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토스트와 미해당 사이, 그 어딘가에서 #41

길랭바레증후군, 마흔한 번째 이야기

by 밍밍한 밍

○ 2023년 5월 첫째 주


5월 첫날. 갑자기 토스트가 먹고 싶어졌다.

때마침 건물 1층엔 토스트집이 있었고, 지팡이 하나를 쥐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다. 행선지는 1층의 토스트집. 엘리베이터가 1층을 향하는 동안 생각한다.


'토스트 사 먹으니까 운동은 해야겠고.. 7층 병실까지 계단으로 올라가 보는 것으로 퉁 쳐야겠다.'


토스트 집에 도착, 토스트 하나를 포장하고 비상구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계단 옆 엘리베이터의 강한 유혹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계단 앞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 손엔 계단 손잡이를, 다른 한 손엔 지팡이를 쥔 채 한 계단 올라간다.

턱. 턱. 한 계단씩 올라가는 발걸음. 반 층정도 올라왔을 무렵 문득 내가 왜 계단으로 올라오겠다는 객기를 부렸나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내려갈까? 아냐, 늦었어. 한 발짝 내디딘 순간 이미 끝난 거야. 무조건 올라가고야 만다.


왼쪽 손목에 걸려있는 토스트가 식으면 안 됐기에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올라가야만 한다. 그렇게 6층에 다다랐을 무렵 다리의 힘은 풀리기 시작했고, 팔로 몸을 끌어당기는 힘이 점차 강해지기 시작한다. 7층에 도착했을 땐 다리가 후들거려 평지를 걷는 그 순간마저도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무사히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병실로 돌아왔다.


하.. 다신 이렇게 토스트 안 먹을 거야.




처음으로 덤벨 데드리프트 15개 한 세트를 무사히 마무리 짓는다. 와! 드디어 해냈다! 여태까진 12~13개 즈음 무렵 다리의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기 일쑤였다. 그때 억지로 들어 올리면 허리와 등이 삐끗할 것만 같던 두려움이 몰려왔기 때문. 괜히 허리 다치느니 그냥 주저앉는 편을 택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고비를 넘기고 15개를 무사히 해낸 것.


"오 밍님! 이제 15개 채울 수 있는데요!"

"하, 힘들어 죽겠어요."

"아 역시 보람이 있습니다."

"아! 맞다. 선생님, 저 내일 장애인등록신청결과 서류받으러 가야 해서 이 시간엔 없을 거예요."

"아 그러시구나. 그럼 내일 오전시간 빠지시는 거죠? 아 너무 그럼 너무 허전할 거 같은데요. 아쉽네요."


ㅇ..아니 왜 허전해하시지? 이놈의 인기란.. 어쩔 수 없네.

다른 치료사와 함께 왼손에 3kg 아령을, 오른손엔 지팡이를 쥔 채 걸어본다. 3kg 아령을 든 채 균형을 제대로 잡지도 못한 때도 있었는데, 어느덧 이런 걷는 시늉까지 할 수 있게 되다니. 장족의 발전이다.


"골반 빠지지 않게 힘 빡 주세요. 자세 바르게, 천천히 걸을게요."


알게 모르게 속도에 욕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인가 보다. 다만, 조금만 욕심내서 빠르게 걸어볼라 치면 골반이 휙휙 빠지며 자세가 엉망이 된다.


"속도를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른 자세를 만들고 거기에 익숙해지는 게 먼저 되어야 해요. 잘못 습관들이면 자세 교정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다시 천천히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앞으로 전진한다.




장애인등록신청결과 서류를 수령한다. 결과는 미해당. 말초신경 하반신 마비로 인한 장애등급을 받기 위해선 다음의 것이 필요하다.


1. 한쪽 발을 완전히 움직일 수 없는 경우.

2. 양쪽 발목을 완전히 움직일 수 없는 경우.

3. 양쪽 발가락을 완전히 움직일 수 없는 경우.


아쉽게도(?) 난 3가지 항목에 모두 포함되지 않았고, 마비증세 역시 점차 호전되는 중이었기에 미해당 판정을 받은 셈. 최초 장애인등록신청 서류를 구비할 때에도 주치의가 언지했던 내용이었다. 호전 중이기에 아마 안될 것 같다고.

그럼에도 6개월은 지났으니 신청해 본 셈이었는데, 예상대로 미해당이 나오니 그려려니 지나가는,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난 셈이 됐다.




왼발로만 선 채 벽을 붙잡고 몸을 쭉 뒤로 뺀다. 와 왼쪽 엉덩이에 자극이 장난 아닌데? 살짝 불편한데.


"선생님, 왼쪽 엉덩이 골반? 뼈? 부분에 조이는 듯한 통증이 와요."

"아 괜찮습니다. 그만큼 엉덩이가 힘을 잘 쓰고 있다는 증거예요."


신기하게 운동 끝나고 조금 쉬고 나면 말끔히 사라지는 그 통증. 관절에 무리가 가는 건 아니니까 계속해야겠지?

다리를 쭉 펴고 엎드린 채 다리를 들어 올린다. 한 발씩 들어 올릴 땐 조금이나마 올라가지는 반면, 두 다리를 모은 채 들어 올리려니 안 올라가진다.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람? 두 다리를 함께 올리는 게 더 힘든 동작이었구나.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양 발에 1kg 모래주머니를 차고. 그 사이 난이도가 올라갔다.


"오 이제 골반 많이 안 빠지네요? 며칠 전까진 엄청 빠졌었는데?"

"다 훌륭하신 선생님 덕분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계단을 오를 때 골반이 덜 빠지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발목에 찬 모래주머니로 인해 발목의 힘이 더 빨리 소진된다. 얼마 되지 않아 너덜거리기 시작하는 발목.


"선생님, 발목이 다시 너덜거리기 시작해요."

"괜찮아요. 그럼 발을 좀 더 높게 들어 올리면 돼요."


아 농땡이 피우려는 걸 단칼에 잘리네.

치료 베드로 돌아와 누운 채로 밸런스볼에 발을 올려두고 운동을 하던 중, 세트 사이 쉬는 시간에 발을 이리저리 옆으로 굴려본다. 어? 안 떨어진다.


"오! 밍님 이제 밸런스볼 위에서 옆으로 왔다 갔다 해도 잘 버티시네요?"

"그러게요?? 이게 왜 버텨지는 거죠? 저도 좀 당황스러워요."

"그만큼 나아졌단 증거지요. 자 다 쉬셨죠? 이렇게 여유 있는 거 보니 쉬웠나 보네요. 힙브릿지 다시 시작."


?? 이게 왜 이렇게 연결이 되는 거야 대체??





오랜만에 옥상에 올라 저녁놀을 감상한다.

한동안 저녁 내내 침대에 꼼짝없이 앉아 노트북 가지고 노느라 쳐다보지도 않던 저녁놀.
적색 영역의 가시광선 파장이 시신경에 닿으며 선사하는 오묘한 분위기에 한껏 취해본다.

KakaoTalk_20230711_205816771.jpg 2023년 5월 첫 주의 저녁놀


조금씩 늦어지는 일몰을 보며, 날이 환한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느끼며, 봄을 지나 여름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흘러가는 것은 흘러가는 대로 나름의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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