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는 계속된다
수년에 걸쳐 쌓인 물건을 한바탕 정리하고 나서도 정리는 계속됩니다. 인간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이니 만큼 삶이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계속해서 새로운 물건을 만나기 때문이죠. 그래도 인생 첫 '정리 축제'를 마치고 나면 그 후의 정리는 훨씬 수월해집니다. 일단 전보다 물건의 양이 현저히 줄어 있을 테고, 자기만의 정리 원칙도 어느 정도 세워져 있을 테니까요. 물론 정리 원칙도 시간에 지남에 따라 개선되거나 바뀌지만, 새로워진 나에게 알맞게 물건을 새로이 정리하는 일은 귀찮음이 아닌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일종의 업데이트 작업이라고 할까요.
정리에 한번 재미를 붙이고 나면 한창 바쁜 일상을 지내다가도 문득문득 '정리병'이 도지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물론 당장 일이 너무 바쁠 때는 손댈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일상에 치여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잠시나마 짬을 내어 조금씩 물건을 정리하면 스트레스가 일부 해소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마음이 산뜻하고 상쾌해져서 다시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지요.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삶의 즐거움
2000년대 초반 디지털카메라가 널리 보급되고 이와 더불어 휴대전화에도 카메라가 생기더니 이제 웬만한 카메라는 저리 가라 할 만큼 성능이 좋은 카메라가 장착된 스마트폰이 넘쳐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얼마든지 편리하게 사진을 찍고 소장할 수 있다 보니 요즘에는 사진을 찍는 행위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여행지처럼 특별한 장소는 물론이고 식당에서도, 카페에서도, 각종 명소에서도 저마다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여행에서 사진을 찍는 행위를 두고 흔히들 하는 말이 있지요.
"야, 여행 가서 남는 건 사진밖에 없어."
이 말을 처음으로 들었던 어린 시절부터 저는 '정말 그럴까?' 하는 약간의 의아함을 느꼈습니다. 과거의 여행을 돌이켜보면 사진 없이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 부분도 많다 보니 아주 틀린 말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모처럼 간 여행지에서 마음껏 돌아다니며 구경하지 못하고 중간중간 수차례 멈춰 서서 사진을 찍혔던 것은 제게 그다지 좋은 기억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피사체가 되는 것은 즐기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기록하고 저장하기를 좋아하는 저는 저만의 디지털카메라가 생긴 이후 아름다운 풍경이나 대상이 눈에 들어오면 나름대로 신경 써서 예쁜 구도를 잡아 사진을 찍곤 했습니다. 거기에 휴대폰 카메라와 아이팟 카메라까지 가세하고 디지털 파일이라는 이유로 사진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채 찍고 저장하기만 한 채 십수 년이 흐르고 나니, 어느새 사진 용량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게다가 저장된 위치도 제각각이라 이걸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여간 난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실물 사진이 아닌 디지털 파일로 저장된 사진은 아직도 전반적인 정리를 완전히 끝맺지 못한 영역입니다. 사진으로 저장된 삶의 기록이 워낙 방대하기도 하고 그것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지울지, 남길지 결정하는 일도 심적인 부담이 커서 차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진 정리라는 거대한 숙제를 앞에 두고 한 가지 결심에 다다랐습니다.
'이전 사진을 지금 당장 전부 정리하지 못하겠다면 새로운 사진이라도 늘리지 말아야겠다.'
원래도 사진을 아주 많이 찍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종종 기념할 만한 게 보이면 찍었던 제가 이제 그마저도 거의 찍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기념이나 추억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상에서 순전히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진을 찍거나 저장한 경우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사진을 바로 지우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진을 찍고 저장해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자 휴대폰 용량과 더불어 삶의 무게도 조금은 가벼워졌습니다. 일상에서든, 어딘가 특별한 장소에서든 웬만해서는 기록을 남길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니 마음 편히 그 순간을 즐기고 누릴 수 있게 되었거든요. 영화 <어바웃 타임>을 보면 과거로 시간 여행하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 팀이 처음에는 아버지의 조언대로 같은 하루를 두 번씩 살다가 나중에는 시간을 돌리지 않고 다른 평범한 이들처럼 살아가기로 합니다. 그 이유는 결국 현재의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기 위함이었을 겁니다. 우리는 팀처럼 시간을 과거로 돌리지는 못하지만 그 대신 사진으로 기록을 남겨 과거로 여행하려고 하고, 열심히 찍어 둔 사진 덕분에 아련하고 애틋한 추억에 잠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할지 안 할지도 모를 미래의 추억 여행에 대비해 사진을 찍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이 앞선 나머지 도리어 현재의 삶을 온전히 만끽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아까운 것이 아닐까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는 욕구가 있다지만, 이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도록 경계함으로써 지나간 과거의 흔적을 '소유'하는 대신 현재의 순간에 오롯이 '존재'하는 것이 삶을 더 가치 있게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무엇을 덜어내 볼까: 더하기보다 빼기가 중요한 순간
우리는 흔히 문제 상황을 마주하면 내게 무엇이 부족한가를 생각하고 무엇을 더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청소하기가 힘들면 로봇청소기를 사서 불편함을 덜고, 건강이 나빠지면 건강에 좋다는 건강 기능 식품이나 보조제를 구매해서 먹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건강하고, 행복하고, 편리하고, 윤택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렇게 무언가를 더하는 작업이 꼭 필요합니다. 다만 모든 상황에서 '더하기'가 답은 아닙니다. 오히려 가진 것이 너무 많아 문제일 때는 '빼기'가 더욱 중요하고 획기적인 돌파구가 되지요.
예를 들어 옷장에 옷이 넘쳐나는데도 입을 옷이 없다고 느끼는 이유는 옷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삶에 편리함을 더하고자 가전제품을 구매했다가도 그 가전제품 또한 관리의 손길을 필요로 하다 보니 도리어 집안일이 늘어나는 웃지 못할 결과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또 건강에 좋다는 온갖 식품이나 영양제를 열심히 찾아 먹으면서도 정작 몸에 해로운 음식 하나를 끊지 못해 건강이 좋아지기는커녕 제자리걸음을 걷거나 서서히 나빠지기도 하지요.
물건을 정리하고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다 보면 단순히 눈에 보이는 물건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능력이 길러집니다. 모든 것이 부족하기보다는 과잉되어 문제인 오늘날,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빼기'는 우리로 하여금 삶의 무게로 인해 축 처진 어깨를 다시금 쫙 펴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마법입니다.
지금까지 《정신 차려보니 미니멀리스트》에서는 제가 정리를 시작한 계기, 품목별 정리 과정, 이후 달라진 삶의 모습을 다루었습니다. 삶이 무겁게 느껴져 무작정 시작한 정리와 자연스레 함께 접한 미니멀리즘은 근 몇 년 사이 제 삶의 모습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여러분도 정리와 미니멀리즘을 통해 한결 가볍고 산뜻해진 삶을 만나시기를 응원합니다.