시하던 말기까지, 세종 개인의 심리를 묘사한 것들이 상당히 흥미롭게 적용한 작품이었다.
전시던 공연이던 음악이던, 병원생활을 하는 와중에 틈틈이 즐기는 이 문화생활이 내게 큰 낙이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